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쓰고 시간을 쓴다는 것
나는 호불호 중 '호'보다 '불호'가 강한 사람이다. 지난해에 쓴 자기소개 에세이에서도 이 문장은 첫 숨에 내뱉어졌다. 내 핵심적인 특징이자, 내가 내리는 선택들을 뒷받침해주는 이유이며, 약간의 흥미와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선언이기 때문이다.
내가 호보다 불호가 강한 사람이란 건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아가면서 나 자신의 반복적인 행동 패턴으로부터 도출해 낸 결과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돌이켜 보면 나는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 혹은 소수만을 골라야 할 때 늘 싫어하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하나하나 가지치기하듯 제외해 나가다 남는 것을 고르곤 했다. 그게 나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어려웠다. 난 싫어하는 것,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지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좋아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 매번 난처함을 느끼는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내 생각의 흐름은 '호보다 불호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좋아하는 게 많지 않다'는 점으로 이어졌다.
나는 똑 부러지게 '좋아한다'라고 말할 만한 게 별로 없다. 물론 무기력해지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더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그 전에도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읽는 것,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취미 하나 정도가 전부겠다. 사실 좋아하는 게 별로 없다는 특징이 무색하게도 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 내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에 빠져드는 것에서 행복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도 쉽사리 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일종의 완벽주의자로,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안 그래도 내가 닿을 만한 것들, 좋아하는 것의 후보가 될 만큼 나와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 까다로운 내 기준을 온전히 충족하는 건 더욱 찾기 어렵다. 좋아하는 것에 엄격한 기준을 두는 건 완벽주의적 특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쉽게 상처 받고 지치는 예민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정말 완벽하게 그것을 적극적으로 '좋아하고' 싶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동시에 지친다. 그래서 좋아하는 게 많아지면 힘들어진다. 게다가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내가 좌우할 수 없는 외부적인 무언가 이기 때문에 나를 실망시킬 수도 있고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게 두렵고 불안해서 쉽게 내 '좋아하는 것들'의 영역을 넓히지 못하고, 그 안으로 새로운 걸 쉽사리 들이지 못한다.
삶의 낙이라 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을 다양하게, 그리고 많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이 명제에 대해서 아직 의구심과 회의감이 좀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취미뿐 아니라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설명해 준다고도 생각한다. 단순히 나를 서술해 주고 수식해 준다는 기능을 넘어, 내가 지칠 때 나를 위로해 주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자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열정의 우물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좋아하는 것을 늘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좋아하는 것이라는 개념과 영역은 살면서 그야말로 끊임없이 스스로 조절해나가고 생각해보면서 변화시켜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