세 번째 만남 이성은
저와 학교 회사가 삼자 계약을 맺어서 월급을 받으면서 연구를 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대신 기업이랑 학교 두 곳 다 관련된 주제로 연구하면서 직장에서 일도 병행해야 해요. 말만 들어도 복잡하죠(웃음).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계약을 연장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럼 비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나요?
맞아요. 제가 그때 APS 비자(프랑스에서 석사를 마친 학생들에게 1년간 프랑스에 체류하며 일자리를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비자)로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정규직을 찾는 게 저에게 중요했어요. 제 모든 계획이 얽혀버린 거죠. 그래서 그럼 펀딩을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한국에 와서 국비유학생을 준비하기도 했었어요. 예술 경영 분야는 경영과 경제 부분이 모두 포함이 돼서 둘 다 지원을 했는데 아무래도 전국에서 4명 정도만 뽑으니깐 서류에서 광탈을 했죠(웃음). 그때 정말 힘들었었는데 그래도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뭐 없을까 해서 자격증을 몇 개 따고 왔어요.
굉장히 멘붕인 상황이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도 자격증을 따셨다는 게 굉장히 대단하세요. 그러면 현재 다니고 있는 LG계열사 HSAd France에는 어떻게 입사를 하게 되었나요?
제가 전자 분야 쪽에서 일해본 경험은 없지만 문화 예술 경영으로 문화 마케팅 분야에서 일해본 경험도 있고 영화제에서는 스폰서십을 관리하기도 했으니깐 이런 걸 살릴 수 있겠다 싶어서 지원을 했고 그렇게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고는 어디서 보셨나요?
저는 프랑스존에서 봤어요. 한국인 직원을 구할 때는 프랑스존에 공고를 올리는데 보통은 주로 링크드인에 공고가 올라가요.
지금 회사에서는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요?
지금 회사에서 인스토어 마케팅 매니저라는 직책을 맡고 있어요. 프랑스에 가전 전문 매장이 많잖아요. Darty, Fnac 같은 매장에 LG 제품이 어떻게 전시되어 있는지,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매출을 올릴 수 있는지 전략을 짜는 업무를 합니다.
회사 생활은 어떤가요?
처음에는 전혀 안 해본 업무였기 때문에 어려웠어요. 뭐든 다 그렇듯 어느 정도 익히고 나니깐 괜찮아졌어요.
지금은 LG 계열에 근무하시고 계시지만 파리 한국 영화제에서 영화제 파트너십 팀장으로 참여하시는 등 그동안 쭉 문화 예술에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해오셨는데 그중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영화인가요?
가장 관심 있는 예술분야가 영화인 건 아니고 관련된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영화제 일을 하다 보면 영화제 자원봉사하러 오시는 분들도 그렇고 스텝분들도 그렇고 영화과에 재학 중이시거나 팟캐스트를 운영한다거나 하는 영화에 열정이 많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거든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진짜 영화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진흥위원회 프랑스 통신원을 하게 되면서 그래도 영화 산업에 대해서는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제가 가장 관심 있는 문화산업은 음악 쪽이에요.
직접 연주하거나 그러시나요?
직접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없고, 사실 제가 좀 덕후여서 성공한 덕후가 되기 위해서 문화 쪽 일을 한 거거든요. 음악 축제 다니는 걸 좋아해서 맨 처음에 축제 기획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거였어요. 파리 한국 영화제도 축제적인 성격 때문에 하게 된 면이 있고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파리 한국 영화제에서도 일하고 영진위 프랑스 통신원으로도 일하고 계신데 혹시 버겁지는 않으세요?
이것저것 많이 겹치면 힘들긴 한데 그걸 다 하고 났을 때 느끼는 성취감으로 버티는 것 같아요. 당연히 슬럼프를 겪을 때도 있고요. 그럴 땐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넷플릭스만 보고 하루에 70 걸음 정도만 걷기도 해요(웃음).
성은님의 에너지와 지금껏 쌓아온 커리어를 보면 슬럼프를 겪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드네요. 한 번 슬럼프에 빠지면 얼마나 지속되시나요?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작년에 갑자기 정규직 전환이 무산됐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가 또 Confinement(락다운) 시기였잖아요. 제가 PACS(결혼은 아니지만 공식적으로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해주는 제도)를 해서 파트너가 있는데 그때 파트너의 부모님 댁에 있었어요. 그 넓은 곳에서 하루 종일 먹고 자고 이것밖에 안 했어요. 그때도 불안해서 뭐라도 하려 해도 문화 쪽은 다 휴관을 했기 때문에 채용이 없고 있어도 경력직만 뽑는 거예요. 그래서 수채화나 프랑스 자수 같은 걸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 더 우울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뭐라고 해야겠다 싶어서 앞에 말씀드린 장학금을 준비했었어요. 그리고 예술 경영 스터디도 시작했고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스터디인가요?
한국에 계신 분들과 줌으로 2주에 한 번씩 이슈를 토론하는 스터디예요.
그러면 앞으로 한국에서 취업할 생각도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에 커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은 하고 있지 않아요.
그렇군요. 듣다 보니 정말 많은 걸 하시는 것 같은데 시간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카오스처럼 일을 하는 사람이라 시간관리라고 할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굉장히 미루는 스타일이거든요.
정말요?
네 그런데 마감이라는 게 있잖아요(웃음). 그럴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밤을 새우고 그래요. 근데 제가 올해 한국 나이로 31살인데 이제는 점점 좀 힘들어져요. 그래서 영진위 리포트를 쓰다 밤을 새우고 그러면 다음날 연차를 내고 쉬기도 해요. 아니면 업무 도중 짬이 날 때 있잖아요. 점심시간이나 아니면 업무를 다 했는데 더 이상 할 게 없을 때 그럴 때 구글 독스 켜서 원고 쓰고 그런 식으로 하기도 합니다.
힘들 땐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으시나요?
저는 덕질에서 에너지를 많이 얻어요. 제가 덕질 변천사가 되게 길어요. 중학교 때는 되게 창피한데(웃음) 트랙스라는 그룹의 팬이었어요. 그 그룹을 좋아해서 공방을 다니고 그러기도 했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좋아했었어요. 그때도 제가 3년 내내 반장이나 부반장 이런 활동을 했었는데 3년 내내 야자를 째고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
인터뷰어 조소희
파리 8 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후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이 이성은 @cat.a.paris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 언어 문화학 / 홍보광고학 복수 전공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 문화 매니지먼트 졸업 - 경영학 석사
Unniversité Paris-Dauphine Management des Organisations Culturelles (문화예술경영) 졸업
전) HSAd France 인-스토어 마케팅 담당
현)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언론 홍보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