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일만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하지 못한 불편함 속에서, 내 경계를 지켜보는 연습

by 부엄쓰c

회의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조용히 정리되던 자리에서,

갑자기 하나의 말이 툭 튀어나왔다.


“갑자기 이야기하면 어떡하냐고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소리도, 공기도, 시간도

그 말 이후로는 아무것도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똑바로 받아내지 못했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내가 함께 일하는 부장이었다.

나는 전날 저녁, 학부모 공개수업 때문에

오후에 출근하겠다고 알렸다.


사실 우리 팀은 출근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다.

그날은 바쁜 일도 없었고,

내가 오후에 출근해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것 같은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갑자기 말하면 놀랄까 봐,

나는 퇴근 직전인 5시쯤 미리 이야기했던 거였다.


같은 팀의 다른 부장에게는

점심시간 산책 중에 자연스럽게 얘기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선

그가 나를 꾸짖는 것처럼 들렸다.


“계속 그렇게 하세요.”


비꼬듯 내뱉은 그 말에

나는 한참이나 얼어 있었다.


“비꼬시는 거예요?”

물어봤어야 했다.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싸우고 싶지 않았는지,

쫄았는지,

아니면 순간 너무 놀라서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회의실을 나서고 나서야

숨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제야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는지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말이

공평하지 않았다는 것.

같은 상황에서 다른 후배가

내일 늦게 오겠다고 말했을 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


나는 생각했다.

왜 나에게만 그러는 걸까.

왜 조직 안에,

이상한 선을 긋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까.


그 순간, 나는

내 위치를 생각했다.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아닌

어딘가 가운데 서 있는 나.


리더는 아니지만,

리더십을 배우고 싶어 노력 중인 나.


그래서 그날은

참는 쪽을 선택했다.

갈등보다는 조용한 화합을 택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그 선택이

내 안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일이었다는 것.


그날 나는

“미리 말 못해서 죄송해요.

조심할게요.” 그리곤 “이 말 듣고 싶었던 거죠?”

하고 말해버렸다.

기분이 너무 나빠서,

나도 모르게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공감해 보려고 애쓰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정말 죄송해요.. 마음이 급하신것 같은데 미리 말 못해서요..”


그는 “신경 쓰지 말라”며

그대로 퇴근해버렸다.


남겨진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걸렸다.

그 사람이 무례했다는 것도,

불공평했다는 것도 분명한데-

나는 또 그 사람이

예전엔 다정하게 내 편이 되어줬다는 걸 떠올렸다.


불편한 감정을

굳이 꺼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넘겨야 하나.

며칠을 고민했지만

결국, 아직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내 감정을 다 정리하고 나서,

말하고 싶어질 때가 오면

그땐 꺼내도 늦지 않을 테니까.


지금은

내 마음이 가는 쪽으로

조용히 움직이기로 했다.




오늘의 실천

불편함을 말하지 못했던 나를

그저 조용히 안아주기.




나에게 남기는 말

그 순간 말하지 못했지만,

내 마음은 기억하고 있다.



keyword
이전 09화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 시간은 나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