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만남 강미카엘라
수업은 이론보다는 프로젝트 비중이 더 높았나요?
저는 한국에서 실험할 때 빼고는 조별 과제를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거의 대부분 프로젝트로 진행이 되더라고요.
그럼 혹시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하나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마지막 학기 때 한 프로젝트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프로젝트 덕분에 제가 IT 분야로 취업을 하게 됐거든요. 어떤 주제였냐면 지금까지는 대량 생산을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대량 생산보다는 개인의 취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조금 더 플렉시블하 메뉴팩처링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시스템에 관련된 거였어요.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 원래 우주 항공을 전공으로 해서 비행기 엔진 회사나 에어버스 같은 회사 취업을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생각을 해보니까 그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면 보통 크고 중요한 프로젝트니깐 평생 비행기 꼬리만 만들게 될 것 같은 거예요. 보통 맡은 분야만 거의 몇십 년씩 다들 하니까. 근데 IT 같은 경우에는 5년 정도의 경력만 있어도 전체적인 시스템을 구성하고 이끌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인턴십도 데이터 관련 분야에서 하고 취업은 IT 계통에서 하게 됐어요.
그럼 프로젝트가 어떤 주제였던 거예요?
Reconfigurable and Flexible Manufacturing System이라는 주제였는데 일단 이 주제와 관련된 논문들이 아직 많은 건 아니라서 저랑 팀원이랑 리서치를 하고 우리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면서 많이 공부했었어요. 덕분에 AI나 빅데이터와 관련한 주제들에 관해서도 많이 배웠고요.
한국에서 조별 과제하면 조별 과제 잔혹사 같은 패러디가 있을 만큼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잖아요. 프랑스 학교의 조별 과제는 어떤가요?
공학 사람들 특징인가 아니면 그랑제꼴이라 그런지 몰라도 모두들 주도적으로 하고 싶어 했어요. 그러면 저는 CEO처럼 “그래 그럼 네가 한 번 해봐(웃음)”라고 했던 것 같아요. 조원들도 모두 열정 넘치고 제가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이 도와주려고 하고 재미있어서 잔혹사 같은 에피소드는 없네요.
그렇군요. 학교생활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어요?
아무래도 공학의 많은 분야를 다 배우니까 수업이 너무 많았던 점이 힘들었어요. 한국에서는 시간표를 짤 수 있잖아요. 저는 절대 8시에 수업 안 넣었거든요(웃음). 항상 10시 이후 수업만 들었는데, 여기서는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고등학교처럼 다녀야 되니까 그 점이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보통 학사보다 석사가 좀 더 여유 있는 편이잖아요. 미카엘라님이 다니신 학교는 웬만큼 힘든 학사 과정보다 더 힘든 과정인 것 같아요.
맞아요. 대신 목요일은 오후 2시 이후에 수업이 없었어요.
그래서 프랑스는 불금 대신 불목인 것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반대로 그래서 학교에서 목요일 오후에 수업을 비워 났는지도 모르겠고요. 입학 당시에 언어적으로 힘드셨다고 하셨는데,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그 많은 양의 학교 수업을 따라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정말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그 상태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교수님이 칠판에 쓰는 글씨를 그대로 적어와서 번역한 뒤에 어떤 내용인지 대강 파악한 다음에 영어로 같은 주제를 찾아서 공부를 하는 거였어요. 또 학교에서 받은 수업 물들도 당연히 많이 참고를 했고요. 6시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에 가서 그렇게 복습을 하면 사실 하루가 다 가는 거죠. 한국은 C가 나오든 D가 나오든 졸업은 시켜주는데 여기는 평균 학점 B가 안 되면 졸업을 안 시켜주니까 열심히 했죠(웃음).
고3 생활과 비슷한데 어떻게 2년을 버티셨는지 궁금합니다.
공부는 힘들긴 했어도 학교생활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또 저희 학교 안에 학생회가 운영하는 술집이 있었어요.
프랑스에도 그런 학교가 있는지 몰랐어요(놀람).
신기하죠(웃음) 그래서 공부하다 힘들면 그냥 가서 술 마시고 그랬어요. 주말에는 기숙사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가기도 하고 서로 요리도 해주고 그랬었어요. 또 제가 파리에서 1년 보르도에서 1년 있었거든요. 전공이 우주 공학이다 보니까 보르도 캠퍼스도 갔는데 또 거기는 바다 근처라서 주말마다 친구들이랑 가서 친구들은 서핑하고 저는 태닝하고 그렇게 재밌게 보냈어요.
학교에서 배우기도 많이 배우셨고 즐기기도 많이 즐기셨던 것 같아요. 학교생활을 굉장히 잘하신 것 같은데 학교생활을 잘하는 노하우가 있으면 공유 해주 세요.
