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뇌 잠김을 푸는 무의식 맥산침법

뇌 잠김의 상태 10. 뇌는 고통스러우면 무의식적으로 잠겨집니다.

by 백승헌

수진은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다.

치유 에세이 『몸이 나에게 보낸 편지』는 출간 준비 중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병에 갇힌 사람이 아니었다.

승윤과의 관계는 깊어졌지만 마지노선이 남아 있었다. 여전히 ‘사랑’이라는 말은 서로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은 이미 말보다 깊은 물결로 흘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들이 서로를 연결하고 있었음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어진 선안에서만 맴돌았다.


어느 저녁, 승윤이 말했다.

“오늘은 무의식 신경의 맥산침법을 놓아 드리고 싶어요. 손끝에 있는 기운을 되돌리며 뇌 잠김을 풀 수 있는 침입니다. 크게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침을 제게 놓아주는 이유가 있나요?”

“뇌는 고통스러우면 무의식적으로 잠겨집니다. 그것을 뇌 잠김이라고 합니다. 나쁜 기억이나 깊은 상처 등은 뇌 잠김 상태가 되죠.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두면 감정의 변화나 발전이 없습니다. 뇌의 특정 부위가 잠겨 있기 때문이죠. 뇌과학적으로 그것을 풀어야 하는 거죠.”

“저의 뇌 잠김도 있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것을 풀면 몸과 마음이 너무나 편해지실 겁니다.”


수진은 처음으로 침 맞는 동안 눈을 감지 않았다.

그녀는 승윤의 손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이 침 하나로 내 삶이 바뀌면 너무 좋겠어요.”

유침을 한참이나 한 후에 천천히 침을 뺄 때, 수진은 더없는 평화를 느꼈다. 정말이지 뇌 잠김의 어느 한 나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자신을 옥죄고 있는 수많은 무의식들이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신기한 뇌에너지의 흐름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일기장에 마지막 문장을 썼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픈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다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한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사랑이다.”


수진의 첫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몸이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표지는 따뜻한 흙색의 수채화 배경이었다. 제목은 작고 단정한 손글씨체로 제목이 쓰여 있었다.

출판사는 의외로 적극적이었다. 자극적인 내용은 없었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크게 책 제목을 띄웠다.

유명인도 아닌 수진의 책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진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책이 출간되던 날, 수진은 정오 무렵 조용히 한의원에 들렀다.

“이거요.” 그녀는 말없이 책 한 권을 승윤에게 건넸다.

승윤은 아무 말 없이 책을 받았다. 그 표지를 오래 바라보며 살며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천천히 표지 안쪽에 적힌 헌사를 읽었다.


“이 책은 제 안에 남아 있던 슬픔을 꺼내어, 누군가의 손길 덕분에 다시 접어둔 기록입니다. 그 손은 아주 조심스럽고 따뜻했습니다. 이 책을 바칩니다. 한의사 강승윤 선생님께.”


승윤은 책을 가만히 품에 안았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짧게 말했다.

“… 고맙습니다. 이렇게 건강하고 아름다우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 말은 수진에게는 큰 울임으로 다가왔다. 현란한 수사를 하지 않아도 단순한 그 말과 따뜻한 음성의 느낌들이 무엇보다 진지한 고백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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