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문을 칠한 날, 마음도 조금 정리된 월요일
어제, 태어나서 처음으로 페인트를 잡았다. 신발장에 젯소를 바르고 방문들을 하얗게 덧칠했다. 땀은 줄줄 흘렀지만, 붓이 지날 때마다 누렇게 바랜 면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 변화를 바라보는 동안 마음속 먼지도 함께 닦여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집을 내놓았으니 더 단정해 보이면 좋겠고, 사실은 나를 위해서도 필요했다. 아이와 나란히 붓을 움직이다 보니 생각보다 야무진 손길에 웃음이 났고, “와, 달라졌다!”라는 한마디가 집 안 공기를 환하게 바꿨다. 바뀐 건 색만이 아니었다. 내 태도도 아주 조금, 방향을 틀었다.
오늘은 출근 대신 한 달짜리 영어 말하기 교육을 들었다. 과제가 적지 않지만 회사의 속도에서 한 발 물러서자 숨이 드나들 틈이 생겼다. ‘점수는 어떨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늦게 도착한 문장이 제자리를 잡는다. 그래도 괜찮다. 의자에 앉아 교재를 펼치니 삶이 아주 조금 배움 쪽으로 기운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그만큼이면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엔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예전 같으면 배가 먼저 뭉쳤을 텐데, 오늘은 서둘러 해석하거나 누굴 탓하지 않고 들은 이야기를 차분히 적었다. 그리고 필요한 부분을 선생님과 짚어 보고, 집에 돌아와 아이와 어떻게 이야기할지 떠올렸다. 누가 잘못했는지 숫자 세듯 따지기보다 같은 편에서 방법을 고르자고 마음을 돌리니, 목덜미에 걸려 있던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페인트가 마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관계도 시간을 통과해야 부드러워진다는 걸 다시 배웠다.
저녁에는 ‘오늘 있었던 일’보다 ‘다음에 해볼 일’을 이야기했다. 큰 결심 대신 오늘 가능한 만큼만 해보기로. 지켜진 날엔 의식적으로 칭찬하기로. 물론 넘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미지는 그렇게 천천히 바뀐다. 하얀 페인트가 겹겹이 덧발라지듯, 하루도 그렇게 덧칠된다.
밤에 방문 곁을 지나며 문을 한 번 더 어루만졌다. 손끝의 감촉은 여전했지만, 색은 묵은 감정이 걷힌 듯 한결 환했다. 달라진 건 색만이 아니다. ‘불안하면 웅크리던 나’에서 ‘불안을 지나 움직이는 나’로, 아주 미세하게 방향이 틀어졌다. 출근이 아닌 회사 교육이 만들어 준 작은 틈이 마음을 정리하는 틈이 되었고, 그 틈은 태도를 바꾸는 틈으로, 끝내 대화를 다듬는 틈으로 이어졌다. 오늘의 이 작은 변화가 내일의 평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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