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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Oct 24. 202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입니다. #9

제2장. 너무 보통의 자영업자 이야기 ①

#1. 동해 앞바다 횟집 사장님

    

 횟집 사장님과 약속을 잡고 시간에 맞춰 일층으로 내려갔을 때, 사장님은 나를 보며 ‘어이구, 기자님.’이라며 악수를 청했다. 기자라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호칭이었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손을 내젓는 내게 사장님은 ‘프리랜서 PD도 독립 PD라는 호칭이 있다.’며 내가 왜 기자가 아니어야 하는지 오히려 반문을 했다.


 횟집 사장님의 말에 수긍을 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사장님이었다.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사장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기자(): 어, 그럼 첫 질문드리겠습니다. 뭔가 어색하네요.


사장님: 좋게 잘 써줘야 해. 그래, 첫 질문 해보시죠.


기자: 장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사장님: 회를 좋아해서요.


  잠시 인터뷰가 중단되었다. 사장님께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 이왕이면 진지하게 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다. 사장님께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자세히 보니 사장님의 표정은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사장님: 진짜인데? 어릴 때 배를 탔어. 요 앞에서 하는 거 말고, 원양어선.


기자: 원양어선이요? (살짝 놀람)


사장님: 그때 나이가 이십 대 초반이었는데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탔어요. 우리 집은 가난했거든. 혈기 왕성한 나이에 몇 달이고 바다에만 떠있는 생활은 정말 너무 힘들었지. 육지로 돌아올 때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 스스로에게 되뇔 정도로.


기자: 그런데 계속 나가셨어요?


사장님: 그만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다 보면 이상하게 늘 바다가 그립더라고요.


기자: 그런데 결국엔 그만두셨잖아요.


사장님: 그게, 갑판 일을 하다가 손가락 하나가 잘렸어.     


 사장님이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보여주셨다 왼쪽 넷째 손가락 자리가 휑했다.


사장님: 바다에 의사가 어디 있나. 갑판에 떨어진 손가락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 깜짝 놀란 우리 선장님은 내 손을 수건으로 둘둘 감쌌고.


기자: 그런데도 회가 좋으세요?


사장님: 에이, 이 사람아. 먹는 거랑 그거랑은 다르지.


 껄껄 웃어 보인 사장님이 대화를 이어갔다. 사장님의 표정이 다시 진중하게 바뀌었다.


사장님: 너무 싫었던 일인데, 나를 장애인으로 만든 일인데, 그래도 이상하게 그 시절이 그리워. 배 위에서 질리도록 먹던 회도 그립고. 횟집을 하고 있어도 회가 그리워서 횟집을 차렸어요. 아마 사장님, 아니 기자님보다도 어린 나이에.


 횟집 사장님의 나이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나보다 열댓 살은 많아 보였다. 다른 말로 하면 열댓 살밖에 많지 않았다. 배를 타야 했던 이십 대 초반의 삶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사장님은 책 들고 대학에 다닌 내가 부럽다고 말했다.


기자: 그럼 회사생활은 안 해보신 거예요?


사장님: 이 사람, 배 탄 사람이라고 무시하네. 배를 탄 것 자체가 회사생활이야. 나에겐 바다가 사무실이었다고.


 경솔했다. 더불어 생각도 짧았다.


기자: 죄송해요. 적절한 질문이 아니었어요. 그럼 주제를 조금 바꿔서, 횟집을 운영하며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게 있으실까요?


사장님: 그야 우리 가게 회가 맛없다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중에서도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며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같아요.


기자: 환불 말씀하시는 건가요?


사장님: 환불이면 그런가 보다, 하고 말지. 지난달엔 경찰도 불렀다니까.


기자: 경찰이요?


사장님: 회를 배달해준 집에서 다음날 전화를 했어요. 우리 집에서 맛이 간 회를 보낸 것 같다고. 환불은 물론 병원비까지 내놓으라고. 남은 회 좀 볼 수 있겠냐고 했더니 집으로 찾으러 오라데.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다시 주소를 받아 내가 직접 갔지. 아니, 그런데 먹던 회를 뚜껑도 안 덮고 베란다에 그대로 내어놓은 거야. 내가 갔을 때는 회가 햇빛을 얼마나 받았는지 냄새도 고약하고 아주 뜨끈뜨끈하더라니까.


기자: 아니, 그래서요?


사장님: 이건 아니다, 응급실에 다녀온 영수증이라도 보여 달라고 하니까 아주 소리소리를 지르며 난리도 그런 난리를. 그래도 손님이니까 꾹꾹 참으며 진단서를 보여 달라고 했지. 너무 소리를 지르니까 아래층에서 경찰에 신고를 해서 경찰도 왔고. 경찰도 일단 진단서를 보자고 하는데 다른 말만 하며 계속 소리를 지르더니 두고 보라고, 별점 테러해서 가게 망하게 할 거라며 악담을 퍼붓더라고. 아기 엄마가 뭐 하자는 건지.


