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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Oct 22. 202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입니다. #4

제1장. 스터디 카페를 열기로 한 건 꽤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④

#2. 문제는 오픈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되었다.(3)


PART 3. 사업자등록


 유일하게 수월했던 파트였다. 세무서에선 부동산 계약서와 신분증 외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세무서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업자등록증이 발급되었다.


 오늘부터 나는 ‘집중력이 높아지는 스터디 카페’의 대표였다.


PART 4. 인테리어(1)


 가장 큰 문제는 인테리어 파트에서 발생되었다.


 블로그에 후기를 올린 업체들, 동네에서 가까운 업체들, 숨고 등 전문가 매칭 사이트에서 입찰을 보낸 업체들에 견적을 물었다. 업자들은 평당 150~250만 원 정도의 인테리어 비용을 요구했다. 물론 책상 등의 물건들은 빠진 비용이었다. 프랜차이즈로 스터디 카페를 차릴 경우 가맹비 포함 1억 5천~2억 5천 가량이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물론 저렴한 비용이었지만, 현재 내게 남아있는 총알은 겨우 몇 천이었다. 사업을 시작하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자본을 갖고 덤벼들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하지만 경영학과-대기업 출신 문돌이에게 다른 선택권은 쉬 눈에 띄지 않았다. 대기업을 다닐 때와 비슷한 혹은 더 많은 급여 수준을 유지하려면 결국은 돌고 돌아 창업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창업도 총알이 없으니 한 걸음, 한 걸음이 뻘밭이었다. 인테리어 비용을 아끼든 대출을 쥐어짜 보아야 했다.


 보증금 이천도 이천이었지만 부동산 복비에 이백만 원 가까운 비용이 소요되었다. 거주용 부동산을 구할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부 자영업자들이 탈세를 하는 이유가 벌써부터 알 것 같았다. 은행 어플과 엑셀부터 다시 열었다.


 목돈이라고 생각했던 퇴직금 중 현재 남아있는 돈은 삼천이 안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모아둔 예금과 적금, 적립식 보험, 주식과 차를 모두 처분했을 때 확보할 수 있는 현금을 계산했다. 남은 퇴직금까지 더하면 총 9,200만 원 정도의 현금이 떨어졌다.


 총알 분석 이후엔 꼭 필요하거나 점검해야만 하는 공사들을 정리했다.


- 전기 : 전력량 체크 / 조명 더 넣기

- 배관(닥트) : 환기 / 냉난방 / 조리

- 화장실 : 남녀 화장실 구분

- 벽&천장 : 도배 or 페인트 or 목공사

- 바닥 : 타일 or 에폭시

- 평면도에 따른 가벽 및 룸 설치

- 카운터 or 키오스크

- 간식 존 or 조리공간 확보

- 인터넷 및 컴퓨터, 프린터

- 냉난방기 : 천장 or 스탠딩

- 공기청정기 & 산소발생기(선택)

- 스피커

- 사물함(선택) / 우산 거치대(선택)

- 그리고 가장 중요한 책상과 의자

 내역을 뽑아보니 프랜차이즈나 인테리어 업자들이 왜 그 비용을 부르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보증금의 잔금까지 치른 마당에(멍청한 놈, 왜 부동산부터 계약했는지.)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대한 비용을 줄여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업체를 끼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공사와 꼭 전문가가 시공해야 하는 공사로 카테고리를 나누었다. 전기와 닥트, 냉난방기 설치, 화장실 분리 공사, 가벽 및 카운터 설치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카운터 대신 키오스크를 설치할까도 생각했지만 설치 견적을 받아보니 최소 5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했다. 사물함 및 출입문 연동도 되는 물건의 경우에는 매달 관리비도 10만 원가량 들었다. 어차피 식음료를 팔 계획이면 알바가 필요할 것이었고, 그 알바에게 결제와 좌석관리, 사물함 배정까지 맡기면 될 터였다. 생각해보면 대형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되어 있는 키오스크조차 툭하면 터치 인식이 버벅거렸다. 아직까진 기계보다 사람이 나은 세상이라고, 일단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전기였다. 꽤 오래 공실이었다는 우리 가게의 기존 계약 전력량은 3kw였다. 여기저기 검색하고 발품을 팔아본 결과, 3kw로는 스터디 카페의 조명과 냉난방기도 마음 놓고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전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적절한 전기량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정확하진 않아도 56평 규모의 스터디 카페라면 계약전력이 15kw는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추측성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에. 계약 전력량이라니. 역시나 인생을 살며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주제였다. 무려 21세기의 대한민국이다. 전기는 콘센트에 전원을 꼽으면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전에 납입하는 전기 증설료와 실제 공사를 진행해줄 대행업체의 대행료, 공사료를 모두 합치니 130~180만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했다. 130만 원을 부른 업체의 경우 삼 주 이상 기다려야 공사가 가능하다고 했고, 180만 원을 부른 업체는 이삼일 안에 날짜를 조율해 공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주었다. 이미 부동산 계약 시작일이 지나 월세는 나가고 있었으므로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전기 증설이 되었다는 가정 하에 다음 단계는 조명과 콘센트를 집어넣을 전기공사였다. 업체들에 직접 전화를 하며 문의를 한 결과 저렴하게 끊으면 한 평당 20만 원 내외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6평으로 환산하면 총 1,120만 원이었다.


