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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Oct 18. 202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입니다. #3

제1장. 스터디 카페를 열기로 한 건 꽤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③

#2. 문제는 오픈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되었다.(2)


PART2. 부동산(2)


 결국 예산 안에 들어온 후보지는 주거구역과 상업구역이 애매하게 겹쳐 있는 동네였다. 처음엔 아파트단지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항아리상권을 노렸지만, 그런 동네의 경우 마땅한 건물이 눈에 띄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없는 4~5층 건물이 간혹 매물로 나와 있긴 했지만 하굣길에도 피곤하면 택시를 탄다는 요즘 학생들에게는 메리트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돈 쓸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 역시 회사생활을 통해 배운 귀한 교훈이었다.


 부동산에 들르기 전, 봐두었던 건물들을 먼저 찾아가보기로 했다. 또다시 망신을 당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가장 먼저 들른 건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120만 원짜리 건물이었다. 지하 없는 6층짜리 건물의 3층이었다. 후보군에 올려놓은 장소들 중 가장 저렴한 물건이었는데, 집에서는 버스로 다섯 정거장, 지하철로는 애매한 두 정거장이 소요되었다.


 일 층 출입구 양 옆으로 부대찌개 가게와 간판집이 자리 잡고 있는 대로변 육 층짜리 건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어둡고 음침했다. 층고가 높아 계단은 상당히 가팔랐고, 공용 계단과 복도의 조명은 너무 어두웠다. 8인승이라는 엘리베이터는 사실상 가방 멘 학생 세 명이 타면 게임 끝, 네 명이 타면 다른 사람에게 몸이 닿을 정도의 사이즈였다. 역시 저렴한 물건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다음 후보지로 향했다.


 다음 물건은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있는 사 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었다. 보증금은 2,500만 원으로 이전 건물과 비슷했지만 월세가 230만 원으로 두 배 가량이었다.


 아파트 단지들을 끼고 있어 손님 끌기가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일 층의 오픈상가들은 상당히 한가해보였다. 옷가지와 장신구, 조명 등을 파는 작은 상가의 주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20년도 넘게 사용한 듯 보이는 의자에 앉아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한 작고 뚱뚱한 TV를 뚱하게 보고 있었다. 상가 중앙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지만 작동은 되지 않았고, 위층으로 올라가려면 상가 양쪽 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물론 멈추어버린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도 되었지만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된 흉물을 딱히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공실은 사층에 위치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꽤 많은 공실들이 사층에 위치했다. 멈춰선 에스컬레이터 주변 오픈상가들은 주인을 잃은 지 꽤나 오래되어보였다. 그 와중에 상가들의 문은 하나같이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굳게 잠겨있는 문 너머로는 온갖 고지서와 광고지들이 흉하게 쌓여있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공실이었고, 이따금 먼지가 앉은 유리문 위로 경매니 압류니 하는 하얀 A4들이 보기 무섭게 붙어 있었다. 그 와중에 새로 오픈한 듯 보이는 네일샵과 피부관리샵, 장사가 가능한지 의구심이 드는 카페와 이 층의 유지처럼 보이는 미용실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압류를 당하고 경매를 당하는 이 와중에도 장사를 할 사람은 장사를 하고, 먹고 살 사람들은 다 먹고 살고 있었다.


 고요한 상가의 적막을 깨뜨린 건 다름 아닌 아이들의 고성이었다. 멈춰선 에스컬레이터 아래 고삐 풀린 망나니처럼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이 보였다. 부모는 어디 가고 애들만 저러고 있나 싶어 내려가 보니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교습소와 수학공부방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음식냄새가 난다 싶어 냄새를 따라갔더니 지하엔 생각지도 못한 식당가가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영화관만 없었다 뿐이지 멀티플렉스였다. 이곳에 자리 잡게 된다면 방음과 냄새부터 시작해 처리할 일들이 꽤 되겠다고 생각하며 다음 후보지로 걸음을 옮겼다.