기자: 그거 미친년 아니에요?


사장님: 결국 남은 회 다 복도에 내던지고 문 닫고 들어가더라고. 오죽하면 경찰이 나를 위로했을까.

 

 나는 겪어보지 못한 진상 중의 진상이었다. 음식을 판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새삼 알게 되었다.

 

기자: 그럴 때는 장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지 않으세요?


사장님: 그래도 그런 인간들보다는 좋은 손님들이 훨씬 더 많으시니까.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여기 회가 최고예요, 또 올게요, 등등. 인생을 살다 보면 원래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잖아요. 이번엔 그냥 재수가 없어서 똥을 밟았던 거고.


기자: 저라면 못 버틸 것 같아서 그래요. 경제적으로도 요즘 많이 힘드시죠? 코로나 때문에.


사장님: 코로나로 식당들 힘들어진 건 그래도 모두가 알아주는 거니까. 살다 보니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고 그러더라고요. 버티다 보면 또 좋은 일 생기겠죠. 아, 그리고.


 사장님은 누군가 인터뷰를 읽게 된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했다.


사장님: 아직도 자영업자들 보고 세금을 탈루한다, 그런 소리들 많이 하는데 적어도 밥 집하는 소상공인들은 아니에요. 그런 말 하는 사람들한테는 밥 먹을 때 현금 내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기자: 오해가 억울하신 거죠?


사장님: 물론 예전엔 그런 일들이 많았지. 현금 요구하고, 현금 내면 깎아주고. 오죽하면 통장을 자기 실명으로 만들지 않아도 괜찮았던 시절도 있었을까. 그런데 요즘은 다들 카드로 결제하고 배달 어플 쓰고 그래서 세금을 탈루하려야 탈루할 수가 없어요. 아니, 컴퓨터에 다 잡히는데 그걸 어떻게 떼먹어.


기자: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이 내용은 빼지 않고 꼭 넣을게요. 가게는 언제까지 운영하실 생각이세요?


사장님: 내가 결혼을 늦게 해서 열두 살짜리 딸이 하나 있어요. 그놈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할 때 뭐라도 쥐어주려면 일흔 넘어서 까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자식한테 아무것도 못 해주는 부모 마음, 그것만큼 쓰린 것이 없으니까.


 불현듯 부모님 생각이 났다.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무것도 해주시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물론 그런 말 자체가 부담일 것이기에 생각은 생각으로 넣어두었다.


기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사장님: 나 사실 인터뷰라는 거 처음 해봐요. 물론 사장, 아니 기자님, 말이 자꾸 이렇게 나오네. 이해해줘요. 기자님이 꼭 필요한 숙제라고 말해서 응한 거긴 하지만 술도 안 마시고 누구한테 내 얘기를 이렇게까지 해본 건 처음이니까. 사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한테 들을 말이 어디 있겠어요. 대단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아닌데. 덜컥 수락하고도 미안한 마음이 훨씬 더 커서, 그래서 연어덮밥 하나 포장해놨으니 갖고 가서 먹어요. 나 같은 사람 인터뷰해줘서 고마워.


 연어 덮밥을 내미는 사장님 손에 하얀 봉투 하나를 쥐어드렸다. 현금 십만 원이 든 봉투였다. 사장님은 이런 거 안 받는다고, 이런 거 줄 거면 밥값이나 내고 가라며 언성을 높이셨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고로 인터뷰비는 꼭 드려야 했다.


 작은 성의표시를 하는 것 역시 정신과 치료의 일환이라고 거짓말하며 겨우 돈 봉투를 쥐어드렸다.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라 오히려 민망했지만 나 자신이 여유가 없어 어쩔 수가 없었다. 십만 원이 내가 나와 상대를 위해 쓸 수 있는 최선의 금액이었다.


***


 열심히 적고 녹취한 인터뷰 자료를 하나의 글로 작성했다. 태어나서 처음 써본 기사 형식의 인터뷰 글이었다. 병원에 전화해 몇 편이나 쓰면 되느냐 물었더니 우선 기간을 맞춰 한 달에 두 편씩 작성해보자는 답이 돌아왔다. 의사의 목소리가 한결 편안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인터뷰 상대가 필요했다. 약물 치료를 받지 않으려면 꼭 숙제를 해야 했다.


 다음 날 오후, 나는 새 인터뷰 상대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가벼워진 주머니만큼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한산한 거리는 미세먼지 한 톨 없이 맑고 깨끗했다.


 그날 스터디 카페에 방문한 이용객은 총 여덟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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