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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Oct 23. 202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입니다. #6

제1장. 스터디 카페를 열기로 한 건 꽤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⑥

#2. 문제는 오픈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되었다.(5)


PART 5. 대출


 대출 없이 가게를 오픈하고 싶었다. 그것이 계획이었고, 퇴직금과 저축액만으로 창업이 가능할 줄 알았다. 그래도 대기업을 8년이나 다닌 사람이었다. 정말 가능할 줄 알았다.


 보증금 3,000만 원과 복비 190만 원을 내자 퇴직금 중 남은 돈은 2,0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집과 차를 제외한  모든 자산을 처분하자 다시 8,000만 원 정도 되는 총알이 생겼지만 전기증설공사와 인테리어, 간판 작업을 끝내고 나니 수중에 남는 돈은 채 1,000만 원이 되지 않았다. 이 돈으로는 원하는 책상과 의자, 사물함, 커피머신, 오픈 냉장고를 살 수 없었다. (공기청정기는 천장형 냉난방기에 공기청정 기능이 있는 것을 선택해서 달았고, 산소발생기는……, 일단 미루기로 했다.)


 시간은 돈과 함께 흐르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길은 하나였다. 대출. 학자금 대출도 싫어 대학에 다니는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였다. 학창 시절, 여느 집들처럼 우리 집 역시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아버지의 직장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고, 돈 복사가 된다던 주식시장에선 상장폐지라는 낯선 단어를 맞닥뜨려야 했다.


 아버지는 일용직 근로자가 되어 전국을 떠도셨다. 엄마는 찜질방에서 숙박을 해결하며 빚을 갚으셨다. (집에 왜 빚이 있었던 것인지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외동이었던 나는 작은 이모네 집에서 세 달을 얹혀살았었는데, 98년이 되자 이모 집의 상황도 급속도로 악화되어 결국 엄마와 함께 반지하 단칸방에 월세를 얻어야 했다. 다행히 급한 채무는 몇 달 만에 모두 상환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다시 여기저기 돈을 꾸어 경기도 외곽에 작은 집 하나를 마련했다. 집 앞에 버스정거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전거로 15분이면 1호선 역까지 갈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보금자리였다.


 방 두 개짜리 집이 마련되자 아버지께서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4년 만의 만남이었다. 아직 10대 청소년이었던 나는 아버지에게 반가움이 아닌 낯섦의 감정을 느꼈다. 그때의 데면데면한 감정이 떠오를 때면 아직도 아버지에게 불편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 이후로 내가 취업을 할 때까지 우리 집은 빚을 갚았다. 채무상환이 가훈인 것처럼 빚 갚는 데에만 온 식구가 힘을 기울였다. 휴가를 가도 무조건 최저가, 외식을 해도 무조건 가성비, 가방이나 신발은 해지거나 떨어져야 새로 사는 것이었다. 이모네 집에 얹혀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이러한 가풍이 징글징글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단지 머리가 자라고 인간관계가 넓어지며 대학엔 잘 사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회사엔 강남에 집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우리 집은 그러지 못해야 하는 것인지가 조금 답답했다. 어릴 적엔 내 청소년기가 불쌍했지만 나이가 드니 부모님의 젊음이 안쓰러웠다. 다들 그렇게 살았다고 하기엔 우리나라엔 잘 사는 집이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들에겐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시선엔 그런 대한민국이었고, 서울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위치한 13평 주공아파트를 전세로 계약했던 날 부모님께선 기쁨을 감추지 않으셨다. 엄마는 결국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터뜨렸고, 아버지는 가족의 경사라며 한우를 1kg이나 사 오셨다. 생각해보면 IMF가 터진 이후로 가족들과는 처음 먹어보는 한우였다. 대기업이었던 회사의 보증으로 초저금리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은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 대출이라는 단어 하나에 얽힌 가족의 트라우마를 굳이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것이 나에게 ‘대출’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였다. 그런 내가 다시 은행의 문 앞에 서 채무의 굴레에 발을 들이려 하고 있었다.


