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껴안는 연습
야근 중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길어졌다. 퇴근도 늦어졌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익숙한 이름, 엄마였다.
“퇴근했냐.”
짧은 말.
그런데 그 안에 이미 눌린 공기 같은 감정이 실려 있었다.
답답하고 조여오는 긴장감이 귀를 타고 스며들었다.
“아이한테 할머니 오지 말라고 했다며.”
순간 숨이 멎었다.
“무슨 말이에요? 전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그랬다며. 아이한테 그랬다며.”
“전 모르는 얘기예요. 지금 일 중이라, 나중에 얘기해요.”
통화를 끊었다.
버스 안, 창밖은 어둡고 마음은 무거웠다.
핸드폰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시간은 너무 늦었다.
결국, 익숙한 불안을 조용히 혼자 삼켰다.
•
그 불안은 처음이 아니었다.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아주 작았을 때의 밤.
엄마도, 아빠도 들어오지 않던 날이었다.
불도 끄지 못한 단칸방은 환했지만, 마음은 무서웠다.
잠든 동생 옆을 지나
창가로 가서
두 손을 꼭 모은 채
기도했다.
‘하나님… 시키는 거 다 할 테니까
엄마를 보내 주세요.’
그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엄마와 아빠가 단칸방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말없이
훼미리 주스 병을 집어 들고
나를 지나 장롱을 향해 던졌다.
병이 장롱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울지도 못했다.
그저 손이 차가워졌고
마음이 조용히 얼어붙었다.
그게 ‘불안’이라는 걸 알기도 전에
나는 이미 불안 속에 있었다.
•
어제의 전화.
그날의 주스병처럼
내 안에서 쨍하게 울렸다.
‘내일부터 니가 키워.’
익숙한 말인데도 여전히 얼어붙었다.
이 감정은 어제 생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안에서 자라온 감정이었다.
•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나는 안다.
이 감정에 이름이 있다는 걸.
불안.
그리고,
그 불안 속에서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걸.
버스 안,
나는 조용히 속으로 되뇌었다.
‘괜찮아. 지금 이 감정도 괜찮아.
큰일 나지 않아.
이건 예전의 내가 아니야.’
•
아직 엄마와 다시 대화를 나눌 준비는 되지 않았다.
그 오해와 감정의 응어리를 꺼내기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이기에,
나의 부모이기에
나는 또다시 힘을 내야 할 것이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엄마가 다짜고짜 몰아붙이면 너무 힘들다.’
몇 번을 반복해도
나는 또다시,
내가 할 수 있는 말로
전하려고 할 것이다.
•
조급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불안을 삼킨 나를 먼저 다독이는 시간.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그리고 나는 안다.
나는 그때의 나와는 다르다.
그날의 주스병을 지나,
지금 나는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나 자신과 함께 있다.
오늘의 실천
불안을 느낄 때
두 손을 꼭 잡고, 조용히 되뇌어보기.
‘지금 이 감정도 괜찮아.’
‘이건 예전의 내가 아니야.’
나에게 남기는 말
불안은 아주 오래된 감정이지만
지금의 나는,
그 감정을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생긴 사람이다.
그 밤 창가에서 기도하던 아이를 기억해.
그 아이를 위해,
지금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