 세 번째로 찾은 곳은 지하철역과는 가깝지만 대로변에서 한 블록 뒤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아파트촌으로부터 두 블록 거리에 위치한 오 층짜리 건물은 연식이 묻어났지만 관리는 잘 된 듯 보였다. 뒤로는 빌라와 다세대주택, 동네 상가들이 거대하게 펼쳐져있었다. 사거리에 서면 눈에 보이는 곳에 편의점 두 개와 이디야와 메가커피, 동네 카페 두 개가 보였다. 이제는 없어진 줄만 알았던 이용실과 미장원도 있었고, 양장점과 꽃가게, 냉면집과 백반집도 보였다. 무엇보다 근처에 남중과 남녀공학 중학교, 세 블록 거리에 여고도 하나 있었다. 공실이 위치한 곳은 삼층이었고, 사용 가능한 전용면적은 186㎡(약 56평)이었다.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180만 원, 조건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단, 이곳에는 앞서 언급하지 않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일층에 위치한 삼겹살집과 횟집, 이층에 위치한 이자카야였다. 같은 이층에 위치한 고시원과(고시원이 왜 2층에 있는 건지 아직까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하에 위치한 PC방, 사층과 오층에 위치한 사무실들은 별다른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지만 특히 삼겹살집에서 냄새가 올라올 경우, 술집에서 큰소리가 날 경우 매출에 심각한 타격이 입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 세 장소가 일주일을 꼬박 투자해 추리고 추린 스터디카페 부지 후보지들이었다. 먼 동네로도 발품을 팔아볼까 생각해봤지만 잘 모르는 동네에 개업했다가는 실패할 확률이 커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이것이 꽤 잘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망하는 자리에 들어온 가게들은 계속 망한다. 그 진리는 굳이 자영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성인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고르고 고른 부동산은 간판도 가장 깨끗하고 네이버 부동산에 물건도 많이 올려놓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건물 한쪽 벽면을 모두 덮은 ‘상가 전문 부동산’이라는 광고에 신뢰도가 올라갔다. 저 정도 ‘상가 전문’이면 처음엔 전문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전문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문을 열자 중년의 아주머니 두 분과 20대처럼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다급하게 마스크를 썼다. 공기 중에 남아있는 찌개 냄새와 생선 냄새가


 불쾌했다. 스터디카페 내에선 이용객도 직원도 냄새 나는 음식은 절대 취식 금지였다. 새로운 규칙이 이렇게 추가되었다.


 “전화하고 오셨나요?”


 그래도 군대는 다녀왔겠다 싶어 보이는 남자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꽤나 트랜디한 복장이 회사시절이 아닌 대학생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아니요. 예약 필요한가요?”


 “주면 좋으신데 꼭 필요한 건 아니에요. 앉으세요. 뭐 찾으시는 불건 있으셔요? 커피 하시죠? 실장님, 여기 커피 두 잔이요.”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이런 음식냄새 나는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마스크를 내리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진 않았다. 실장님이라 불린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노란 믹스커피와 종이컵은 커피포트 옆이 아닌 실장님 책상 밑에 있었다.


 누가 물은 것도 아닌데 앞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손을 내저었다. 내 시선이 티가 난 모양이었다. 역시 자기 사업 하는 사람들의 눈치와 촉은 대한민국을 다 뒤져도 따라갈 직장인이 없을 정도였다.


 “부동산이 제일 만만해요, 아주.”


 “네?”


 “물 한 번 마시겠다, 화장실 좀 쓰겠다, 더운데 추운데 잠깐 들어갔다 가겠다, 다들 동네 사랑방으로 안다니까요.”


 “아, 네.”


 “커피도 여기 아저씨들이 하도 왔다 갔다 하면서 한 잔씩 빼 드셔서 안에 넣어놨어요.”


 “대표님, 여기요.”


 어느덧 실장님이 종이컵에 탄 믹스커피를 책상 앞에 내려놓았다. 내 앞에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이 부동산의 대표님이었다.


 “네이버 부동산에서 물건을 좀 봤는데 여기 부동산이 올린 물건으로 되어있어서요.”


 “그럼, 잘 왔어요. 우리가 이 근방에서 상가물건은 제일 많아요.”


 그때 부동산으로 전화가 왔다. 어린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을 장소 하나 따로 없는 이 작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세 명의 직함이 대표, 실장, 팀장인 모양이었다. 하긴, 사업자를 내면 나도 그 순간부터 사장이었다. 아직 직장인 물이 덜 빠진 것인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자신이 팀원이며 팀장인 삶은 어떠한 것일지 아직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전화에 잠시 집중력을 빼앗긴 나를 다시 부른 건 대표였다. 아마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을 부동산 대표는 노련한 목소리로 관심 물건을 물었다.


