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2021.06.12.토) *
좋았던 일이 계속 되면 좋으련만, 인생에 그런 일은 별로 없다. 좋았던 경험, 나빴던 기억이 번갈아 나타나는 듯한 생각...
나름 성공적인 내 생애 최초의 남자 학급 담임을 마치고 (어리석게도 그 경험이 계속 되리라 생각하고) 그 다음 해에도 ‘즐겁게’ ‘단 한 번의 고민도 없이’ 남자 학급 담임을 또 신청했었다. 2월 말 신입생 OT 때 담임 소개를 하며 내 이름이 불릴 때의 기립박수와 우렁찬 외침은 좋았었다. 그런데 3월 말 수련회 기간 임원을 포함한 8명의 음주사건부터 시작된 그 녀석들은, 마지막 헤어질 때까지 온갖 일을 내가 겪도록 해 주었다....
중요한 일만 이야기한다면, 수련회가 끝난 뒤 8명이 징계를 받았고, 반장도 연루되어서 반장(지금의 회장)을 다시 뽑았으며, 그 녀석은 1학기 중간에 자퇴를 하였다. 자퇴하던 날까지 녀석은 학교에 오지 않았고 엄마가 울면서 마지막 서류 정리를 했다. 또 그와 절친했던 음주사건 관련 녀석은 2학기가 시작되면서 전학을 갔다. 그러면서 무언가 일단락 되는 듯 했던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고 2학기 동안에도 온갖 일이 있었는데, 오죽하면 논산에 사는 우리 반 학부모가 꿈에 내가 나왔다며 나에게 힘을 내라고 학교까지 찾아와서 영양제를 주고 갔었다.
그런 중에도 예뻐하고 귀여워했던 아이들이 많았었던, 지금 생각해도 많이많이 아쉽고도 안타까웠던 아이들이었다. 아마 지금은 26살이 되어 있겠다. 그 때의 우리 반 반장 녀석은 잘 지내고 있을까...
난 그 때 알았다. 한번 어떤 문제에 연루가 되니 계속 다른 일에도 본인을 쉽게 내어주는 속성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음주사건이었지만 한 때의 치기로 끝났을 수 있었던 일이었는데 관련되었던 그 녀석들은 핸드폰이며 온갖 문제에 계속 오르락거렸다. 왜 그랬을까...
당시 학교 규정은 지금 학생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수도 있을 정도로 조금 엄격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교복 안에는 하얀 티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2학기에 전학을 갔던 녀석은 항상 검은 티를 입고 다녔는데 하얀 티를 입어야 한다는 말에 그 녀석이 했던 말과 표정을 뚜렷이 기억한다.
- 왜요??
- (왜요?? 라는 말에 당황한 나) 학교 규칙에 있어..
- 왜 하얀 티만 되는 거죠??
- 학교 규칙이니까 지켜야지..
- 전, 제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지키지 못하겠어요..
- 뭐라고???
아마 지금이라면....좀 더 능숙하게 녀석을 회유했을 것이고 웃으며 넘어갔을 것이고 그 녀석을 확실한 내 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나 라면 말이다. 충분히!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당시의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며 ‘왜요?’를 외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지키지 못하겠다’는 아이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채플 시간에 비전홀에서 아예 처음부터 엎드려서 자는 아이를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기에 – 적어도 내 학급에서는 말이다 – 계속 흔들어서 깨웠지만 그 녀석은 일어나지 ‘않았고’ 엎드려 있었다. 보다 못한 어떤 선생님께서 저 녀석은 그냥 두라고, 못 본척 하라고 하셨고, 내 손으로 직접 건들고 만들어서 변화되는 것까지 두 눈으로 보아야 직성이 풀렸던 나로서는 아마도 생전 처음, ‘손을 놓았던, 내 손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포기했던’ 학생이었다.
전학을 가는 학생은 교무실에 와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온갖 ‘축복의 말’을 듣고 가는 것이 전례였는데, 채플 시간에 엎드려 자고, 교복 안에 검은 티를 입고 다니고 음주사건부터 온갖 반항을 하던 녀석이 전학을 가던 날, 당시의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 인사하고 갈 필요 없어.
그 녀석을 지금 다시 만난다면 예전의 일들을 추억하며, 그 때 서로의 어설픔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모임이 발전하려면 30%의 사람이 움직이면 된다고 한다. 100%의 사람이 모두 다 움직이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런 모임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 듯...
30%의 사람들이 그 모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학급에서는 9명, 학년에서는 100명 정도, 3개 학년에서는 300명 정도가 되겠다. 나는 그 때 이 30%의 아이들에 집중하느라 나머지 70%를 거의 돌아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려 70%가 나를 믿고 바라보며 따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호되게 마음고생을 했던 그 녀석들 다음 해, 나는 다시 남학생 학급 담임을 신청했다. 이렇게 실패한 채 넘어갈 수 없다고, 나에게 여학생 학급 담임을 권하던 K선생님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 녀석들은, 역시나 나도 행복했고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아이들이었다. 교직의 보람을 일깨워주었던 괜찮은 녀석들이었다.
올해의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며 ‘따라오는 30%’만 있다면 그 팀은 변화될 수 있다는 긍정의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 속상하게 하는 30%에 집중하지 말기
여러분은, 그 팀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30%에 들어갑니까???
아님, 팀을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30%에 들어가나요???
* 음악논술형 시험지에 어떤 녀석이 그려 놓은 그림..
시험지에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 안되는 건데, 내가 아닌 그림이기에 용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