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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Oct 24. 202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입니다. #7

제1장. 스터디 카페를 열기로 한 건 꽤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⑦

#3. 2, 2, 2그놈의 2! (1)


 코로나 시대에 창업을 한 것은 분명 내 잘못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회사에서 잘린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2020년 여름, 광화문 집회 이후 확진자가 폭증했다. 2차 대유행이었다. 물론 그 원인이 오롯이 광화문 집회 참석 확진자들에게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인내하던 시절이었다.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모두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면, 더군다나 그 행동이 건강, 나아가 목숨과 관련된 것이라면 비난은 물론 법적 처벌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일탈에 영향을 받은 결과로 서울에서 영업을 하는 스터디 카페들은 8 월 31일부터 9월 6일까지 집합금지 명령을 받았다. 마스크를 쓰고 공부를 하는 공간이었지만 코로나의 빠른 종식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협조하는 것이 맞는 행위라 생각했다. 무려 서울시 천만시민 멈춤 기간이었다. 물론 나는 아직 부동산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이었다.


 9월 6일까지라던 집합금지명령은 9월 13일까지 연장되었다. 공사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집합금지 기간에 부동산 계약을 맺고 싶지는 않았다. 계약 시작 날짜를 9월 14일로 맞추고 공사 업체들을 알아보았다. 스터디 카페 오픈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던 날들이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았다. 물론 달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9월 14일부터 2.5단계의 방역조치가 2단계로 하향 조정되었다. (1-2-2.5-3단계 시절이다.) 2.5단계일 땐 집합금지 대상이었던 스터디 카페가 2단계로 바뀌며 4㎡당 한 명의 인원규제를 받는 장소로 바뀌었다.


 2단계는 9월 27일까지 2주 연장되었는데, 9월 28일부터 10월 11일까지 연휴가 많은 특별방역기간이라 하여 2단계가 2주 더 연장되었다.


 10월 12일, 드디어 1단계의 날이 도래했다. 생각보다 공사가 오래 걸려 이 날 오픈 날짜를 맞출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미래는 꽤나 희망적이었다. 정부는 11월 7일부터 방역단계를 낮추고 외식 쿠폰과 더불어 숙박 쿠폰을 배부할 예정이라고 공포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모든 자영업자들이 정상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속삭였다. 일 년을 끌어온 지긋지긋한 코로나의 악몽에서 깨어날 때였다. 그때는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그리고 10월 말, 정식으로 스터디 카페의 문을 열었다.


 ‘집중력이 높아지는 스터디 카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는가. 이제 남은 일은 단 하나, 동네 학생들을 모아 떼돈을 버는 것뿐이었다. 돈 걱정, 대출 걱정 없이 남은 삶을 살고 싶었다. 


***

 

 2020년 11월 7일, 새로운 방역체계가 시작되었다. 1-1.5-2-2.5-3단계로 이어지는 방역지침이었는데(이럴 거면 1-2-3-4-5로 하지 왜 소수점을 붙인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터디 카페는 2.5단계와 3단계일 때에만 영향을 받는 업종으로 재편되었다. 2.5단계는 오후 9시~오전 5시 사이에만 영업중단, 3단계는 전면 영업중단이었다. 1.5단계와 2.5단계일 땐 한 칸 띄기 인원 제한에 걸리긴 했는데, 칸막이가 있는 경우엔 적용을 받지 않아 스터디룸만 정원을 50%로 유지하면 될 것 같았다.


 방역 전문가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설전을 벌이며 방역 줄다리기를 하는 사이 나의 첫 사업체 ‘집중력이 높아지는 스터디 카페’는 소위 대박이 났다. 물론 코로나 이전 시기였으면 중박이었다고 하겠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폐업하는 가게들이 속출하는 현시점에서 우리 업장은 대박을 넘어 초대박인 것이 분명했다.


 오픈한 지 3주 만에 4주짜리 기간권 28개가 팔렸다. 오픈 특가로 16만 원짜리를 11만 원에 팔긴 했지만 새롭게 오픈한 스터디 카페를 알리고 신규 고객들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기간권 매출만 해도 300만 원이 넘었다. 이것으로 벌써 월세와 관리비, 전기요금이 해결되었다. 더 이상 빚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핵심이었다. 이제부터는 들어오는 돈들은 모조리 내 수익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하루 평균 수익은 60만 원 정도였다.


