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삶은 고구마
외부 평가 대신 나다움을 선택하기까지,
고민 많은 9년 차 마케터의 솔직한 회고.
여전히 일은 어렵고 매 순간 헷갈립니다.
정답은 없으니 그저 기록합니다.
고구마는 비교와 불안 속에서 자라나
나다움과 온기로 천천히 익어가는 중입니다.
오늘도 나답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전합니다.
"그러니, 고구마 사세요"
우리는 종종 어떤 선택을 '망했다'라고 단정 짓고 싶어진다.
눈앞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힘들게 버텨 온 것들이 갑자기 사라질 때,
든든한 줄 알았던 조직이 순식간에 흔들릴 때.
이직 다섯 번을 지나, 여섯 번째 갈림길 앞에 서 있는 지금도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때의 선택은 잘못 고른 카드였을까, 최종 목적지로 가는 길목 중 하나였을까.'
마케터로 일하면서 얻은 인사이트 중 하나는 어떤 결과도 눈앞에 보이는 대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캠페인을 하나 집행하고 다음 날 ROAS만 보고 바로 실패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퍼널을 한 번쯤은 훑어봐야 하고, 노출된 타겟 지표를 들여다보고, 예상 데이터와 비교하며 세심하게 분석해야 한다.
삶도 비슷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망한 선택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나중에야 의미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그때는 아주 현명해 보였던 결정이 뒤돌아보면 생각보다 나와 맞지 않는 길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후회라는 감정은 참 애매하다. 이미 지나간 장면을 붙잡고 계속 리포트를 새로고침하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후회가 올라오면 애써 눌러 담거나, 지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척 덮어두려 했다. 위로를 가장한 외면에 가까웠다.
삶을 하나의 퍼널로 바라보기 시작한 뒤로, 후회 역시 일종의 데이터로 보인다. 괜히 마음이 오래 머무는 지점에는 대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가 들어 있다. 요즘은 캠페인 회고를 하듯이 그 시점의 정보와 조건을 정리해 본다.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던 내가 그때의 정보와 상황, 가치관을 함께 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무엇을 알고 있었고, 무엇을 전혀 몰랐는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어떤 리스크는 애써 외면했는지.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망한 선택이었다고 단정 짓던 것들도 조금 다른 모양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자꾸 떠오르는 후회에는 내가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숨어 있었고, 그때를 회고하며 나다움을 정리하면 앞으로의 선택이 더 선명해진다. 예상보다 빨리 망가진 비즈니스도, 조직 개편으로 사라진 팀도, 결국에는 내 기준을 업데이트해 준 사건들이다.
“내가 일하고 싶은 산업과 구조는 어떤 곳인지”
“건강을 잃으면서까지 버티고 싶지 않은 환경은 어떤 모습인지”
“돈과 타이틀만으로는 설득되지 않는 나만의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상처가 없는 건 아니다. 계약 종료, 구조조정, 건강 문제.. 이런 경험들은 언제 떠올려도 마음이 시리다. 후회를 단순 데이터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 그 안에는 분명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은 잠깐이라도 제대로 느껴야 한다. 다만 후회를 데이터처럼만 다루면 마음이 남아있고, 감정만 붙들고 있으면 배움이 없다. 캠페인 실패 보고서를 쓰더라도 담당자를 몰아세우기만 하면 다음 실험은 더 위축되듯이, 다음에는 조금 더 나다운 답을 해보겠다며, 다음을 위한 최소한의 온도를 남긴다.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들에는 조금씩 아쉬운 구석이 있다. 중요한 건 이게 망한 선택이었는지, 옳은 선택이었는지를 재단하는 일이 아니라 그 선택을 어디까지 끌고 가 보고, 어디에서 내려놓을지를 스스로 정하는 태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어떤 길에서는 조금 빨리 접는 것이 나에게 더 건강한 결말이기도 하고, 어떤 길에서는 조금 더 버티는 것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되기도 한다. 조금은 돌아온 지점들이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지도 분명 있다. 다만 부정적인 결과 앞에서 무작정 망했다거나, ‘다 이유가 있는 거야.’라며 무책임하게 말하고 싶진 않다. 한 스텝 한 스텝 걸어갈수록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조금 더 견고한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이고 싶다.
어차피 우리는 계속 선택해야 하는 존재이고, 일평생 한 사람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가야 한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경험들이 이어져 나라는 사람의 방향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들 테니까. 결국엔 그러한 선택후에 '어떻게' 사는지가 결정한다.
망한 선택일까, 위한 선택일까.
아마 그 답은 아직도 쓰이는 중인 나의 이야기가 언젠가 보여주리라 믿는다.
뭐가 됐든 그때의 선택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오늘의 데이터.
당신이 망했다며 후회했던 선택 이후, 무엇을 어떻게 채워나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