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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Oct 18. 202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입니다. #1

제1장. 스터디 카페를 열기로 한 건 꽤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①

#1. 회사를 그만두다.


 회사를 그만둔 건 순전히 자의에 의한 선택이었다. 물론 자의 반에 타의 반이 섞여있긴 했지만 그래도 최종 결정을 내린 건 나 자신이었다. 회의가 길어지거나 사고가 터질 때마다 역시나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갔던 신입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버티고 버텨 잘 풀리면 과장님 되는 거잖아요. 뼈를 갈면 팀장님? 전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아요. 어쨌든 저한테도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요.


 어르고 달래 일 가르쳐놨더니 한다는 소리였다. 나가겠다는 통보였다. 이제 겨우 쓸 만해지니 신입은 꿈과 미래를 타령했다. 뽑아만 주시면 회사를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하겠다던 절절함은 사계절이 채 지나기도 전 자취를 감추었다. 그 회의적이고도 당당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판공비는커녕 차비도 없이 신입을 잡아오라는 회사였다. 고기라도 사주면서 좀 달래 봐, 라던 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맞는 말이었다. 버티고 버티다 일이 잘 풀릴 경우 맞이할 미래는 멀끔한 중년에 자가 한 채 마련하지 못한 팀장이었다. 숨이 막혔다. 역시나 무주택자인 내가 부모님께 물려받을 수 있는 재산이라고는 수십 년 후에나 수령할 수 있는 천만 원짜리 사망보험금이 전부였다. 신입의 눈에 내 미래는 현재의 팀장보다 몇 배는 어두워 보일 것이었다. 분명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어른이 된 나는 그런 시선의 삶을 나는 살고 있었다.


 이직은 어디로 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신입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넉넉하진 않다 해도 부족하지도 않은 집에서 자란 친구가 분명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가정환경은 얼굴로, 낯빛으로 드러났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지지받으며 살아온 사람들 특유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부러웠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졌다.


 발리에 갈 거예요.


 순간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일 년 동안 모은 돈을 모두 털어 항공권과 숙소를 구했다는 말이었다. 자신을 위한 선물인 만큼 좌석은 큰맘 먹고 비즈니스로 끊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핸드폰을 꺼내서는 최종적으로 결정한 숙소라며 사진들을 보여주는 신입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꽤 이국적이고 고급스럽게 보이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왜 하필 발리냐고 물었다. 신입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서핑하러 가요.


 서핑?


 가서 원 없이 서핑하고 오려고요. 과장님은 서핑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하셨죠?


 그 말을 듣자 몇 달 전에 있었던 월차 사건이 떠올랐다. 결국 모든 것은 나 때문이었다.


 내가 담당하고 있던 해외 바이어가 잠수를 탔다. 코로나로 인한 자가 격리에 시간을 낼 수 없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에 나갈 수도 없었다. 절반 이상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는 폐기되었고, 그를 수습하고 손실을 줄이기 위한 새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누가 보아도 무리한 일정이었다. 하청업체는 기한 안에 일을 마칠 수 없다며 보이콧을 선언했고, 기존 업체를 달래며 새 거래처를 뚫기 위해 팀원 전체가 재택근무를 포기하고 출근을 했다. 부서장님부터 인턴까지 모두가 비상이었다.


 그러던 중 신입이 월차 신청서를 내밀었다. 처음엔 정신이 나갔거나 아니면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뭐, 월차? 네. 딱 하루만요. 지금 월차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주말까지 나와서 일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인데 뭐? 월차를 낸다고? 저도 주말에 많이 나왔어요. 지난달, 지지난 달도 월차 사용 안 했고요. 그건 알지. 미안해. 미안하게 생각해. 그런데 우리 팀원들 중에 요 몇 달 사이 월차 쓴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 보여? 부서장님까지 나와서 전화 돌리는 거 보면서도 그런 말을 해? 회사 상황 뻔히 알면서 사람이 왜 그래? 그러니까 며칠 아니고 하루요. 다음 주 월요일, 딱 하루만 쓸게요. 진짜 미안한데, 이번엔 안 돼. 다른 팀까지 우리 도와주려고 주말출근하고 있는데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신입과의 언쟁은 팀장의 개입으로 중단되었다. 증빙서류 챙길 수 있는 경조사 아니면 나오거나 나가거나 둘 중 하나만 하라는 말이었다. 중년 남성의 윽박지름 한 번에 신입은 꼬리를 내리고 자리로 돌아갔다. 바들바들 떨리는 어깨에서 분노가 느껴졌지만 제까짓 게 화가 나면 얼마나 난다고 저러는지 우습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것이 바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실전형 신입 교육이었다.


