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애 Oct 18. 202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입니다. #2

제1장. 스터디 카페를 열기로 한 건 꽤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②

#2. 문제는 오픈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PART1. 시장조사


 사업을 결심한 이후 가장 먼저 한 건 상권 분석이었다. 큰돈을 들일 필요도, 전문가를 찾을 이유도 없었다. 살고 있는 동네이니 누구보다 이 지역 유동인구 흐름에 빠삭했다. 전문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니 누군가에게 전문지식을 배울 필요도 없었다. 대형 프랜차이즈들의 인테리어를 공부했고, 버스로 다섯 정거장 정도 떨어진 지역의 스터디 카페까지는 직접 발품을 팔아 분석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이 모여 있는 카페에도 가입했다. 중요한 건,


 거리가격청결소음환기편안한 의자업장 내에 있는 화장실.


 브랜드나 인테리어,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 등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걸 따지는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등록하는 충성고객들이 아닌 한 번 왔다 다시는 안 올 뜨내기들이었다.

     

PART 2. 부동산     


 스터디 카페의 성패는 입지에 달려있었다. 사실상 입지가 90이라는 이야기가 업자들 사이에선 수학의 정석 같은 이야기였다. 부동산을 휘젓고 다니는 건 내 마음이지만 그럴 경우 매물을 찾는 이가 많은 줄 알고 가격이 굳는다는 소문이 팽배했다. 동네 부동산 사장님들 사이에 사실상 카르텔이 조직되어 있어 여러 군데 물어보고 다녔다가는 욕 얻어먹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큰돈을 투자하는 일이라 그런지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고 싶었다. 북한산 바윗길조차도 두드려봐야만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온 매물들을 확인하고,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공실들을 확인했다. 코로나가 할퀴고 지나간 상흔은 생각보다 깊었다. 아직 철거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섯 집 건너 한 가게는 빈집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매물로 나온 곳들 대부분이 통으로 트인 장소가 아닌 책상 스무 개는 들어갈까 싶은 작은 매장들이었다. 공실이 많아 매장을 쉽게 구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것부터가 착각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었다. 조금 더 발품을 팔아봐야 했다.


 부동산을 구하며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상권이 좋으면 월세가 비싸고, 월세가 착하면 입지가 후지다는 것이었다. 학원가 중심에 위치한 상가나 사무실은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건물도 전용면적이 200㎡(약 65평)에 월세가 4~500백만 원을 넘어갔다. 보증금은 무려 5,000만 원 정도였다. 무엇보다 문제는 보증금이 올라가면 월세가 낮아지긴 했지만 그런 건물의 경우 융자금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다. 매매는 당연히 꿈도 꿀 수 없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조금 벗어나 아파트 단지 쪽으로 넘어가면 그래도 투자 가능한 수준의 월세들이 등장했다. 보증금이 3,0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고, 월세가 2~300백만 원가량으로 낮아졌다. 빌라나 단독주택들이 많은 동네에선 100만 원 대의 월세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럴 경우는 예상 수익을 토막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돈 벌자고 하는 사업인데 시작 전부터 예상수익을 낮추는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High risk, high return. (위험이 높을수록 수익률도 높다.)


 높은 위험률을 바라지는 않지만 낮은 수익률은 더더욱 바라지 않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을 B와 D 사이의 C라고 했다. (B-birth 탄생, D-death 죽음, C-choice 선택) 둘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과감히 높은 수익률에 배팅을 할 수 있어야 사업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고수익을 쫓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앞에 높인 벽 앞에서 나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닌 학교와 학원들이 몰려있는 지근거리의 동네를 찾았다. 지어진 지 28년 된 건물 8층에 위치한 월세 450만 원짜리 상가 계약을 위해 들어갔던 부동산에서 공인중개사 아저씨는 상상치도 못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냈다.


 “여기는 중심지라 권리금 좀 있는 거 아시죠?”


