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하지 말고 *

by clavecin

* 아무 생각하지 말고 (2025.06.28.(토)) *


- 아무 생각하지 말고, 외워 보자.


6월 전국연합학력평가 성적표가 나왔다. 성적표가 나오면 1등급인 과목이 어떤 과목인지, 특히 국어, 영어와 수학은 몇 등급인지 등을 살펴본다. 전 과목(6과목) 1등급인 학생이 한 학급에 몇 명인지 서로 다투어 보았던 적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국·영·수 3과목이 모두 1등급인 학생을 찾기도 쉽지 않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국어와 수학은, 3등급이 제일 많았고, 2등급, 1등급 순서로 인원이 배분되었고, 영어는 2등급이 제일 많고 그다음 1등급 그리고 3등급 순서였다. 국영수 3과목을 비교해 보면 언제나 국어 과목의 1등급 비율이 제일 낮았다. 그래서 늘 말했다.


- 국어가 제일 어려워.


올해 6월 것을 살펴보니, 역시 국어와 수학은 3등급이 제일 많고, 2등급과 1등급 순서로 인원이 배분되었다. 반면 영어는 1등급이 제일 많고 2등급과 3등급 순서로 펼쳐졌다. 신기하다. 3월 것과 비교해 보니, 3월에는 2등급, 1등급 그리고 3등급 순서였다. 이번 6월의 영어가 쉬웠나 보다. 그리고 수학보다 국어의 1등급 비율이 조금 높았다. 이번 아이들은 국어와 영어를 잘하는 문과 아이들인가? 선생님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아이들이 생각보다 영어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 요즘 아이들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요.

- 어렸을 때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니면서 공부해 왔는데요?

- 뭐 하러 열심히 하겠어요. 이렇게 등급으로 나오는데.

- 그래서 그런지, 최상위부터 최하위까지 점수 차이가 크게 나는 것 같아요.


졸업생 A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보아서인지 재학생일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어서 잘 알아보지 못했다. A가 이름을 말하고서야 겨우 예전의 얼굴을 찾아내었는데 재학생 때와는 사뭇 다른 밝고 건강한 모습이어서 내심 깜짝 놀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뒤 질문했다.


- 우리 반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까?


A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해 주세요. 저 같은 경우, 국어랑 수학은 점수 올리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영어는 잘 안되더라고요. 뒤늦게 영어 공부를 하느라 시간이 많이 들어가서 힘들었습니다.


1차 지필고사가 끝난 뒤,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보니, 영어 공부 교재에 대해서 조언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단어는 시중에 있는 책을 구매해서 반복 학습을 하고 있었지만, 문법에 대해서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학년 영어 선생님들께 영어 문법 교재에 대해 문의했고, 지금 2학년과 3학년들에게도 어떤 책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 영어는 단어 공부가 대부분입니다. 단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해 주세요.

- 문법은, 책으로 혼자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인터넷 강의를 꾸준히 들으라고 해 주세요.


언젠가 B 학급의 진로 수업 때, C가 <다원화 사회에서의 영어 교과목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는데, 영어 수업의 목표와 방식, 수행평가 및 어휘 학습의 방향, 지필 평가의 문제점 등을 분석하면서 영어 교육의 변화 필요성에 대하여 강하게 어필했던 적이 있다. 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영어 교육의 실태(?)와 현주소,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발표가 끝난 뒤 학생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우리 모두 영어 공부를 오랜 시간 해 왔는데도 여전히 쉽지 않네요.

- 이렇게까지 영어 공부에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될 때가 오지 않을까요.


D 나라에 유학하고 있는 E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 D 나라에 있지만,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D 나라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영어로만 이야기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영어가 외국어이지만, 미국에서 온 사람은 영어가 자기 나라말이니까 얼마나 편할까 싶어요. 우리가 우리나라 말로 이야기하는 거랑 똑같으니까요. 정말 부러워요.


‘금식(禁食)’이라는 단어가 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일정 기간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금식이라고 하더라도, 보통 물은 마셔도 된다. 대학생 시절에는 새해에 4일의 금식 수련회에 참석하며 1년을 시작하곤 했었다. 평안한 1년이 되기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어렵게) 음식을 끊는 것이다.

마찬가지 의미로 ‘미디어 절제’라는 말이 있다. 일정 기간 TV를 비롯한 미디어를 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보통 3월이나 4월의 부활절 전 고난주간에 실시한다.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보내기 위한 행동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미디어를 끊었으면 자부심이 느껴졌을 텐데 사실 의지와 상관없이 미디어를 접할 시간 자체가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오래전, 금식이나 미디어 절제의 의지를 가지고 1년 동안 쇼핑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사야만 했던 생필품을 제외하고서는 단 1원도 허투루 돈을 쓰지 않았었는데, 무언가 절제가 필요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건 무척 힘들었다. 흥청망청 돈을 쓰는 나로서는 정말 혀를 깨무는 것과 같은 강한 의지와 결단이 필요했는데. 진짜로 1년 넘게 쇼핑을 하지 않았다.

그 시절, 쇼핑을 절제하며 보냈던 그 힘든 시절에 내가 했던 일 중 하나는, 영어 단어를 외우는 일이었다. 쓸데없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수능 영어 단어’라는 타이틀로 시중에 나와 있는 영어 단어 책 중에 F 교재를 사서 무조건 외웠던 기억이 있다. 내 책상 위 책꽂이에 20권도 넘게 꽂혀있는 영어 관련 책을 모두 내버려두고 새롭게 선택한 교재였다. 생각보다 많은 단어를 외우지 못했고 그때 외웠던 단어는 지금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이 잡념을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 영어는 암기 과목이야.


G가 했었던 이 말을 아이들과 상담하면서도 자주 이야기한다.


- 영어는 암기 과목이야. 암기 과목이니까 외웠다가 까먹겠지. 그러면 또 외우면 되는 거야. 일단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외워 보자.


아무 생각하지 않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싶기도 하고 외워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하는 것이 나을까?’라는 그 어떤 생각 없이 그냥 무조건 외우기만 하고 싶다. 시험을 볼 것이 아니니까 외우고 까먹고 외우고 까먹고 해도 상관없다. 전에는 F 교재를 선택했고 학년 부장을 하면서 G 교재를 또 샀는데, 또 새로운 교재를 구해야 할지, 아니면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골라야 할지, 생각지도 못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금식은 4일이었고, 미디어 절제는 7일이었으며, 쇼핑 절제는 1년이 넘게 했었지만, 영어 단어 외우는 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년은 넘게 외워야 했었음에도 아마도 딴생각이 들어갔던 것일 거다. 이번 영어 단어 외우기는 얼마 동안 해야 할까. 지금 마음 같아서는 가능하면 더 이상 외우지 않아도 되는, 온갖 생각을 해도 되는, 자유로운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의도치 않게 영어 단어 외우는 것이 어떤 일을 견디는 상징이 되어 버렸지만, 예전과 다르게 가벼운 마음으로 영어 단어 외우기를 즐겨야겠다는 마음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영어 단어를 외우다 보면, 시간이 지나가 있지 않을까.

자, 어떤 영어 단어 책을 선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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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아이들은 다음 주부터 있는 2차 지필고사를 위해서 책과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진행하는 우리 반 클래스 스터디 중, 수학 스터디 문제를 적어 놓은 칠판.

잡념을 없애기 위해 수학 공부를 한다는 H와 취미로 수학 문제를 풀던 I가 생각난다.

아무래도 영어 단어 외우기가 좀 더 수월해 보이네. 하하.

18.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jpg

#영어 #전국연합학력평가 #수학 #국어 #영어_단어 #잡념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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