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픔의 자리에 피는 치유의 꽃

침술치료의 매력 3. 과학이지만 악보에 맞춰 연주하는 음악 같아요.

by 백승헌

승윤은 매번 그녀의 체온, 맥박, 얼굴빛을 체크했다.

마치 노련한 사격선수가 날씨와 풍속을 감안하여 계산을 하는 것과 유사했다. 그는 침술처방 역시 미세하게 조정했다.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마치 자신의 몸을 가볍게 연주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몸이 마치 악기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만의 악보’를 가지고 연주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경쾌했다.

승윤은 침을 놓으며 지나가듯 말했다.

“침술 치료의 매력은 특별한 것 같아요. 과학이지만 악보에 맞춰 연주하는 음악 같아요.”

그 말이 어쩐지 오래도록 수진의 마음에 남았다.


어느 날 침을 맞는 순간, 수진은 눈물이 흘렀다.

단중혈에 자침이 들어가던 순간이었다. 수궐음 심포경의 모혈인 단중혈이 열리면서 그런 느낌이 일어났다. 가슴 어딘가가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를 슬픔이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린 미아가 되어 눈물에 젖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눈물이 흐르며 가슴은 더욱더 시원해졌다.

“괜찮아요. 울어도 돼요.”

승윤은 그녀의 손을 살짝 누르며 말했다.


수진은 그를 의식하면서도 감정의 흐름을 멈추지를 못했다.

가만히 보던 승윤은 간호사와 함께 나갔다. 그는 보통은 간호사와 함께 끝까지 환자를 지켜보며 치료했다. 그런데 그날은 마치 수진에게 그 시간을 주듯이 그렇게 했다.

한 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수진은 눈물을 닦으며 진정했다.

그녀는 가만히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아프면서도 시원할까?’

그 의문을 마음의 호수 한가운데로 던졌다. 작은 파장이 일어나며 지난 기억들이 떠올랐다.


수진의 아빠는 자수성가한 독선적 성격이었다.

그는 수진이 어렸을 때부터 지나치게 엄했다. 조금만 잘못을 해도 혼을 냈고 큰 소리를 쳤다. 수진의 어머니는 온화했지만 그 성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대학을 다닐 때는 9시까지 통행금지 시간이 정해져 있을 정도였다. 아빠와의 갈등은 대학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반항심이 생기고 강한 거부심이 생겼다.

아빠의 영향 때문인지 대학생활 내내 남자친구를 제대로 사귄 적도 없었다.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 있었다. 몇 번쯤 남자친구를 사귀려고 했고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남자들은 성적인 관계를 원했지만 그녀는 그것이 되지 않았다.

육체적인 관계를 시도해도 정상적인 행위가 불가능했다. 몸이 열리지 않았고 거부했다.

남자친구와는 거리감이 생기고 헤어지곤 했다.

성격은 점차 내성적이 되었고 말수가 없었다. 수진이 필리핀의 보나파시오로 온 것도 아빠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집을 나오는 순간부터 수진은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회사의 업무로 인한 피로감과 외국생활의 외로움 등이 조금씩 축적이 된 것이었다.

그 생각에 젖어 있을 때 승윤이 들어왔다.

수진은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색을 하며 말했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제가 저 자신을 너무 미워했던 것 같아요.”

승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픔은 자기 안의 어둠이 보내는 편지예요. 몸 안의 모든 부위에는 기록들이 있어요. 당신이 그걸 읽기 시작했다는 건, 이미 나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수진은 그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몸 어단가에서 오직 자신만 알 수 있는 은밀한 속삭임이 들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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