 “몇 개 있는데요. 우선 ○○아파트 사 층에 있는 공실이요.”


 “거기 공실 여러 개 있는데. 어떤 거 보셨어요?”


 “그 피부관리샵 뒤쪽에 있는 48평짜리요.”


 “아, 그거 지금은 중간에 가벽 세워져 있는데 철거 가능해요. 그런데 뭐 하시려고.”


 “스터디카페요.”


 “어머, 스터디카페! 요즘 많이들 생기던데 이 동네는 왜 없는지 안 그래도 이상했어요. 엄마들이 너무 좋아하겠다. 아래 공부방도 있고, 그 건물이 주상복합이잖아요.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 정말 좋아하겠네. 주변 아파트단지 사람들도.”


 “보증금 2,500만원에 월세 230만원으로 봤고.”


 “네, 맞아요.”


 “그런데 권리금이 협의로 되어있더라고요. 권리금이 있나요?”


 “원래 천오백 있었는데 거기 빈 지 반년도 넘었고, 그리고 이전 임차인이 월세를 좀 밀렸었다나 봐요. 심지어 관리비도. 그래서 아마 얘기만 잘 하면 대폭 깎을 수 있을 거야. 내가 임대인이랑 잘 얘기해볼게요.”


 예상치 못한 비용은 권리금이 전부일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건물엔 관리비도 있었다. 지금 혼자 살고 있는 18평짜리 주공아파트의 여름 관리비가 6~8만원, 겨울 관리비가 15~18만원이었다. 상가는 바닥 난방을 하지 않으니 도시가스비용이 들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돈을 내는 주체들이 적어 비용이 조금 올라가긴 하겠거니 하고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임대인한테 지금 전화 한 번 해볼까요?”


 “거기 관리비는 얼마나 해요?”


 “잠깐만요, ○○아파트 상가 관리비……. 여기 30평 기준으로만 적혀 있는데 30평에 58만 원 정도 하니까…….”


 “58만원이요?”


 평정심을 지킬 수가 없었다. 바닥 난방도 하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도 멈춰놓은 상가의 관리비가 어떻게 그렇게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부동산 대표의 나에 대한 경험치 파악이 완료된 듯 보였다.


 “그래도 백만 원은 안 넘는다고 알고 있어요.”


 “네? 백만 원이요?”


 “아유, 이렇게 큰 건물들이나 아파트 단지 내 상가들은 원래 관리비가 좀 세요. 이게 면적 따라 달라지는 거라서 넓은 평수는 조금 더 내는 거고. 여기가 엘리베이터도 두 개씩 총 네 대나 있고, 지하주차장도 운영하고 있어서 운영비가 작은 빌딩보단 많이 들어요. 내가 알기론 거기 일 층에 두 평, 세 평짜리 오픈상가 사장님들도 매달 15만 원 정도는 내고 있을 걸요? 냉난방 할 때는 이십 정도? 관리비 아까운 걸로 치면 그 사장님들이 제일 아깝지. 그래도 경비 아저씨들도 한 타임에 두 분씩이나 근무하고, 화장실 청소도 매일 한 번씩 하는데. 그거 아까우면 장사 못 하죠.”


 따발총 같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머릿속에 남은 건 관리비가 백만 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모든 좌석이 만석에 24시간 돌아간다면 그깟 백만 원이야 새 발의 피 같은 돈이겠지만, 초기 자금이 빡빡해 보이는 현재 입장에서는 새 발의 피가 아닌 그냥 피 같은 돈이었다. 보증금에 월세, 관리비, 권리금뿐만이 아니라 초기 인테리어 비용, 책상 및 의자 구입비용, 청소업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줄 돈 역시 생각해야 했다. 빠듯함을 넘어 갑갑했다. 두 번째 옵션으로 넘어가야 했다.


 “저 다른 곳도 생각해둔 곳이 있는데요.”


 “또 어디 보셨어.”


 “△△△역 뒤편에 50평대 건물인데요.”


 “아, 그 삼겹살집 삼층?”


 대표님이 나를 파악한 것처럼 내가 대표님에 대해 파악하게 된 순간이었다. 클릭 한 번 하지 않고도 말하는 부동산에 대해 척척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이 부동산은 상가 전문 부동산인 것이 분명했다. 상당히 높아진 신뢰의 눈빛으로 대표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거기는 관리비 십만 원도 안 해요. 대신 계단 청소는 직접 해야 하고, 화장실 관리도 다들 직접 하고.”


