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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Oct 24. 202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입니다. #10

제2장. 너무 보통의 자영업자 이야기 ②

#2. 샬롯 양장점 사장님


 첫 번째 글을 발행하고 일주일 뒤, 내가 찾은 곳은 샬롯 양장점이었다. 사장님은 곱게 화장을 하고 머리에도 힘을 주고 심지어는 화려한 정장을 입고 계셨다. 사진까지 찍을 계획은 없었지만 핸드폰 카메라로 사장님의 사진을 정성스레 찍었다. 약간은 촌스러운 화장이


 아름다웠다.


 인터뷰는 가벼운 인사로 시작되었다.


기자(): 이 동네에 스터디 카페 차린 지는 몇 달 되었는데 이제야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사장님: 인사할 생각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죠. 스터디 카페는 잘 되나요?


기자: 자영업자들 다 똑같죠.


사장님: 조금만 더 우리 힘내요. 곧 좋은 날 오겠죠.


 사장님의 말투는 우아했지만 경직되어 있었다. 사장님께 편하게 인터뷰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며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기자: 어쩌다 양장점을 운영하게 되셨어요?


사장님: 우리 어릴 때는 양장점이 아주 고급 옷집이었어요. 양장점에서 엄마 선물 한 번 사면 소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요. 그러던 도중 기회가 왔고, 결심을 했어요.


기자: 얼마나 하셨는데요?


사장님: 올해로 이십일 년 째요.


기자: 이 자리에서 만요?


사장님: 그럼요.


기자: 대단하시네요. 혹시 양장점을 하시기 전엔 무슨 일을 하셨었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사장님: 가정주부였죠. 그 전엔 옷가게 시다였고. 사실 십 대 때는 미장원에서 미용기술을 배우기도 했었는데, 어쨌든 처음으로 제대로 월급 받으며 했던 일은 남대문에 있는 옷가게에서 옷 판 것이었어요. 밤 시간에 아동복 도매로 떼어주는 일이요.


기자: 패션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사장님: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아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다른 친구들 정도였어요. 사촌언니 중 한 명이 남대문에서 옷을 떼다 지방에 파는 일을 했는데, 집에 돈이 필요해 몇 번 따라갔다가 그냥 눌러앉게 된 거죠.


기자: 거기에선 얼마나 일하셨는데요?


사장님: 가만있어보자, 일 년, 이 년, ……, 햇수로 육 년?


 대단한 끈기였다. 이십 대 때 한 곳에서 육 년을 일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이십 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장님이 대단해 보였다.

 그 삶을 존경한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기자: 육 년이나 일한 직장을 그만두신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사장님: 결혼하고 애 낳았으니까요.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지만 예전엔 다 그랬어요. 결혼하면 직장 그만두고, 애 낳고, 살림하고.


기자: 그럼 지금 양장점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걸까요?


 처음으로 사장님의 답변이 한 번에 나오지 않았다. 숨을 크게 내쉰 사장님은 물을 한 모금 들이마셨고, 잠시 눈을 감았다.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현실과 생활이라는 잔혹동화였다.


사장님: 남편은 나름 탄탄한 중견기업을 다니고 있었어요. 그걸로 살림하고, 애들 키우고 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IMF가 터져 남편은 실직을 했고, 이삿짐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지금이야 아르바이트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그냥 연락 오면 가서 일 하고 일당 받는 거였어요.


 IMF가 무너뜨린 집은 우리 집뿐만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상처 받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사장님: 그때가 애들 대학 다니고, 고등학교 다니고 할 때라 생활비가 더 절박했어요. 그래서 형광등 하나 제대로 못 가는 남편이 이삿짐센터에서 일을 했던 거였고요. 그런데 일 못하는 사람이 일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불길했다.


사장님: 이미 아시겠죠. 남편은 사다리차에서 떨어져 허리 아래로 마비가 되었어요. 그래도 삼층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망정이지, 더 위에서 떨어졌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담담한 말투와 표정과는 다르게 사장님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쉽게 하기 힘든 이야기가 분명했다.


사장님: 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우시더라고요. 나도 안 우는데. 우리 집 사정 다 알고 있다며, 바깥양반이 유일하게 돈 버는 가장인데 너무 미안하다고 그렇게 울데요.


기자: 치료비는 받으셨어요?


