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가 운세에 미치는 영향
모든 운세는 우주와 세계, 국가, 사회, 가족, 나로 연결되어 있다.
자기로부터 우주까지 연결된 에너지 시스템이다. 운세는 단순한 개인적 에너지흐름이 아니다.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 작용한다.
만약 북한에 태어났다면 특권층을 제외한 사람들은 운세가 희미하다.
보통 가정에 태어나면 성공과 출세의 기회가 없다. 아프리카 모하비 사막 근처에 태어나면 운세 개념 자체가 없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며 일어나는 모든 과정들이 운세로 나타난다.
운세는 기본적으로 모든 국가와 사회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운세를 개인적인 길흉화복으로 보아선 안된다. 자기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이 운세인 것이다. 만약 운세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우주로부터 가족에 이르기까지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나라는 존재는 이 세계 속에서 규정되며 사회와 가정에서 정립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세를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로 개인적으로 국한된 운세는 없다. 세계와 연결된 자아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가 운세인 것이다.
다양한 상황과 관계 속에서 결론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운세이다.
운세는 좋고 나쁨의 단편적 현상이 아니다. 운세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길흉화복이다.
길은 자기 노력의 대가 혹은 성과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흉은 씨를 뿌리고 키우고 가꾸는 과정이다. 절대로 나쁜 일을 겪고 불운한 것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삶의 과정에서 배우고 익히는 경험의 단계이다.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 단계이다. 이 흉의 단계를 벗어나는 인간은 없다.
다만 그 과정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고 삶의 결단으로 만드는 가의 차이가 있다. 화는 삶에서 일어나는 불운한 사건이나 사고, 확률적 변수를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복은 말 그대로 행운이다. 우연한 행운에서 오래 누적된 축적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행운도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이 길흉화복을 좋고 나쁨으로 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반드시 삶의 과정에서 나타나야 하는 단계이다. 흉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길이며 화가 나타나고 복이 따른다. 자연의 순환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코로나 기간 중에 사회적 격리는 지구촌 전체의 운세였다.
어느 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에서는 작년 6월부터 11월까지 완전 통제가 된 적이 있다. 이러한 거대한 운세는 세계와 국가, 사회의 문제이다. 개인이 예외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코인투자나 주식, 부동산 투자가는 호황을 누렸다. 이러한 것이 운의 다양성이다.
누군가에게 불운이 어떤 이한테는 행운이 되는 원리이다.
이것을 운세라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개인을 둘러싼 사회와 국가, 세계, 우주가 모두 운세의 테두리 안에 있다. 이것은 절대로 동양철학의 원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운세라고 길흉과 화복을 논해선 안된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우주 변화의 원리이고 에너지 패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어떻게 운세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는가 하는 점이다.
운세를 과학적으로 정확히 이해하면 길흉과 화복이 아닌 현상이나 패턴이다. 자신의 삶에서 펼쳐지는 현상이나 패턴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그것이 운세에 대한 관점이며 운세를 경영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나 행운, 그리고 불운7. 2022
. 운세경영 어떻게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한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나 불운이 닥쳐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다.
특히 만성질환을 지닌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지난 코로나 시절에 당뇨나 고혈압, 심장병 있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불안했을 것이다. 코로나 감염이 되면 사망률이 훨씬 높다는 통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운세와 무관하게 자기 경영을 잘하는 사람을 제외하곤 대부분 심리적으로는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운세를 알고 경영하는 사람은 확실하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상황의 운세이든 현명하게 경영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 기간 동안에 고속으로 발전한 기업이 있고 개인이 있었다.
바이오 계통의 사업, 백신제조 제약회사들은 사상 초유의 호황을 누렸다. 반면에 급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는 바람에 전통적인 아날로그 시장은 쇠퇴했다. 디지털 노머드(디지털 유목민)도 엄청나게 생겨나고 메가버스 혹은 AI, 가상현실 등도 구체화되었다. 이 모든 것은 운세이다. 시대적 운세의 흐름이 디지털로 접어들었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개인의 운세는 어떻게 되는가?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은 아날로그 시대의 운명학에 관심을 둔다.
자신의 현실이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운명학 시장이 아직도 살아 있는 이유다. 유튜브를 보면 수많은 역술학자들이나 무당 등이 활동한다. 그들은 신기하게 운명을 맞춘다는 식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운명은 그렇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만 직업적 활동을 하는 역학자나 점술가, 무당들은 그들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명확하지 않은 예측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운세경영은 그런 운명학이나 무당들의 점술과는 다른 개념이다. 과학이나 경영학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예측가능한 원리이다. 자신의 삶을 둘러싼 우주와 세계, 국가와 사회, 가족의 관계를 살펴보면 개인의 운세가 나타난다. "제 운세가 어떤가요?" 이런 방식의 질문이 아니라, "운세를 어떻게 경영해야 하나요?"가 되어야 한다. 운명학 범주안에 운세와도 차이가 있다. 그것은 타인이 돈을 받고 한 개인의 삶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운세경영의 운세는 개인 스스로가 설계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범주이다.
자신의 운세를 스스로 설계한 대로 만들어가는 것이 운세경영이다.
타인에 의해 예측되고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운명학에서 말하는 길흉화복과는 판이한 개념이다.
과정 없이 길이라는 열매나 결실, 결과를 받거나 흉이라는 불운, 실패, 좌절을 받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또한 좋거나 나쁘거나 식이 아니다.
과정의 학습과 훈련, 시도와 경험에 의한 단계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운세의 진정한 의미는 우주와 세계, 국가와 사회, 가족 속에서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운세를 진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꿈과 목표, 방향성이 어떤지가 바로 운세이다. 하지만 그런 꿈과 목표, 방향성이 없다고 해도 운세는 알 수 있다. 바로 그 상태가 현재 운세이다. 농사를 짓지 않은 농부가 수확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포유류 동물들은 태어나서 성인이 되는데 1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한데 인간은 성인식이 만 19세다. 포유류 동물에 비해 무려 18년이란 긴 시간을 학습하고 성년이 된다. 또한 성년이 된다고 해도 대부분 대학을 진학하여 거의 24세 이후에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그 긴 과정의 성장기는 미래 운세의 바탕이 된다.
태어나서 사회화하는 과정 전체가 운세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격한 기준으로 운세를 측정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기준치에 따라 자신의 운세를 판단할 수 있다. 운명학에서 말하는 운세와 확연하게 다른 자기만의 운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 그에 따라 운세경영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