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했던 감정은 가장 순진했던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아이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또렷해질 때, 내 몸은 본능적으로 얼어붙었다. 마치 오래된 사진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익숙한 얼굴.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단 한 번도 잊힌 적 없던, 내 안에서 끊임없이 울던 그 아이였다.
“너…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가까스로 물었다.
아이는 무릎을 꼭 끌어안은 채 작은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며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은 깊고 투명한 어둠처럼 나를 빨아들였다.
“그냥… 기다렸어.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줄 때까지.”
아이는 속삭이듯 말했다. 순간, 아주 오래된 밤 하나가 기억 속에서 천천히 펼쳐졌다.
그날 밤, 어두운 단칸방에서 동생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두 손을 꼭 모은 채 창가에 서서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다. 하나님이든 누구든 좋으니 제발 엄마를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불안과 공포는 그날 이후 성인이 된 나를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엄마와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방 한쪽에 앉아 있었다. 나를 안아주거나 괜찮냐고 묻지도 않았다. 대신 아빠는 말없이 주스병을 들어 나를 스쳐 지나 장롱을 향해 던졌다. 그날의 날카로운 충돌 소리는 내 안의 무언가를 영원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어린 하연은 내 침묵을 마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왜… 이제야 왔어?”
아이는 내 속의 가장 깊은 곳을 찔렀다. 나는 숨이 막혔다.
“몰랐어… 아니, 알고도 모르는 척했어. 네가 너무 아팠으니까, 그걸 인정하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해.”
아이는 작은 손으로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외면할 때마다… 난 점점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야 했어. 무서웠어, 버림받을까 봐. 네가 나를 싫어할까 봐…”
나는 천천히 다가가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린 하연의 눈물은 내 눈물과 같았다.
“이젠 정말 혼자 두지 않을게. 너를 버리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아이는 울먹이며 내 품으로 들어왔다. 가슴에 닿는 순간, 마음의 벽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함께 갈 수 있을까?”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함께 갈 거야.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내 품에 더 깊이 안겼다.
말 대신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이, 우리 둘 사이의 오랜 거리를 천천히 좁혀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새로운 길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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