***


 은행에 발을 들일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세자금 대출은 1 금융권에서 가능했지만 전세를 갖고 있어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은 1 금융권엔 존재하지 않았다. 집주인의 동의가 있어도 3 금융권까지는 가야 가능한 제도라는 것이었다. 신용대출도 마찬가지였다. 새삼스럽게도 나는 실업자였다. 신용점수가 900점대 중후반이었지만 실질적 의미는 없었다. 대출 가능 여부나 대출금액 결정은 은행 내부의 자체적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 나의 신용과 가능성을 은행에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최대 800만 원까지 신용대출이 가능하다는 은행원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섰다. 800만 원으로는 일을 마무리지을 수가 없었다. 주거래은행이 이 모양인데 다른 은행은 찾아가 봤자일 것이 뻔해 들어가지도 않았다. 물론 이건 정신건강 상 매우 잘한 일이었다.


 사실상 대출을 거절당했던 날 저녁 아홉 시,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은행이었다.


 “네.”


 “고객님, 혹시 신용보증재단은 찾아가 보셨을까 해서요.”


 “신용보증재단이요?”


 “네. 신용보증재단에서 최대 3,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해서요. 지역 신용보증재단에서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을 해드리는데 고객님의 신용점수면 아마 최대 금액인 3,000만 원 전액 대출이 가능할 거예요. 대신 일 년에 정해진 재단 보증금액이 있어서 남아있는 금액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대출이 가능할 수도 있으니 문의 한 번 해보시면 좋으실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은행원 급여가 괜히 높은 것이 아니었다. 권한이 많지 않을 뿐 사실 나쁜 사람들도 아니었다. 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전화를 준 은행원의 무궁한 발전과 쾌속 승진을 기원했다. 물론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역시 발품을 팔다 보면 길은 나오는 법이었다. 그래, 어디에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


***


 늦가을. 재단 보증금액이 모두 소진되었을 수도 있는 시기. 긴장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지역 신용보증재단을 방문했다.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에 퇴사 후 처음으로 정장도 꺼내 입었다.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상담원은 시중은행을 다니다 정년퇴직을 했다는 장년 남성이었다. 그는 몇 개의 서류에 사인을 시키고 몇 개의 서류를 복사해가더니 여유롭고 느긋하게 일을 처리했다.


 “신용 관리 잘해놨네. 삼천 모두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오픈하는 건데 돈이 부족해서 정말 고생 중이었거든요.”


 “여기 옆에 국민은행 하고 우리은행은 끝난 걸로 알고 있고, 위에 신한은행도 끝났고. 저기 아래로 세 블록 가면 농협 있죠? 거기로 가세요. 지금은 농협만 대출 가능금액 남아있어요.”


 농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모두 아직까진 이용해본 적 없는 금융기관들이었다.


 “농협 하고 거래한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이 기회에 통장 하나 만들면 되지. 소상공인한테는 기업은행이 제일 좋기는 한데 거기도 이미 끝났고. 그래도 다행인 줄 알아요. 허가업종으로 시작하는데 돈 부족한 사람들은 이거 못 받는 거잖아요. 어쨌든 우리한테 이 보증서 받아가서 대출은 은행에서. 이해했죠?”


 “허가업은 보증 못 받아요?”


 “사업자등록증이 있어야 가능한 시스템인데 어떻게 보증을 해주나. 허가를 못 받아 사업자등록증을 못 받았으면 당연히 보증을 못 해주지.”


 순간 스터디 카페가 허가업이 아닌 신고업이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며 안도가 찾아왔다. 까딱 노선을 잘못 타 허가업인 독서실이라도 열기로 했으면 어쩌나, 그럼 캐피털이나 대부업체라도 찾아가야 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줏단지 모시듯 재단에서 내준 보증서를 들고 은행으로 걸어갔다. 집에서 나올 땐 춥다 느껴졌던 찬바람이 이보다 더 상쾌하고 시원할 수는 없었다.     


 대출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주민등록 초본, 가족관계 증명서 등 온갖 서류들을 떼어가야 해서 예상했던 것보다는 오래 걸렸지만, 어찌 되었든 하루 안에 대출이 되었으니 미션은 클리어 된 것이었다. 대출 도중 직원이 건넨 연회비 2만 원짜리 카드를 만들어야 했지만 삼천만 원을 빌리는데 그깟 2만 원! 카드 두 개도 만들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하면 돈의 가치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와닿았다. 그래, 나는 사업가다. 이 스터디 카페를 무조건 성공시켜야 할 사장이다.


