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해결해주는 것

미래의 나에게 믿음과 기대를

by 송현모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분명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같은 맥락의, 참고 인내하면 지나가고 기어이 끝나고야 말 것이라는 그런 말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야 변하고, 시간이 지나야 가능해지고,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흘러야 정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대개 시간이 지나야 애착이 줄어들고 쓸모가 덜해지는 것들이다. 지금 당장 정말 중요해 보이고 소중해 보여서 차마 집어넣거나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은 당장 정리하려다 오히려 스트레스받기 십상이다. 뭔가 정리는 해야겠고 이건 못 버리겠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그러나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여겼던 물건들을 최소 몇 주 후, 아니면 몇 달 후에 보면 그것의 운명을 달리 결정할 수 있다. 아예 몇 년쯤 후에 들여다보면 흔쾌히 내다 버리겠노라 결심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시기에 따라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중요시하는 것, 내가 우선시하는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일 테다. 조금 더 나이가 든 내가 조금 더 합리적이고 현명해지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물건이든, 디지털 상의 무언가든 정리하다 고민이 길어질 때면 아예 그 부분에 손대는 것을 그만두고 미래의 나에게 맡겨버린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수월하게, 그리고 기꺼이 그것을 버려줄 수 있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야 가능해지고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사실 이건 성장이나 습관을 달리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척 예민해서 온갖 사소한 것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좀 더 둔해지고 무뎌져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는데, 아직은 그 사실을 체감하지는 못하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덜 예민해지는 대상들이 분명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어릴 적의 나는 머리 감는 것이 너무 어렵고 피곤한 일이었다. 물리적으로 지친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번거로웠다. 사실 머리 감는 것이라는 한 가지 예시를 든 것뿐, 나는 애초에 정답과 끝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것들을 수행해야 할 때 곤란함을 자주 느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이 거품을 내고 두피를 문지르고 물로 헹구어야 이 일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평생 이렇게 머리 감는 일이 나에겐 어렵고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일이겠구나 여겼는데 어느 순간 조금 더 큰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매일 머리를 감게 되었다. 매일 최소 한 번씩, 수없이 그 행동을 반복하면서 습관이 자리잡기도 했을 테고 내가 조금 더 성장하기도 했겠지 싶다.


시간이 흘러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비유처럼, 인생의 사건들이라는 점을 수없이 겪으며 점을 찍고 또 찍은 후에야 그 점들이 모이고 이어져 어떤 선과 그림이 되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도 꾸역꾸역 해내고 나서 돌아보면 그 당위성과 필요성이 납득되곤 한다. 인생에서의 한 사건이 그 이후의 다른 사건들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그 순간에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는 흐름이다. 물론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는 것이 썩 달갑지만은 않을 때도 있다.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후회할 때도 있고, 과거 어느 시점에 했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뒤늦게 알게 되어 아쉬워할 때도 있다. 좋은 회상이든 아쉬운 회상이든, 모두 시간이 지나야 만 가능해지는 것들이다.


과거와 미래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현재에 집중할 수 없다. 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과거와 미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아주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새로움과 즐거움을 최대한 누리려 한다. 과거를 돌아보며 아주 많이 후회하고 그보다 더 많이 타임슬립과 인생 리셋을 꿈꾸고 가끔 만족하면서, 나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들을 발견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미래와 현재, 그리고 새로이 만들어 나갈 과거들이 얼마나 내 앞에 놓여있든지 간에,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들에 대한 발견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적용될 훌륭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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