 600,000 × 30 = 18,000,000

 18,000,000 + 3,000,000 = 21,000,000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한 달 매출은 무려 2,000만 원이 넘어갔다. 세상에, 한 달에 2,000만 원이라니……. 이래서 사람들이 사업을 하는 거구나, 이번에 퇴사하지 않았으면 평생 이런 돈은 못 만져볼 뻔했구나, 하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역시나 돈 버는 방법은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월급의 몇 퍼센트를 저축하고, 주식에 투자를 하고 하는 소리들을 해댔던 경제전문가들이 모두 같잖게 느껴졌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무서웠다. 잘 생각해보면 월급 저축을 강요하는 그들 역시 1인 사업자들이었고, 모두가 프리랜서 자영업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강연을 들어주고 몸값을 올려줄 노예들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더 이상은 노예가 아닌 시민이고 싶었다.


 그러던 11월 17일, 수도권의 거리두기가 단계가 1.5단계로 상향되었다. 확진자 수가 꾸물꾸물 늘고 있었다.


 정부의 거리두기 발표는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거짓말처럼 하루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 그래도 절반의 매출이 유지되었던 건 고3 덕분이었는데, 그동안 이 동네에 스터디 카페가 없어서 먼 동네로 공부를 다녔던 수험생들이 기본 매출을 만들어주었다. 수능이 12월로 미뤄진 영향이 컸다.


 수능 이후엔 어떻게 학생들을 끌어야 할지 마케팅적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스터디 카페를 오픈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정부의 외식 쿠폰과 숙박 쿠폰 발행이 중단되었다. 그 사이 12월은 빛의 속도로 찾아왔고, 확진자 수는 빛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12월 5일부터 서울시 자체적으로 2주 동안 2.5단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12월 6일부터 12월 28일까지 3주 동안 수도권에 2.5단계를 시행되었다. 하루 만에 영업제한 시기를 늘려버린 주체는 다름 아닌 방역 본부인 정부였다. 이때 처음으로 나는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영업장 문을 닫는 첫 강제 영업금지를 맛보게 되었다.


 방역에 협조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번 달 매출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 양 끝에서 줄다리기를 펼쳤다. 밤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일방적으로 손해를 입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현 시국에선 당연한 것이라 윽박질렀다. 자기들은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왜 나만 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매출이 발생하는 시간대나 고객의 연령층 등 매장의 운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아직 알바를 고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그 기간이 그렇게까지 길어지리라고는 그때는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12월 6일 월요일이 되었다. 2학기 기말고사를 목전에 둔 시점으로 자리는 만석이어야 했지만 스터디 카페는 잠잠했다. 혹여 일찍 온 고객이 있을까 싶어 아침 여섯 시부터 매장에 간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첫 고객이 들어온 시간은 오전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학생이 아닌 기가 세 보이는 중년 여성은 들어오자마자 스터디룸이 이용 가능 여부를 물었다.


 “혹시 여기 스터디룸 하나당 몇 명씩 들어갈 수 있어요?”


 “원래 정원은 네 명인데 정부 규제에 따라 지금은 두 명까지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네 명이 다 들어갈 수는 없나요?”


 지금까지는 딱히 겪어보지 못했던 나의 첫 번째 진상 고객이었다. 자기야 방역수칙 위반으로 10만 원만 내면 그만이겠지만 나는 수백만 원의 벌금을 물고 몇 주 동안 가게 문도 닫아야 했다. 고작 몇 만 원에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끼리만 알면 되는 일이잖아요. 아무도 신고 안 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고객님 일행이 신고를 안 해도 다른 스터디 카페 이용자가 신고하면 그만이에요. 게다가 언제 단속을 나올지도 모르고요.”


 “저도 급해서 그래요. 학원을 하나 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강제로 28일까지 문을 닫게 하는 바람에 지금 난리가 났어요. 다른 건 몰라도 파이널 정리랑 직전 수업은 해줘야 애들이 안 나가요. 줌으로 하는 강의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는 알고 계시죠?”