 청소야 직접 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내 눈빛을 읽은 대표님은 신이 나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거기 임대인하고 나하고 아는 사인데 보증금도 조금 깎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요. 심지어 거긴 무권리!”


 여기에서 게임은 끝이 났다.


 “조건이 조금 있기는 한데, 그 조건만 수락되면 보증금은 이천 정도로 낮아질 거예요. 이것도 우리 부동산이어서 가능한 거. 이 임대인이 나를 엄청 신뢰하거든.”


 스터디카페의 주소가 결정되었다. 가계약으로 보증금의 10%를 입금하고 임대인과 계약날짜 일정을 조율하는 대표님의 모습이 그렇게 듬직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는데 식사는 잘 챙기셔야지, 하는 생각이 들며 불과 몇 분 전에 했던 불경한 생각들에 부끄러워졌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그릇만큼만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것이 분명했다.


***


 계약 날이 밝았다. 임대인은 동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평범한 사십대 어머님이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는 임대인에게 부동산 대표님이 운을 띄웠다.


 “저기, 그 보증금이요. 그때 낮춰줄 수 있다고 했잖아요.”


 “맞아요. 지하까지 같이 임대하시면…….”


 “지하요?”


 끼어들지 않을 라야 않을 수가 없었다. 두 개 층, 그것도 연결되는 층도 아니고 심지어 지하를 임대하는 조건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저는 스터디카페를 열거라서 지하는 필요가 없어요.”


 “아유, 사장님, 끝까지 좀 들어보세요.”


 사장님이란 단어가 정신을 더 퍼뜩 들게 만들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과 목소리에 넙죽 넘어가선 안 될 일이었다.


 처음 듣는 말은 임대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얘기가 된 것 아니었나요? 저는 계약금을 200만원만 넣으시기에 이야기가 다 끝난 줄 알았어요.”


 “자세한 건 안 하고 대충만 얘기해서 그래요. 여기, 지하실도 낙낙히 30평은 족히 나오는데 지하실까지 임대하면 월 임대료가 230만원이에요. 3층하고 지하 합쳐서, 이백삼십!”


 들어볼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제안을 듣고 나니 마음이 흔들렸다. 50만원만 더 추가하면 무려 30평의 공간을 더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지하이고 층도 멀리 떨어져 있어 관리하긴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이득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지하실을 본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느낌이 좋았다.


 임대인은 부동산 업자와 달리 꾼이 아니어서 내 표정을 읽지 못한 모양이었다.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내게 임대인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혹시 부담되시는 거면 10만원 더 빼드릴 테니 총 220만원에 계약하시는 건 어떠세요? 저도 임차인 여러 명 구하는 것보다 한 분이 다 사용해주시면 더 좋거든요. 세금계산서 떼 드리는 것도 일이고 해서.”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괜찮은 조건이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나는 몇 초 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신이 난 공인중개사는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자판을 두 검지만 사용하여 치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이 다소 충격적이긴 했지만 자기 일만 잘 한다면 사실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 사안이었다.


 이렇게까지 오픈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개인 정보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이제 사인만 하면 되겠다 싶은 타이밍이었다. 공인중개사가 부가가치세 이야기를 꺼냈다. 월세를 내는데 부가가치세까지 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주거용 월세를 낼 때는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였기에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계약서의 부가가치세 포함/제외 칸을 노려보고 있는 나를 향해 임대인이 입을 열었다.


 “저는 부가가치세는 다 미포함으로 계산해요. 이거 어차피 임차인이 다 돌려받는 돈이잖아요.”


 “다 돌려받는다고요?”


 “네. 부가가치세 낼 때 다 돌려받으세요.”


 왜 한 번 낸 후에 다시 돌려받아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국가와 관련된 서류들엔 원래 이해 가지 않는 일들이 한 무더기였다. 수십억 건물을 갖고 있는 건물주가 이런 걸로 사기를 칠 것 같지도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월세 총액 242만원(VAT 포함)에 계약을 했다. 한 방울 남아있던 찝찝함은 본능이었는데, 이것도 모두가 다시 다 돌려받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다음해 1월,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면서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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