사장님: 다행히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곳이라 치료비는 나왔지만 문제는 생활비였어요. 애들하고 이렇게 나앉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기자: 사장님께서 일을 다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네요.


사장님: 맞아요. 그런데 내가 무릎하고 손목이 안 좋아 마트 알바나 청소일도 쉽지 않은 거예요. 그야말로 거리에 나앉기 직전이었죠.


기자: 그런데 어떻게 양장점을 여셨어요?


사장님; 어느 날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찾아왔어요. 자기 장모의 사촌이 상가 몇 개를 갖고 있는데, 그중에서 월세 저렴한 놈 하나를 십 년 동안 무료로 쓸 수 있게 빌려왔다며. 공짜로 쓸 수 있는 거니까 여기에서 떡볶이를 팔든 신발을 팔든 원하는 장사를 해보라고요.


기자: 대단한 임대인이네요. 아무리 부자여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사장님: 나중에 알고 보니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대신 월세를 내주신 거더라고요. 무려 십 년이나. 사실 목소리도 듣기 싫었고 원망도 많이 했는데 십 년이나 월세를 대신 내준 걸 알고 화가 누그러들더라고요. 십 년이 지나 내가 월세를 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그 사장님 붙들고 참 많이 울었어요. 그 사람의 사과를, 그 진심을 그제야 받아들이게 된 거였죠.


 여러모로 양쪽 모두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었다. 사장님의 눈을 바라보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기자: 그런데 왜 하필 양장점이었을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떡볶이 가게도 있고, 신발가게도 있는데요.


사장님: 무릎하고 손목이 안 좋아서 음식장사는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 그래도 해본 적 있는 옷 장사를 해보자 마음먹었죠. 이왕이면 내가 어릴 적 동경했던 양장점으로.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해 그런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기자: 사실 저도 양장점엔 들어가 본 적이 없어요. 양장점에서 옷을 사본 경험이 없거든요.


사장님: 사장님 나이 또래 분들은 안 와요. 여긴 어머님, 할머님 나이 대 분들이 오다가다 들르시고 용돈 생기면 쇼핑도 하시는 동네 사랑방이니까요.


기자: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사장님: 제가 아무리 힘들어봤자 식당 하시는 분들, 유흥주점 하시는 분들만 할까요. 그래도 두 번 올 손님이 한 번 오시고, 두 벌 사 가실 옷을 구경만 하고 나가시는 건 조금 힘이 들죠.


기자: 이건 무례한 질문인 것을 알지만, 지금 양장점으로 월세나 생활비 해결은 가능하신가요?


 사장님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장님: 지금은 애들도 다 분가하고, 바깥양반도 예전에 돌아가셔서 생활비가 많이 안 들어요. 연금도 나오고, 애들이 용돈도 주고. 그래서 유지해요. 집에만 있으면 폭삭 늙어버릴 것 같아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사장님은 새 인터뷰 대상을 추천해주셨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는 작은 미장원 원장님인데, 그분의 인생사가 한 편의 영화라고 하셨다.


 더불어 어른들 중엔 글 읽는 것을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 기회가 되면 유튜브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건 어떠냐는 의견도 주셨다. 최고로 재미있었다고, 이런 재미있는 일을 할 기회를 줘서 너무 고맙다고.


 인터뷰를 마치고 스터디 카페로 돌아가는 길에 못 보던 현수막을 발견했다.


 ‘11월 1일, ☆☆ 스터디 카페 오픈!’


 화가 나고 고민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었는데, 그냥 웃음이 비죽 배어 나왔다. 생각해보면 스터디 카페는 진입장벽이 참 낮은 업종이었다.


 나는 그런 스터디 카페의 사장님이었다.


***


 이 주 뒤, 정신건강의학과를 다시 찾았다. 의사는 내가 쓴 인터뷰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며, 치료가 끝나도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다음 인터뷰 기사가 정말 기대된다는 의사가 한심했다. 무례하게 굴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매장 근처에 새 스터디 카페 하나가 또 오픈을 해서요. 이런 거 할 때가 아니라 본업을 살리려 더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지 헷갈리네요.”     


 며칠 뒤, 내 발걸음은 양장점 뒤 골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낡고 촌스러운 ‘미장원’ 간판에 마음 한구석에 있던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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