 솔직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항목이었다. 권리금이란 존재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을뿐더러 널리고 널린 게 공실인데 권리금까지 받고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나도 진짜 현실에 발을 딛는구나 하는 생각엔 조금 설레기도 했다. 그래도 초짜 티를 낼 수는 없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나는 이제 곧, 사장이었다.


 “그럼요. 권리는 드려야죠. 여기 이 상가는 얼마나…….”


 “여기 작년에 천장 에어컨 하고 샷시 새로 해서 일억은 받아야 한다는 거, 내가 그러면 절대 안 나간다고 많이 깎았어요. 그래서 칠천! 이 정도면 이 상권에선 거저야 거저.”


 초짜 티를 숨기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부동산 아저씨는 거저란 단어의 뜻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보증금 오천에 권리금 칠천, 거기에 인테리어 비용까지 더하면 주식과 예금을 모두 빼도 만들어낼 수 없는 돈이었다. 그렇다고 살고 있는 집의 전세보증금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중에 다시 찾아본 네이버 부동산에도 권리금 항목은 분명 있었는데 나는 왜 읽지 못했을까.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자 공인중개사는 좋은 매물이 많이 있다며 장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무슨 일 하시려고. 어떤 거 찾는데.”


 “저, 어, 스터디 카페…….”


 “여기서 독서실 하시게? 여기 월세 만만치 않아서 지하 아니면 쉽지 않을 걸요?”


 “지하요?”


 기억하자. 스터디 카페를 성공시키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 환기.


 “지하면 환기를 어떻게 해요? 창문이 없잖아요.”


 “젊은 선생님이 언제 적 얘기를 하고 그러시나. 그럼 뭐 백화점은 창문 있어서 영업한대요? 다 환풍기 설치하고 영업하는 거지. 이 동네 건물들 지하엔 서점도 있고, 음식점도 있고, 다 그래요. 아니, 이 동네에서 장사할 거라면서 한 번 돌아보지도 않으셨어?”


 공부도 할 만큼 하고 발품을 팔만큼 팔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실제 아무것도 없었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더 이상 자리에 앉아있기가 힘들다.


 “말씀해주신 대로 먼저 좀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같이 안 보고요?”


 “돌아본 후 다시 올게요.”


 초짜이긴 해도 호구는 아니었다. 지하에 스터디 카페라니. 부동산 중개인이 처음 보는 나에게 좋은 매물을 보여줄 리가 없었다. 쌓여 있는 매물 중 하나를 덤핑 받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대기업에 거저 들어간 것도 아니었고, 8년이란 세월을 꽁으로 버틴 것도 아니었다.


 가게를 나섰다. 부동산 아저씨는 조금도 아쉽지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배웅했다.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저 아저씨야말로 거리 짬밥을 한 트럭으로 먹은 꾼이었다. 꾼들은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았고, 돈을 갖다 바칠 초짜 장사꾼들을 철가루 위 자석처럼 본능적으로 찾아냈다. 회사는 더 이상 학교가 아니었던 만큼 실물경제의 최전선 역시 회사가 아니었다. 꾼들의 세계에서 돈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똑똑해질 필요가 있었다.


***


 권리금의 존재는 사업에 대한 내 막연한 상상들을 현실의 세계로 단숨에 도킹시켰다. 오랫동안 공실이었던 가게, 몇 년이 지나도록 빠지지 않는 가게의 경우엔 보통 권리금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싶은 상가들엔 여지없이 수천만 원의 권리금이 존재했다. 운이 없으면 가게를 정리할 때 권리금은커녕 폐업비용까지 떠안을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새롭게 배운 사실이었다. 대기업에 8년 다녀 받은 오천만 원이란 퇴직금에 주식, 예금, 신용대출까지 싹 다 긁어모아 만들 수 있는 1억 남짓한 돈은 1인 가구 오피스텔의 전세자금, 배당수익을 노려볼 수 있는 주식투자의 여윳돈, 그것도 아니면 아무리 아껴 써도 몇 년 안에 허공으로 사라질 생활비에 불과했다. 나름 자부심 가질 수 있는 대학을 나와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대기업에 다녔던 십 수년의 세월이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몸과 정신을 해치며 그렇게 아등바등 벌던 몇 백만 원이 말 그대로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최대한의 노동에 불과했다니. 가진 것 없이 제로에서 시작한 삶이 이 모양인데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 삶은 어떤 모습들로 하루하루를 버텨낼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어지러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히는 것이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았다.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다시 매장 자리를 찾아봐야 했다.