 그리고 그 주 내내 신입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생글거리던 미소가 얼굴에서 사라졌다. 문득 혹시 아픈 가족이라도 보러 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팀장 역시 나와 같은 생각 중이었다. 사과를 할 사안도 아니어서 더 복잡했다. 이 일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팀장과 이박 삼일 함께 술을 마셨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상전 중 상전이라 비위를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는 토로가 끊이지를 않았다.


 어린 친구. 어린 친구라. 아직 어린 줄 알았는데, 어느덧 ‘어린 친구’의 범주엔 더 이상 내가 없었다. 서운했지만 현실이 그랬다. 아직 사십 대가 되지 않은 삼십 대, 이제 스물보다 쉰이 더 가까운 나이, 그것이 내 포지션이었다. 눈 한 번 깜빡하니 이제 정말 어른이었다.


 신입이 월차를 내려던 사유는 며칠 뒤 다른 팀 대리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서핑을 가려고 했다는 전언이었다. 다른 요일도 아닌 월요일에, 월차까지 내고, 무려 서핑을 가려고 하셨단다. 뭐, 서핑?


 물론 매주 주말이면 비가 왔던 여름이었다. 유일하게 맑았던 주말, 파도가 기가 막혔다던 그 주말에 신입은 서핑을 하기 위해 고성을 가려했다고 했단다. 미안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건지 사람이 이기적이어도 너무 이기적이었다. 따끈한 소식을 팀장에게 고스란히 전했다. 그런데 팀장의 반응이 의외였다. 함께 신입 욕을 할 줄 알았던 팀장은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거면 사과를 해야겠네. 이 과장은 가만히 있어. 내가 얘기할게.


***


 사표가 수리되고도 열흘을 더 일한 후에야 회사에서 짐을 뺄 수 있었다. 이십 대 때 몇 번의 이직을 경험해보긴 했지만. 팔 년을 일한 직장을 그만두는 건 생각보다 시원섭섭한 일이었다. 바이어 잠적 건으로 회사는 십억도 넘는 손해를 입었다. 복잡한 마음과는 다르게 절차는 간단했다. 그저 짐을 빼고 오천만 원가량의 퇴직금을 받으니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결론적으로는 자발적 퇴사였지만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었다. 힘을 써준 것이 팀장이라는 소식을 들은 건 퇴사를 하고 나서도 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알람 없이 눈을 뜬 여느 날이었다. 대충 오전 열한 시 경일 것이었다. 커피 한 잔을 타서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습관이었다. 작은 동그라미 안에 적인 미확인 숫자를 견딜 수가 없었다. 일종의 직업병이었고 강박이었다.


 광고만 한 가득일 카카오톡과 메일을 확인하고 있을 즈음 영업팀 서 과장한테 전화가 왔다. 동갑이자 입사동기이기도 한 서 과장의 목소리엔 멕아리가 없었다.


 “이 과장, 아니, 이제 이 사장님인가?”


 “아직 부동산 계약한 것도 없는데 사장은 무슨.”


 “바깥세상은 어때. 진짜 듣던 대로 지옥이야?”


 “아직까지는 천국. 실업급여 따박따박 받으며 내 사업 구상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아직 월급쟁이 구만. 출근만 안 하는 월급쟁이.”


