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비아 조 Oct 06. 2021

프랑스에서 교수되기 4

네 번째 만남 홍소라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계셨었으니 제가 수업은 안 들었지만 오다가다 한 번 스쳤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죠. 


사실 학사 때 외국어 수업을 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한국어 수업을 들어보면 어떨까 생각도 했었어요. 아무래도 학점 따기도 수월하고 한국어 과외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시험 삼아 친구들에게 가르쳐봤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어를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해서 알 겸 한 번 들어보면 좋겠다 생각을 했는데 어떤 친구 말이 첫 수업에 강사님이 ‘한국인 손 들어보세요’하고 손 들면 그대로 ‘나가세요’한다고 해서 결국 신청을 안 했죠(웃음). 


저는 손들고 나가라고 한 적은 없고 애초에 한국인을 안 받았죠(웃음). 한국어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기회를 뻈으면서 한국인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맞는 말씀이세요. 저는 도저히 스페인어나 독일어 같은 새로운 언어는 배울 수가 없어서 계속 영어 수업을 들었어요. 그런데 한 번은 러시아어를 배우시는 분이 계시길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냐 물어보니 러시아 영화를 좋아해서라고 대답을 하셔서 그분을 존경하게 됐죠(웃음). 한국어를 가르쳤던 입장으로서 케이팝 열풍이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보시나요? 


외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의 내밀한 부분까지 알게 되거든요. 처음에 할 수 있는 말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잖아요. 


맞아요. 저도 불어를 막 배우기 시작했을 시기를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때 하던 것처럼 지난여름에는 뭐를 했었고 우리 가족은 어떻고 이런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힐링이 됐던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 대해서 잘 알게 될 수밖에 없는데 많은 학생들이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해요. 한 번은 굉장히 얌전한 남학생이었는데 케이팝 팬클럽 회장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학교에서의 모습이랑 밖에서의 모습을 모르는구나 알게 됐죠. 저는 사실 처음에 BTS를 몰랐었거든요. 학생들 덕분에 잘 알게 됐죠. 


저도 비슷했어요. 제가 처음 프랑스에 온 게 2017년인데, 제가 한국인이라 하니깐 한 친구가 BTS 안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때 방탄소년단은 알았어도 BTS는 몰랐기 때문에 아마 한국 그룹은 아닐걸? 이렇게 대답했어요(웃음). INALCO(Institut national des langues et civilisations orientales)에서도 4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치셨는데, INALCO에 대해서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INALCO 전경 (사진 출처 : https://www.studyrama.com)



한국어로는 국립 동양어문화대학교라고 불리는 학교입니다. 본래는 프랑스의 제국주의 침략을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침략을 위해서 해당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죠. 한국어 같은 경우에는 원래 한국학과가 아니고 동양의 학문 중 하나로 다뤄졌었는데 2019년부터 한국학과로 따로 독립해 나왔습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이와 관련해서 2000년대 들어 폐지되었거나 없었던 학과가 다시 부활하고 또 팽창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나네요. 프랑스에서 사신지 10년이 넘어가는데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시면 어떠신가요? 


그때는 해야 하는 것이 있으면 앞뒤를 안 따지고 무작정 했거든요.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내 경력에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서 저질렀던 수만 가지 일이 있어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는데 교수가 된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이제 내 삶을 좀 제대로 살아보자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30대를 프랑스에서 지냈는데 30대가 잘 기억이 안 나요. 무슨 일이 있었다 정도는 기억이 나지만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어땠고 그때 풍경은 어땠는지 이런 생생한 종류의 기억은 20대로 끝이에요. 


그러면 지금은 본업을 제외한 다른 활동들은 많이 정리하신 건가요? 


정리를 한다고 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박사 과정을 할 때는 기사를 많이 썼었거든요. 지금은 잘 안 쓰고 있기는 한데 그때 인연이 되었던 분들이 좀 계셔서 최근에도 월간 중앙에 글을 하나 썼어요. 기사를 쓰는 건 좋아해요 왜냐하면 다른 종류의 소통인 거잖아요. 요즘은 프랑스의 한국 영화 학자들을 모아서 네트워크를 만들어 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책을 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총 6분 정도 되는데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지금으로서는 제가 주도하고 있습니다(웃음). 


파리를 떠나 라로셸에 정착하신 지 반년이 넘었는데 라로셸은 어떤 도시인 가요? 


대항구 도시라고 불리는 라로쉘 (사진 출처 : https://www.stubbyplanner.com)



락다운 때 들어왔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날씨는 휴가철 빼고는 좋지 않다고 느끼고 있어요. 


파리보다 더 날씨가 안 좋나요? 


