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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moon Oct 21. 2023

여전히 극장에 간다

영화가 필요하다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된 후, 기숙사라는 여전히 낯설고도 갑갑한 공간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기숙사는 내 방처럼 아늑하지도 않고, 강아지도 없었다. 무엇보다 따분했다. 바깥공기를 맡으며 밤산책을 할 수도 없어서 좁은 방에 꼼짝없이 육체와 정신이 매여있는 기분이었다.


 영화는 권태로 가득 찬 나의 머리를 이리저리 구르게 하는 동력이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여러 인간군상들은 세상에 만연해 있는 권태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각자 자신의 삶에 부여한 나름의 의미를 믿으며 살아갔다.



극장

 어린 시절부터 아빠의 손에 이끌려 자주 극장에 갔다. 아빠는 영화광이었고, 이제 나도 못지않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는 싫어했던 적이 없지만 극장은 싫어했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만 해도 극장이 싫었다. 어둡고 서늘하고 스크린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세상과 단절된 것만 같은 느낌에 영화에 집중하는 것도 힘들었다. 한마디로 극장이 무서웠다.


 극장과 남몰래 거리 두기를 실천하던 중 아빠가 정말 재밌는 영화라며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같이 보러 가자고 말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SF영화였다. SF영화를 당시에도 지금도 너무 좋아하지만, 솔직히 재밌을거란 말을 들어도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화가 재밌다고 해도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폐쇄적인 분위기가 먼저 떠올랐다. 아빠는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계속되는 대시에 못 이겨 극장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영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사실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극장이라는 공간에 위엄을 느끼며 겁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이 무색하게도 영화와 공간에 숨 막히도록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영화 속 세계관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았다. 포근한 막에 둘러싸인 채 우주에 내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극장이라는 에어컨 바람 가득하고 서늘한 공간이 너무나 아늑하고 흥미로운 공간으로 와닿았다. 더 이상 극장이 무섭지 않았다.  


 극장의 진가를 깨닫고 나니 그 이후로는 수시로 극장을 들락날락거렸다. 친구와도 약속을 잡아 자주 갔지만 가장 많은 순간 극장에 함께 간 사람은 아빠였다.


극장은 나와 아빠를 이어주는 매개이다. 

 ott서비스가 보편화되며 극장을 찾는 빈도도 무지 줄었다. 나도 아빠도 각자 편안히 집에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극장에 간다. 함께 극장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고, 팝콘향으로 가득한 매표소에서 티켓을 발권하고, 캐러멜 팝콘과 사이다를 주문한다. 주변의 영화 포스터들을 구경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의 내용과 연출을 궁금해해 본다. 영화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면 슬슬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 예매해 둔 자리를 찾아 나란히 앉는다. 유달리 극장에서 보면 재밌는 광고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곧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가 끝난 후도 보는 것 못지않게 즐겁다. 아직 가시지 않은 여운과 감정의 파동을 섬세히 느껴보며 아빠와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나눈다. 방금까지 분명 같은 영화를 보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니, 무척이나 흥미롭다.


 영화가 관객에게 하나의 체험, 경험을 선사하지만 극장이라는 공간도 특별한 경험을 준다. 동시에 극장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된다. 장면이 스칠 때마다 사람들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이렇게 달라진 기류를 고스란히 전해받는다. 공포를 다른 관객들과 같이 보면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팝콘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처럼 영화와 극장은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준다. 단지 편안하게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자신과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환경을 가진 타인을 이해해 보려 시도하게 된다.


이것이 곧 영화의 필요성이 아닐까? 무수한 종류의 영화가 있지만 인간의 연대감을 다룬 영화가 참 좋다. 연대를 느끼며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다.

계속해서 극장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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