 사람 좋은 목소리로 함께 웃음을 터뜨렸지만 사실 시간이 흐르며 생겨나는 불안감을 컨트롤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져본 큰돈이었다. 오천만 원이란 목돈을 이렇게 손에 쥐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대출을 있는 대로 당겨서 지방 부동산이라도 사두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라면 사업 시작 전까지 주식이나 가상통화 시드를 키워 단타라도 치고 빠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 머릿속을 헤집어놨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은 바짓단으로 줄줄 새는 동전 같았다. 구체적 계획 없이 대충 그린 청사진만으로 퇴사부터 지른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이런 불안감을 서 과장은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듯 보였다.


 “사업 종목은 결정했어?”


 “사업이라니 뭔가 부끄럽네. 임대업 하려고.”


 “임대업? 우리 퇴직금이 그렇게까지 나와?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턱도 없을 거고. 목 좋은 곳에 상가 한 칸이라도 구할 수 있는 돈인 거야?”


 “부동산 임대업 말고, 공간 임대업.”


 “공간 임대업?”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란 문구는 다름 아닌 사훈이었다.


 바이어 사건이 터진 후, 머리를 시키기 위해 동네를 매일 걸었다.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면 사무실 입성과 동시에 느껴지는 퇴사의 압박이 조금씩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걸음 속도를 늦추니 평소엔 그냥 지나쳤던 길거리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상권’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 동네엔 있을법한데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스타벅스와 올리브영, 다이소, 주거래은행, 스터디 카페 등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미친놈도 아니고 ‘없으면 만들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적은 인원이지만 내가 들어서면 직원들이 인사하는 건방진 생각도 조금씩 자라났다. 불가능할 것 같던 상상은 머릿속에서 점점 현실화되어갔다. 다른 점포들은 힘들어도 스터디 카페 하나 정도는 오픈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 이후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믿기 힘들게도 이 동네엔 그 흔한 독서실 하나가 없었다. 큰 아파트 단지들이 여럿 있는 항아리 상권인 데다 근처에 중학교도 두 개나 있는 동네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이런 곳에 스터디 카페가 없다니. 이건 제주도 해변에 카페가 없다는 것과 비슷한 상황 아니야?


 하는 생각에 불이 붙어 머릿속을 휘젓자 스터디 카페를 열어 얻을 수익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한 시간에 2,000원씩 24시간이면 48,000원이었다. 50 좌석만 놓는다 해도 하루 매출이 2,400,000원이었다. 한 달을 30일로 잡으면 72,000,000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고, 좌석이 꽉 차지 않을 경우를 가정하여 최대 매출의 절반을 잡아도 36,000,000원이었다. 좌석 반 토막에 시간 반 토막을 내도 18,000,000원이었다. 월세에 알바 월급까지 계산해도 지금 월급보다는 남는 게 많았다. 커피와 간식까지 팔면 수익은 그 이상일 것이었다. 남들이 치고 들어가기 전에 선수를 쳐야 했다. 월급쟁이가 꿀 수 있는 꿈 이상의 미래를 꿈꾸고 싶었다.


 “스터디 카페 준비하고 있거든. 잘 되면 2호점 점장 시켜줄게.”


 2호점이라니. 세상에, 2호점이라니. 생각해보니 잘 풀리면 프랜차이즈를 차려 회장님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었다. 평생의 목표가 집 한 채 소유하는 것이 아닌, 인생을 소유하는 것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삶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다. 왜 이런 일을 이제야 생각했는지,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런 생각은 눈치챈 듯 보이는 서 과장이 연신 부러움을 표했다. 얼마 전 딸이 태어난 서 과장은 똥밭에 구르게 되어도 회사를 그만둘 수 없을 것이었다.


 “역시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네. 너를 친구로 둔 나 자신을 칭찬한다.”


 “총알 좀 준비해놓으라고.”


 “진짜 2호점까지 잘 되면 3호점은 꼭 김 팀장님 챙겨드려라. 김 팀장님이 너 실업급여받게 하려고 진짜 많이 애쓰셨대. 전무님 비서가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던데 엄청 아쉬운 소리 하셨다나 봐.”


 딱히 능력 있는 상사는 아니었지만 사람 하나는 좋았던 김 팀장이었다. 지점 당 나에게 떨어지는 배당이 매달 오백 이상 나오면 정말 그래야겠다고, 나 혼자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 삶이 아닌 주변도 좀 챙기는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건방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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