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만남 이성은
파리 생활 중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무엇일까요?
가장 만족스러운 건 완전한 자유 같아요. 저희 부모님이 굉장히 좋은 분들이지만 아무래도 보수적인 면이 있으세요. 항상 통금도 있었고 원하시는 직업도 공무원이고 그랬거든요. 그런 압박에서 떠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긴 하지만 제 의지대로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프랑스에 있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갔을 때 체감되는 변화가 있으신가요?
제가 보통 2년마다 가는데 제가 사는 동네만 해도 완전히 바뀌었더라고요. 역 주변에 스타벅스가 두 개가 들어오고 정말 많은 가게들이 트렌드에 맞춰 변화되어 있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홍대에 언더그라운드 공연을 보러 많이 다녔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지금은 그때의 분위기가 안 남아있더라고요. 대기업 브랜드가 다 차지하고 있고... 언더그라운드 공연장도 지금은 거의 사라졌고요. 그래서 한 번은 동생이랑 쇼핑을 하러 갔었는데 아무것도 알아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 좀 많이 슬펐어요.
저는 초등학생 때 가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데 그때만 해도 뭔가 날 것에 느낌이 있었거든요. 저만해도 아쉬운데 홍대에 애정이 있으셨다면 더 그러실 것 같아요. 프랑스와 한국에서의 삶의 질을 비교해본다면 어떠신 것 같은가요?
삶의 질은 한국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 편리하고 깔끔하고 신속하고... 그리고 사실 프랑스에서 가장 힘든 건 비자 같은 외국인 신분 때문에 겪게 되는 일이잖아요. 나는 합법적으로 이곳에 거주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데 그럼에도 비자 신청할 때마다 마음 졸여야 하고 그런 거요. 비자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다들 하나씩 있잖아요. 저는 석사를 연장할 때 준비해야 하는 서류를 모두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시청에 6시간 동안 묶여있었거든요. 그게 약간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아요.
어쩌다가 6시간이나 묶여계셨던 거예요?
출석률을 봐야 한다고 학교에 전화하라고 한 거예요. 근데 학교 사무실이 전화를 잘 안 받잖아요 그래서 담당자가 전화를 받고 서류를 보내주실 때까지 기다렸었어요.
저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어요(웃음). 그런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경시청 분위기 아시잖아요. 그분들은 절대적 갑이고 나는 을인. 분위기를 바꿔서 파리에서 자주 가는 곳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집에서 공부가 안 되는 스타일이어서 항상 카페에 자주 가거든요. 카페도 조그만 규모의 카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가장 자주 가는 카페는 lomi라는 곳인데 혹시 아세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 카페예요.
18구에 있는 곳인데 카페에서 자체적으로 원두 로스팅을 하거든요. 그래서 원두 종류도 많고 디저트도 맛있습니다. 커피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공부할 때가 아니라도 맛있는 커피를 먹고 싶을 때 자주 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집에서 공부가 안 되는 스타일이시면 락다운 시기에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네 그것 때문에도 정말 힘들었어요. 또 제가 집중이 되는 시간대가 저녁이에요. 그래서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저녁 9시부터 집중해서 할 일을 했어요.
저도 저녁에 집중이 잘 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그때부터 슬슬하다가 자정이 됐을 때 달아오르고 그 후로 두 세시까지 하다가 잠들고 그래요.
그럼 보통 몇 시에 일어나세요?
출근을 해야 하면 출근 시간에 맞춰서 일어나고요. 아니면 오늘은 11시까지 자고 일어났습니다(웃음).
저도 비슷합니다(웃음). 지난 4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돌이켜 보시면 어떠세요?
그래도 잘했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지내다 보면 귀국하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물론 그중에 학업을 마치는 게 목표였고 또 돌아가서 승승장구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여기에 남고 싶었지만 취업이 안되거나 비자 문제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잖아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제가 그 친구들보다 잘나서 그런 건 아니고 운도 따라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장하다(웃음)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내가 변했다고 느낀 순간들도 있으신가요?
저는 좀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지만 한국에서는 정말 여유롭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제가 서두르고 급하게 한다 해서 풀리는 것이 없잖아요. Ça arrive(이런 일도 생길 수 있지), ça dépend(케이스 바이 케이스) 이런 말을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제가 변했다는 걸 느끼죠. 작년에 잠깐 한국에 들어갔을 때 은행 계좌도 다시 갱신해야 하고 그런 문제가 있었는데 은행에 갔더니 몇 분만에 바로바로 처리가 되는 거예요. 또 유심을 정지해놨었는데 그 유심을 넣고 114에 전화를 했더니 정말 1초 만에 개통을 해주시는 거예요. 그런 속도감이 그립고 편하긴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급해지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혹시 10년 뒤에는 모습을 생각하시면 어떤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제가 사실 말씀을 못 드린 것이 있는데...
네.
제가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으로 이직을 하게 됐어요.
합격자 공고를 본 것 같아요. 문화원 홈페이지를 항상 확인하거든요(웃음) 그게 성은님이셨구나. 정말 축하드립니다.
맞아요. 최종 합격은 했는데 공공기관이다 보니 신원조사 등에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래서 말씀을 못 드렸어요. 그래서 문화원에서 일하게 되면 BTS와 일할 기회가 한 번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죠. 내가 기획하고 초대하면 되니깐(웃음).
어쨌든 질문에 답하자면 아마 팀장급이 되어서 후배들에게 많은 노하우를 전수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박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그래서 10년 뒤에는 박사 과정을 마쳤을 것 같아요.
왠지 하실 것 같아요.
아직은 이르지만, 일에 적응되고 시간이 되면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책도 내고 싶고요.
어떤 분야의 책이요?
제 연구 분야에 관한 책을 내고 싶고 그리고 제가 이것저것 관심 있는 게 많다 보니깐 여행책도 내보고 싶어요.
저도 꼭 읽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 취업을 꿈꾸는 한국 여성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가장 드리고 싶어요. 제가 실제로 겪었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있는 건데 어떻게 보면 잔인한 말이지만 각자 자기의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엄청 많은 지원을 했고 엄청 많은 거절을 받았거든요. 결국에는 제가 가장 일하고 싶었던 한국 문화원에서 일을 하게 됐지만 지금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목표를 세우고 타이밍을 기다리며 하나하나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면 언젠가 반드시 기회는 오는 것 같아요. 물론 거절을 많이 받으면 조급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 때가 오겠지 생각하면서 조금 마음을 편안하게 먹었던 것 같고 그랬을 때가 오히려 더 잘 풀린 것 같아요.
2021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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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성은님과의 인터뷰는 줌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은님의 열정과 그간의 노력은 화면을 너머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다. 나도 언젠가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스스로에게 '장하다'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인터뷰어 조소희
파리 8 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후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이 이성은 @cat.a.paris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 언어 문화학 / 홍보광고학 복수 전공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 문화 매니지먼트 졸업 - 경영학 석사
Unniversité Paris-Dauphine Management des Organisations Culturelles (문화예술경영) 졸업
전) HSAd France 인-스토어 마케팅 담당
현)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언론 홍보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