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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Oct 23. 202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입니다. #5

제1장. 스터디 카페를 열기로 한 건 꽤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⑤

#2. 문제는 오픈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되었다.(4)


PART 4. 인테리어(2)


 회사생활을 총 10년 넘게 하며 배운 것들 중 하나는 협력업체는 전적으로 믿거나 의지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항상 중간중간 확인을 해야 했고, 상대보다 전문가가 되어야 했으며, 이왕이면 주도권(그것이 돈줄이면 제일 좋다.)을 빼앗기지 말아야 했다.


 급한 상황에 눈이 멀어 인테리어 업체를 완전히 믿고 싶어 했던 것이 실수였다. 약속했던 3주가 지났지만 스터디 카페의 내부는 여전히 뼈대만 앙상했다.


 결국 변명이었지만 공사 관리감독에 소홀했던 이유가 있었다. 시간은 곧 돈이었기에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책걸상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매장이나 중고로 살 수 있는 업체들에 직접 발품을 팔았다. 중고물품들을 잘 뒤지다 보면 온라인 최저가보다 더 저렴하게 괜찮은 책상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비품들의 매입가를 조정하고, 간판업자(처음 비용을 산정할 때 간판 비용을 누락시켰다. 다시 한번, 멍청한 놈. LED 간판은 하나에 200만 원이 넘게 든다는 사실 역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들과 미팅을 했으며, 홈페이지를 만들고, 이벤트를 기획하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면 어느 시간 정도 비용이 필요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공사감독만큼이나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엔 공사감독이 제일 중요한 것이었지만. 


 오픈 준비 중인 1층 삼겹살집 앞에 서서 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속을 어긴 사람의 목소리 치고는 상당히 여유로웠다. 나도 사람인지라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이게 뭐예요? 계약서랑 말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요!”


 “평당 100만 원짜리로 계약하셨잖아요.”


 “그럼 그 수준에 맞게 시공하고, 어찌 되었든 공사를 끝내셨어야죠.”


 “목공사, 전기공사, 닥트공사, 천장 페인트 공사, 바닥 에폭시 공사, 냉난방기 설치까지. 그 비용에 맞추려면 하루에 인부 세 명씩 못 돌려요. 미팅 때 보니 여기저기 많이 알아보셨던 것 같은데, 그럼 업계 상황 뻔히 아시겠구먼. 우리도 최선을 다했어요. 두 명이 하루 여덟 시간씩 죽어라 작업한 결과라고요, 지금이.”


 계약서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 고소를 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 심지어는 이름에 빨간 줄이 가도 괜찮은 사람들과는 아무리 길게 이야기해도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원하는 결과를 최대한 빠르게 얻는 것이었다.


 “그럼 공사 마무리는 언제 됩니까?”


 “뼈대 공사가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이 주면 됩니다.”


 오픈이 늦어진 만큼 손해배상을 청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업자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기간 오버되는 만큼 추가 비용이 들어가요. 인건비하고 추가 자재비 해서 1,200만 원은 더 들어가겠는데요?”


 “뭐라고요?”


 뚜껑이 열렸다. 결국 입에서 쌍시옷이 튀어나왔다. 인테리어 선지급은 50%가 마지노선이라고 들었지만 자재를 구입해야 한다고 하여 3,700만 원을 미리 입금한 상황이었다. 손이 벌벌 떨렸다.


 “이건 공사가 늦어진 만큼 그쪽에서 보상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추가 비용이라고요?”


 “계약서 잘 보시면 천재지변이 발생할 경우 공사가 조금 늦어질 수도 있다고 되어 있어요. 그럴 경우 우리는 법적 책임이 전혀 없다고도 적혀 있고.”


 이 상황이 통상적 천재지변에 해당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호구를 잡히고 있었다.


 “아니면 여기서 접으시던가. 에휴, 우리도 손해인데 뭐 어쩔 수 없지. 더 진행 안 할 거면 지금 말해요. 우리도 많이 봐드렸는데, 더 손해 볼 수는 없지.”


 졌다. 지고 말았다.


 회사 밖 정글에서 벌어진 첫 전투였다. 상대는 나의 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돈에 벌벌 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지금 그들이 발을 뺄 경우 내게 대안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새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더 손해였다. 그럴 경우엔 일이 1,200만 원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부동산 공인중개사처럼 인테리어 업자 역시 선수였고 프로였다. 나는 지금 1,200만 원+알파(월세 및 관리비, 오픈할 경우 얻을 수 있었던 수익)를 비싼 수업료로 지불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고 매일 공사현장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목수와 시다에게는 공사가 끝나는 날까지 점심을 대접했다. 목수의 아들이 고등학생이라기에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시답잖은 비법을 전수했다. 시다에게는 목수가 자리에 없을 때 대기업에 경력직 상시채용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알려주었다. 2주가 더 걸린다던 공사는 결국 5일 만에 끝이 났다. 비용은 물론 1,200만 원을 모두 지불했다.


 그래도 회사에 다니며 배운 것을 써먹을 데가 있어 다행이었다. 잡다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현장을 우선시할 것. 20대가 아닌 30대에 창업을 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롤러를 들었다. 화장실 벽에 방수페인트를 칠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생각보다 몸 쓰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대략적인 인테리어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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