 학원도 스터디 카페와 마찬가지로 3단계가 되어야 문을 닫는 업종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상황인 만큼 2.5단계이지만 학원도 집합금지 업종에 포함시키겠다는 공표가 있었다. 예고에 없던 일이었다. 언제 또 말을 바꿔 스터디 카페까지 영업금지시킬지 모르는 것이라 생각하니 괜스레 공감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대신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었다. 학원 원장이 그런 내게 대안을 제시했다.


 “3주만, 아니 딱 2주만 의자 4개 더 넣어놓고 8인실이라고 붙여놔요. 아무도 뭐라고 안 할 거예요. 단속 근거도 없고요.”


 “공간이 좁아서 의자가 4개는 더 안 들어갑니다.”


 “그럼 제가 접히는 의자 여덟 개 사서 여기 기증할게요. 그건 어때요? 학원은 스터디 카페처럼 아이들이 며칠 혹은 몇 주 사이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지 않는 곳이라 그래요. 한 번 놓치면 다시는 안 돌아오거나 적어도 몇 달은 기다려야 하거든요. 지금 애들 놓치면 겨울방학 매출 다 떨어질 거고, 그럼 우리 선생님들 이직 기간도 놓쳤는데 전부 실업자 신세예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여기 스터디룸 두 개 다 우리한테 빌려주세요.”


 기가 센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안쓰러운 얼굴이었다. 스터디 카페 내부로 눈을 둘렸다. 텅 빈 스터디 카페 좌석 하나하나 위로 오늘자 마이너스 금액이 CG처럼 떠올랐다.


 사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새 의자 여덟 개가 생기는 일이었다. 책상만 없으면 여덟 명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한 타임 당 네 명이 동시에 이용하면 8,000원, 네 시간씩만 이용해도 하루 32,000원, 그렇게 2주면 448,000원이었다. 룸 두 개를 모두 이용하면 896,000원이었다. 기가 막힌 자기 합리화 끝에 나는 오래지 않아 설득되었다.


 “그럼 의자는 수업 들어가지 전에 세팅될 수 있게 가져다주세요. 비용은…….”


 “저희가 2주 동안 룸 두 개 자유롭게 이용하고 백삼십만 원 어떠세요?”


 “사용하실 때 마스크는 꼭 착용해주셔야 하고요. 오픈 이벤트로 아메리카노나 아이스티 중 한 잔 서비스로 드리고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텀블러 있으면 가져오라고 전해주세요.”


 지금 막 지어낸 오픈 이벤트였다. 이 정도 큰 손을 위해서라면 그깟 커피 몇 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원장은 그 자리에서 통 크게 일시불 결제를 했고, 나는 원장을 일층 문 앞까지 배웅했다. 역시 단체손님이 최고였다. 왜 단체손님 테이블에 서비스 안주가 많이 나오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엘리베이터로 돌아가려는데 몇 주째 단체손님 구경이 힘들었다는 일층 삼겹살집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평소보다 훨씬 더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점심장사 시작하려고요. 안 그러면 나는 이번 달 완전 빵꾸야, 빵꾸. 생활비만 빵꾸가 아니라 월세부터 공과금까지 전부 다 마이너스!”


***


 2020년 12월 16일, 역대 최다 수치인 1,078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당연하다는 듯 거리두기 3단계를 검토하고 있다며 브리핑을 했다. 3단계 적용 수치가 넘었음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 때문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정부를 향하던 비난의 화살이 일제히 자영업자들을 향했다. 장사를 위해 문을 열어놓는 것 그 자체로 우리는 죄인이었다.


 아래층 이자카야는 어느 날부터인가 문을 열지 않았다.


***


 2020년 12월 21일, 수도권에 5인 이상 집합금지가 발표되었다. 스터디 카페는 그렇다 하더라도 1층 삼겹살집과 횟집, 2층 이자카야엔 손님이 넘쳐나다 못해 대기가 걸려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우리 건물 사장님들은 멍하니 홀에 앉아 TV만 봤다. (이자카야 사장님은 얼굴도 볼 수가 없었다.) 가끔씩 가족단위 손님이 가게를 찾을 때면 서둘러 음식을 준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엔 다시 원치 않는 휴식시간이었다. 처음 왔을 땐 여럿 보였던 아르바이트생들도 이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에 휩싸인 서울이었다. 그리고 죄인이 된 우리였다.

 12월 27일, 정부는 2.5단계를 신년 1월 3일까지 1주일 연장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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