파리는 날씨가 안 좋아도 볼 것들이 많으니 괜찮은데 라로셸 같은 경우 그렇지 않으니 날씨가 안 좋은 게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특히나 제가 강아지가 있기 때문에 중심부에서 좀 떨어지더라도 뛰어다닐 수 있는 집을 구했거든요. 또 파리에서 지내면서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 빨래를 말리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은 테라스와 정원이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정말 만족해요. 15분 정도 걸으면 바다도 나오고요. 더 이상 파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파 침대를 펴는 것이 귀찮아서 소파 위에서 쪽잠을 자는 그런 행동은 안 할 수 있어서(웃음). 그래도 아직 이 도시에 친구가 없기 때문에 심심하긴 해요. 이제 락다운도 끝났겠다 슬슬 바깥 활동을 시작하려고 해요. 안 그래도 오늘 처음으로 요가하러 갈 예정이고요. 지금은 제 삶을 온전히 꾸려가는 시작 단계인 것 같아요. 집도 사고 싶고 차도 사고 싶고... 그리고 꼭 손님방을 만들어서 프랑스 이모가 되고 싶어요(웃음). 어릴 때 방학마다 외국에 사는 친척집에 다녀온 친구들이 부러웠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조카들에게 방을 내줄 수 있는 그런 이모가 되고 싶습니다. 


저도 어릴 때 그런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요가를 시작하시는 게 요즘 몸이 안 좋아진 영향도 있으신 건가요? 


한국에서는 요가를 자격증을 딸까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했었거든요. 처음 프랑스 왔을 때만 해도 열심히 했었는데 집에 요가할 자리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공원에 가서 요가매트를 깔고 하기도 했었는데 삶에 치이다 보니 밖에 나가서 운동할 여유가 없어져서 자연스레 요가를 안 하게 됐었어요. 그리고 9월부터는 학교 자체에서 하는 체육 수업을 듣기로 했어요. 스포츠 센터가 크게 있거든요. 그래서 9월부터는 태권도도 하고 요가도 계속하고 그럴 계획입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프랑스에 오기 전에 밴드 활동을 했었거든. 그래서 차차 이곳에서 아는 사람들이 생기면 밴드도 해보고 피아노도 다시 치고 싶고 클라리넷도 다시 하고 싶고(웃음). 박사 생활하면서 잠시 잊었던, 예전의 제 삶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어요. 


라로셀 대학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프랑스 학교 대부분이 국립이기 때문에 전국 플랫폼에서 교수직을 채용할 때 공통으로 공고가 떠요. 작년에 3개의 대학에서 모집공고가 났고 세 군데 모두 오디션을 보고 최종적으로 라로셸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라로셀이라는 도시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제가 2016년부터 1년간 전임 강사 일을 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제가 인도를 걷고 있었는데 택시하고 트럭이 서로 안 비켜주다가 추돌사고가 나고 밀려난 택시가 저를 덮쳤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하고 이런 안 좋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라로셸에 수업을 하러 올 때마다 무섭고 불안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라로셸 대학과의 계약 종료를 급하게 하고 INALCO 대학으로 옮겼기 때문에 당연히 라로셸 대학에서 저를 안 불러주실 줄 알았어요. 물론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고 편지 쓰고 어떻게든 좋게 마무리하려고 애를 쓰긴 했지만요. 그렇긴 하지만 이 바닥이 워낙 좁다 보니 저를 안 쓸 줄 알았는데 채용이 됐죠. 


채용까지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공통적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Qualification을 받아야 해요. 연구자 혹은 교육자로서 어느 정도 자격이 되어있다는 걸 검증하는 제도인데요. 연구 경력, 강의 경력에 대한 서류를 보내면 심사위원들이 표절검사라든가 같은 까다로운 검사를 거쳐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심사는 1년에 한 번 밖에 열리지 않고요. 이걸 받은 다음 앞서 언급한 프랑스 정부의 플랫폼에서 공고를 보고 자신에게 맞는 자리에 지원을 하는 거죠. 서류를 보고 심사를 한 뒤에 심사위원단을 조직해서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락다운 시기에 지원을 했기 때문에 두 대학은 온라인으로 면접을 보고 라로셀 대학만 오프라인으로 면접을 봤어요. 제가 이번에 느낀 건 교수가 되는 과정은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박사 논문을 쓸 때도 제가 외국인이라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코멘트를 받는 과정이 필요하고, 서류를 낼 때도 학계에서 요구하는 코드들이 있거든요. 근데 처음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 코드를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조력자가 필요하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도움 요청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었는데, 친하게 지내던 교수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내가 봐줄 테니깐 다른 사람도 찾아보라고. 그래서 용기를 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고 그때 받은 조언들이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맨땅에 헤딩을 많이 했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이번 과정을 통해서 변화가 생긴 거죠. 지금은 제가 먼저 도움 요청을 잘 못 하는 분에게 도와주겠다고 연락을 하기도 해요. 강사로 일하고 계시는 분에게 제가 그동안 하고 있던 일들을 넘겨드리고 왔었는데 그분의 다른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분이 전임 강사가 되는데 제가 넘겨드렸던 일들도 발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뿌듯함을 느꼈어요. 도움이 필요하던 입장에서 도움을 줄 수 입장이 되었다는 건 굉장히 뿌듯한 거더라고요. 



다음 편에 계속...




인터뷰어 조소희 

파리 8 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후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이 홍소라 

현) Université de La Rochelle Associate Professor


이전 18화 프랑스에서 교수되기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