 그날 저녁, 선이자를 뗀 2,923만 원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선이자가 뭐 이렇게 세, 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PART 6. 인테리어(2)


 대출이 나온 바로 다음 날, 책상은 중고로 의자는 새것으로 주문을 넣었다. 중고 책상 구매 항목에서 무슨 궁상이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제부터는 정말 최대한 돈을 아껴 써야 했다. 생각보다 망하는 스터디 카페는 많았고, 새것처럼 보이는 책상 역시 생각보다 많았다. 중고 책상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4인용 스터디룸 두 개에 들어갈 큰 책상 두 개와 일반 책상 50개, 휴게존에 놓을 긴 책상 하나를 총액 삼백에 끊었다. 대신 의자에 돈이 많이 들어갔는데, 유명 브랜드 의자 50개에 스터디룸용 디자인 의자 8개, 휴게존 의자 10개까지 의자에만 총 천만 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되었다. 카운터에 필요한 의자를 깜빡해서 이건 나중에 다이소에서 오천 원짜리를 하나 구입했다. 그렇게 사내 복지를 부르짖던 과거의 내 모습이 생각나 잠시 얼굴이 화끈거리긴 했으나 체면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새삼 과거 회사의 임원진께 송구한 생각이 들었다.


 하루 만에 1,500만 원 가까운 돈을 썼다. 또 시작이었다. 은행 어플을 열었다. 수중엔 2,500만 원 남짓한 돈이 남아있었다.


 케이크 등 주전부리를 진열해놓을 오픈 냉장고도 새것으로 가려면 백오십이 넘어갔다. 꼬박 하루를 서울, 경기에 있는 중고 가전제품점들에 발품을 팔았다. 결국 95만 원에 새 것 같은 중고 오픈 냉장고를 발견하고 계약을 했다. 카운터와 색감이 조금 안 맞기는 했지만 그럴 수도 일이었다. 간단한 수리와 청소를 마친 제품은 다음날 아침 업장으로 배달되었다. 다음은 사물함 차례였다.


 사물함은 헌 것으로 사자니 티가 많이 나 새 것을 구매했다. 60만 원 정도면 24인용 새 사물함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것 역시 원하던 디자인과는 차이가 있었으나 사물함의 본 목적은 물건을 보관하는 것이었다. 번호 키 사용 사물함은 가격이 비싸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담긴 열쇠 사물함을 구입했다. 열쇠 분실에 대비해 백업 마스터키도 받아놓았다.

 

***


 어느덧 부동산과 계약을 한 지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지나있었다. 커다란 오픈 현수막을 제작하고, 전단지도 2,000장을 찍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일회용 컵과 접시를 주문했다. 정수기가 빠진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부랴부랴 정수기를 구매했다. 수도와 관을 연결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정수기를 카운터 옆에 설치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고객들의 편의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휴게존으로 설치장소를 결정했다.


 이제 정말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 내일부터 나는 '집중력이 높아지는 스터디 카페'의 사장님이었다.


 마무리 점검을 하고 집에 들어가려던 무렵, 반가운 얼굴이 가게 문을 두드렸다. 인테리어 공사를 해주었던 목수와 시다였다.


 “사장님 개업선물로 뭘 할까 하다가 우리 회사에 중고 키오스크 남는 거 많이 있어서 하나 갖고 왔어. 중고 자판기도 몇 개 있는데 사장이 그것까진 절대 안 된다네. 요것만 얼른 설치해주고 갈게요. 그때 이미 선은 다 뽑아놨었거든. 여기 인터넷은 설치했죠?”


 순간 가슴이 지르르 울리며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아직은 사람과 사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추후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 중 한 놈이


 “야, 너 그거 추가 비용 1,200만 내고 산거야, 인마. 일 빨리 끝나서 민망해서 갖다 준 거라니까?”


라며 산통을 깼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었다. 아직은 인간성이 소멸되지 않은 사회를 나는 이때까지도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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