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친구파티에 초대된 막내는 선물포장과 축하 카드 쓰기를 함께 하자며 내게 왔다. 평소 우리끼리도 잘하고 의례적으로 그래왔듯이 우리만의 다꾸(다이어 어리 꾸미기)시간이 돌아왔구나~~~
사실 딸아이는 평소 내 빈티지 다꾸들을보면서 평을 내려주기도 하고 함께 재료들을 구하러 다니기도 하고 같이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 세상 둘도 없는 나의 다꾸 친구이다.
나는 선물을 하거나 카드를 써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언제나 한결 같이 만들고 그리고 찍고 붙이기를 하며 상대방에 따른 세상에 하나뿐인 카드나 봉투를 꾸며서 선물하곤 하는데...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커간다고 하니 그걸 보고 자란 딸아이는 당연한 수순이겠다.
다양한 재료들을 믹스매치하는 다꾸는 참 재미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것들의 결과물들을 미리 머릿속에서 상상해 보며 하기에 또한 그리 만만한 작업만은 아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그런 과정 속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서로 융합하는 법을 알아가게 되고, 이것 일련의 과정들이 쌓이게 되면 자연스레 통찰력과 혜안을 얻게 되기도 한다.
오늘은 딸의 친구 생일선물을 위해 스탬프로 엽서를 꾸며보고 포장봉투를 만들기로 했다. 친구에게 정성이 담기고 예쁜 그러나 세상하나뿐인 것을 선물하려고 스탬프들의 색과 포장봉투를 신중히 골라내는 딸의 모습도 그 마음도 참 예뻤다.
딸은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디자인한 후 그것들을 찍어내고 그 꽃을 담아내는 것처럼 표현해 보았다. 꽃을 담아내는 걸 표현하기 위해 이것저것 여러 재료들을 믹스해 보고 상의해 보면서 우리 스스로가 디자이너가 된 듯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회의를 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줄기의 길이 그리고 꽃의 명도와 채도, 바구니를 표현해 낼 가장 적합한 재료들을 엄선해 보고 또다시 찍어본다. 여러 번의 실패를 맛보고 맞이하는 결과물은 작은 희열감마저 느끼게 해 준다.
같은 재료들을 사용해도 만드는 이의 각자 개성이 다르므로 그 결과물은 언제나 다르다. 색을 쓰는 방법도 디자인하는 것도 모두 제 각각 일뿐.
그러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이 당연하듯 해놓고 나면 내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니 자꾸 내 것을 고치려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창조물은 정해진 틀이 있는 것도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비교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내 마음에 들고 그것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면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게는 커다란 가치가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내 일정들이 바쁘고 여유가 없을 땐 한편으론귀찮을 수도 있다. 때로는 시중에 파는 것들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정성을 표현해내고 싶은 딸아이의 그 맘을 알기에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려서 함께 동참해 주는 편이다.
나는 언제나 쿨해서 자기 얘기를 잘 안 하는 딸아이이지만 이 시간 동안은 좀 더 마음 편히 작업하면서 내가 몰랐던 보물들이 쏟아져 나오리라는 걸 안다. 그리고 딸 아이 얼굴에 보이는 그 행복감이 나를 거절시키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딸은 그 시간에는 마음이 평안해져서 그런 것일까?
평소에 잘하지 않았던 마음 깊이 묻어둔 말들도 딸아이의 입을 통해 듣게 된다. 현재의 고민이나 걱정 그리고 요즘 심정 등 봇물처럼 나오게 되니 그 시간은 그저 크래프트 시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귀한 시간으로 탈바꿈해주는 순간이 된다.
또, 엄마와 다꾸 하는 시간은 우리 모녀의 정서적 유대를 강화시켜 주고, 아이의 심미감을 높여주며 더불어 친구를 위한 결과물까지 나오는 일석삼조의 시간이 되니 내가 결코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딸은 몇 시간 동안의 사투로 맘에 꼭 드는 결과물을 만나게 되었다. 선물을 들고 가는 내내 그리고 선물을 주는 그 시간에도 아이는 기대반 설렘반의 마음이었다. 결국 친구가 맘에 든다며 고마워하고 소중해하며 친구엄마들이 만든 거냐 물으며 이쁘다 해줬을 때 딸아이 얼굴에 비로소 웃음꽃도 활짝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