따로 노하우는 없고 제가 앞서 말했 듯 제가 프랑스어를 잘 못했거든요. 근데 그게 부끄럽지 않았어요. 답답하긴 했는데 말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ECOUTE"잘 들어봐(웃음) 하면서 당당하게 말을 했어요. 아니 뭐 못할 수도 있지 내가 프랑스인도 아닌데 생각하면서. 물론 처음에는 그렇지 못했어요 말하는 게 꼭 아기가 말하는 것 같고 그러니깐 움츠려 들기도 했는데 그런 제 자신이 싫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했어요, 그냥 자신감 있게. 틀리든 말든 너희가 프랑스인이니깐 너희가 알아들어라 이런 마인드로(웃음).
저는 솔직히 언어 때문에 움츠려 든 기간이 길었거든요. 수업 시간에도 내가 말할 때 비웃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 때문에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그런데 2학년 때 중국인 친구가 편입을 왔는데 불어를 저보다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니깐 배우는 것도 많은 것 같고 학교생활도 잘하더라고요. 그 친구를 보면서 배운 점이 많았어요. 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프랑스어 레벨이 어느 정도까지 오르셨나요?
정말 많이 올랐어요. 2년 동안 하루 종일 프랑스어로 수업 듣고 프랑스 친구들이랑 지내고 또 인턴까지 했으니까요. 특히 발음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아무래도 불어는 발음을 잘 못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하다 보니깐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게 된 원동력이 있을까요?
대학 졸업도 또래들보다는 늦게 한 편에다가 졸업 후에 유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일 년 동안 일을 했거든요. 그래서 아무래도 다른 친구들 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돌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유학은 물론 뒤늦게 다시 학교에 들어가시는 분들은 나이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시잖아요.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불편한 점은 없으셨어요?
아무래도 아시아인이 서구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이가 어려 보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애로사항이 있었어요. 제가 학교에 바가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거기서 한국에서처럼 막 마시고 놀고 있는데 프랑스 친구 3명이 와서 그렇게 마시면 위험하다고(웃음)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괜찮아 이러고 돌려보냈는데 두세 번 더 그렇게 와서 조심하라 하니깐 나중엔 조금 귀찮아져서 내가 몇 살인 줄 아냐고(웃음) 그랬던 게 기억이 나네요.
저도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제가 말하기 전까지는 동갑으로 보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사실 프랑스는 한 살 차 제 나이를 알아도 변하는 것도 없고요. 학교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셨나요?
친구들이랑 모여서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기도 하고 보통은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으로 풀기도 해요. 한국에 있었을 때는 농구공 들고 자전거 타고 한강 공원에 자주 갔었어요. 아시는 분은 아시는 동호대교가 보이는 농구장에 많이 갔었죠.
장학금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장학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가 받은 장학금은 프랑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France Excellence라는 장학금이에요. 학비, 항공료는 물론 매달 생활비로 700유로씩 지원해 주고 그 밖에도 여러 지원이 있었습니다. 유학을 위해 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부족하면 아르바이트를 하면 되겠지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도저히 일까지 병행할 수 없는 스케줄이라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싶었어요.
장학금에 선정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France Excellence 장학금의 경우 석박사 통합해서 10명의 학생들에게 주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어떻게 장학금을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제가 불어를 시작하는 단계였었는데 다른 부분은 영어로 하더라도 자기소개만큼은 프랑스어로 해보자 해서 열심히 자기소개를 준비했어요. 무엇보다 제 마음가짐과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왜 제가 프랑스를 선택했으며 왜 이 학교에 가서 배워야 하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잘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다른 쟁쟁한 지원자분들도 많았을 텐데 대단하세요. 졸업 후 파리에서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관련 컨설턴트로 일하고 계신데 채용 과정은 어떠셨어요?
프랑스도 취업 시즌이 있긴 한데 대부분 상시 채용이잖아요. 그래서 학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후에 바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어요. 프랑스 같은 경우 CV와 Lettre de motivation이 필수적인잖아요, 그런데 Lettre de motivation의 경우 형식적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형식적으로 깔끔하게만 준비를 했고 CV를 공들여 준비했어요. 그러고 나서 링크드인을 통해 컨설팅 주니어를 뽑는 회사에 정말 많이 지원을 했죠. 당장 내가 정말 원하는 포지션이 아니더라도 빅데이터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됐다면 그걸 시작으로 경력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백만 번 정도(농담) 지원을 한 것 같아요. 클릭 한 번만 하면 지원이 되는 경우도 많으니깐요.
다음 편에 계속...
인터뷰어 조소희
파리 8 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후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이 강미카엘라
고려대학교 학부 졸업
Arts et Métiers ParisTech 그랑제꼴 엔지니어 디플롬 과정 수료
현) 프랑스 IT 컨설팅 회사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