***


 처음으로 생각을 되돌렸다. 가장 중요한 건 스터디 카페를 이용할 고객층이었다.


 식당이나 옷가게가 아니니 전체 유동인구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근처 아파트 단지의 세대수를 따지는 것도 그다지 의미 있는 행위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린 신혼부부나 노년층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에선 스터디 카페 이용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청년층이 많은 오피스 지역에서도 스터디 카페가 잘 될 리는 만무해 보였고, 대학가를 생각해보면 학교 도서관을 이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대학생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분명 조모임 할 장소들이 마뜩지 않았던 것은 분명했는데, 시험공부나 학과 공부를 위한 수요까지 학교 밖에서 흡수 가능한가를 생각해보면 회의적 감정이 앞섰다. 물론 대학을 졸업한 지 어느덧 십 년도 넘은 중년(?)의 시선으로 요즘 학생들의 생각을 갈음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일 년에 5개월 가까이가 방학인 대학가에서 스터디 카페를 여는 건 그다지 현명한 행위가 아닌 것 같았다.


 이쯤에서 왜 독서실이 아닌 스터디 카페인지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이유를 설명해 드리자면,


1. 요즘 애들은 독서실보다 스터디 카페를 선호한다. 꽉 막힌 책상에서 공부가 잘 되지 않느냐는 생각은 최소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의 의견일 가능성이 높다.


2. 더군다나 요즘은 1인실이 있는 스터디 카페도 많다.


3. 독서실은 프리미엄 독서실과 일반 독서실로 나뉘는데 프리미엄 독서실의 경우 시설비가 높고 단위면적 당 받을 수 있는 인원이 줄어든다. 독서실이 프리미엄 독서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될 경우 수익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4. 그에 반해 스터디 카페는 음료와 간식 등을 판매할 수도 있다. 물론 조리음식이 들어갈 경우엔 공간 임대업이 아닌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해야 할 경우도 있으므로,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간식은 수익률이 좋아도 과감히 빼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5.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독서실은 허가 업종이고 스터디 카페는 등록 업종이라는 사실이었다. 독서실을 내려면 교육청에서 허가를 받기 위해 온갖 서류를 내고, 전기와 소방 등 검사를 따로 받고, 교육청에서 나온 실사를 통과해야 했다. 면적과 수용인원에 제약을 받았으며, 엘리베이터와 계단의 개수도 중요했고, 때에 따라서는 건물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건축사무소를 찾아 건물의 용도변경을 해야 했다. (이게 골 때리는 게, 용도변경은 일반인은 절대 할 수가 없게 설계해 놨다. 건물주가 구청에 직접 찾아가도 건축사무소에 찾아가 진행하라고 한다. 고위급 어디엔가 커넥션이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나중에 유명한 사람 되면 꼭 따져볼 거다.) 그에 반해 스터디 카페는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등록만 하면 끝이다. 이보다 더 간편할 수가 없다.


 스터디 카페가 아닌 독서실을 낼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공간적 여유가 있다면 바로 옆에 카페, 또 바로 옆에 공유 오피스 등 사업 확장도 가능했다. 중요한 건 오로지 고객의 선택이었다. 결론은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는 중고등학생, 그리고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 이들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지역을 선점해야 했다. 

이전 01화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입니다.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