 문제는 목공사였다. 목공사는 단열과 방음을 어느 정도로 진행할 것인지에 따라 비용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일하시는 분들의 숙련도에 따라 비용 차이가 컸다. 아무리 거지 같은 상황이더라도 여기에는 돈을 좀 써야겠다는 판단이었다. 실력이 없는 초짜에게 작업하고 계속 수리하며 사느니 조금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확실한 전문가에게 시공을 받고 싶었다.


 목공사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상당히 비밀스러운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몇 평에 얼마라는 표준가가 없었다. 전화나 이메일로 견적을 받아 여덟 곳의 업체들과 직접 미팅을 했다. 당혹스러웠던 건 가장 고비용을 부른 업체를 제외한 모든 업체들이 처음 제안서를 내밀었던 것보다 두 배 이상의 견적을 말한 것이었는데, 그들은 이것이 이 업계에선 당연한 일이라는 듯 오히려 나를 얼뜨기로 취급했다. 좋은 목수와 좋은 기술자를 만나는 일은 괜찮은 중고차를 합리적인 가격에 사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이 분명했다. 저렴하게 공사했다고 기뻐했다 나중에 눈탱이 맞은 것을 안 사람들이 여기저기 한 트럭이었다. 그 트럭에 함께 올라타고 싶진 않았다.


 아끼고 아껴 총 3,000만 원 정도에 천장 조명 인테리어, 벽, 단열, 가벽 설치(공간 분리), 카운터 및 화장실 분리 공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도기를 뜯어내는 공사엔 또 목돈이 들어갈 것이었으므로 벽을 조금 부수고 칸과 칸 사이에 가벽 공사를 해 화장실을 분리하기로 결심했다. 방수페인트는 몇만 원밖에 하지 않으니 그 정도는 기초공사 후 스스로 칠하면 될 일이었다. 생각만으로도 팔이 아픈 것 같았으나 돈을 아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없던 힘도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여기까지 계획을 짠 후 전기 시공업체와 목공사를 진행할 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시작이 반이었다. 일단 뭐라도 저질러야 일은 진행될 것이었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여기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전기공사와 목공사는 같이 진행되어야 했고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닥트공사와 냉난방기 설치까지 한 번에 되어야 했는데, 공사를 진행할 업체들을 직접 섭외하는 바람에 각 업체별 공사 날짜 역시 내가 직접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급하게 천장형 냉난방기까지 알아보았으나(대당 가격은 약 200만 원, 설치비용은 호스 길이에 따라 100~200 사이였다.) 그 모든 업체들을 한꺼번에 부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그렇게 될 경우 목공사 기간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소요비용은 수백 혹은 수천까지도 추가될 것이란 현실을 깨달았다.


 아직 바닥공사는커녕 책상과 의자 비용도 계산하기 전이었다. 남은 퇴직금만으로 공사를 마무리 짓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 돈, 돈. 결국엔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우선 적금을 해지해 예금으로 돌려 넣고, 수익률 관계없이 주식에 넣어두었던 돈들을 모두 빼냈다. 적립식 보험의 경우 해지를 신청했는데 만기 전에 해약을 하다 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총 2,600만 원이 넘는 보험료를 부었는데 돌려줄 수 있는 금액은 총 1,400만 원이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순 도둑놈들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론 내 잘못이었다. 코 찔찔 흘리던 20대 시절, 약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엄마 친구에게 보험을 든, 그래,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었다.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을 현금화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서울 변두리 13평 아파트의 전세금과 이제 막 5년 할부가 끝난 국산차는 차마 현금화할 수가 없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결국 차를 팔지 않았기에 손에 쥐게 된 현금은 8,000만 원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 예금 안에서 무조건 해결을 해야 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니 다시 스터디 카페 전문 인테리어 업체들로 눈이 돌아갔다. 평당 150만 원이 들어갈 경우 추가 비용이 없다 해도 8,400만 원이 들어 책상을 살 수가 없었다. (이쯤에서 ‘한실 스터디 카페, 바닥에서 먹을 갈다.’라는 콘셉트 스토어를 열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느 인테리어 업체들처럼 홈페이지 하나 제대로 없는 작은 회사였다. 업체는 평당 100만 원, 총액 5,600만 원에 모든 인테리어를 해주겠다는 제안서를 내밀었다. 책상 등의 비품은 따로 사서 설치해야 하지만 천장부터 바닥, 전기부터 냉난방 공사까지 모든 공사들을 자신들이 해결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렇게만 비용을 뺄 수 있다면 남은 돈으로 책상과 의자를 사고 음료와 간식을 팔 휴게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지며 눈물이 찔끔 흘렀다. 이렇게 고민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발품을 파는 하루하루 역시 월세가 나가고 있는 다급한 날들이었던 것이다.


 업체와의 계약서에 사인을 한 날 느꼈던 안도감이란 재수를 하지 않고 대학에 합격했을 때보다, 몇 번의 이직 끝에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을 때보다, 주어진 기한 내에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큰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노력하다 보면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그때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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