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감각을 두드리는 전시
때때로 눈의 판단으로만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감각기관의 주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평소 70% 이상을 시각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나 또한 예외는 없다. 몸은 점점 주체성을 상실하고 눈에게 질질 이끌려 다녔다. 음식을 먹을 때도 미각은 기가 죽어 있었다.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속으로 들어갈 것 마냥 음식을 대했기 때문이다. 눈을 통해 뇌와 마음으로 빨려 들어오는 다채로운 감각을 사랑하지만 독재는 경계해야 한다.
<시각의 독주를 막아보자.>
근사한 구실도 생겼겠다 이를 가능케 할 흔하지 않은 체험을 찾고 싶었다. 무작정 인터파크를 헤맸다. 그러다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를 발견했다.
'어둠 속의 대화'
100%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시
<죄다 추상적인 설명뿐이고 온통 검은색이네?>
가리면 가릴수록 그 속을 알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다. 곧장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신속하게 티켓 2장을 예매했다.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길을 안내해 주는 로드마스터와 공간별로 설치된 테마를 체험하는 전시이다.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160여 개 지역에서 12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국제저인 전시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동안 주로 보는 전시를 즐겼어서 이렇게 전시와 퍼포먼스가 접목된 'Exhi-Performance'는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완전한 어둠 속에서 시각보다 촉각, 청각, 미각, 후각 그리고 눈을 감아도 짙게 느껴지는 공간의 분위기에 집중해 보았다.
다가오는 어둠을 알아차리고 눈은 이를 두려워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들로 시야를 가득 채우고픈 욕망이 내 안쪽에 깊이 서려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저울질하려는 습성을 타고나 언제나 가장 객관적인 듯이 눈을 굴렸지만 누구보다 주관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눈이 사라졌다.
숨이 막힐 듯 완벽한 어둠은 빛이 세어 들어올 틈조차 없어서 희망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고, 기어이 빛보다 따뜻한 아늑함을 준다. 집어삼킬 듯한 어둠은 곧 나를 편안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눈은 나에게 하나의 희망이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그 생각에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흐름이 빠르게도 느리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란 것이 원래 그 자리에 없는 것 같았다. 방향감각이 맥을 쓰지 못해 나는 앞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예의 주시하며 일정한 보폭을 유지해 나갔다.
벽에 손을 뻗자 손끝으로 전해오는 뾰족하지만 부드러운 풀들의 향연, 발을 디딜 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바닥의 질감과 기울기,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와 더욱 낯선 공간이 내는 다양한 소리의 기이한 조화, 혀와 섞여 어둠을 타고 목구멍으로 생생하게 내려가는 망고 주스의 달달함에 나를 맡겼다. 어둠에 있는 것만으로도 평소 무심했던 일상적인 행위와 상황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눈은 필사적으로 자신을 감았다 떴지만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100분이라는 시간이
찰나의 순간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 속에 있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전시와 어둠이라는 매개를 통해 평소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들을 느껴본다. 원래 가지고 있던 스위치를 하나 꺼보는 것만으로도 더욱 다양한 스위치를 눌러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채로움이 촉발되었다. 그동안 두려워하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아무리 마음의 심연 끝으로 내려가도 자신은 존재한다. 자신을 둘러싸던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곳에 내가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많은 것을 보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순간이 아닌 내면의 심연 속을 헤엄칠 수 있도록 조용히 눈을 감고 사색할, 어둠 속을 유영할 수 있는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