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들이 모르는 오솔길을 아는 것 *

by clavecin

* 남들이 모르는 오솔길을 아는 것 (2025.06.21.(토)) *


- 사랑이란, 남들이 모르는 오솔길을 아는 것.


나를 찾아온 졸업생 A와 B를 우리 반에 데리고 들어갔다. A가 (다짜고짜)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사는 거죠?


A의 말을 들은 아이들이 갑자기 까르르 웃으며 큰 소리로 말한다.


- ATP를 만들려고요!


뒤에서 듣고 있던 나는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듣고 있던 A도 다시 질문했다.


- 왜 사는 거라고요??

- ATP를 만들기 위해서 사는 거예요!


그러면서 서로 왁자지껄 웃고 떠든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질문했다.


- 그게 무슨 말인가요??

- C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우리는 ATP를 만들기 위해서 살아가는 거고, ATP를 만드는 이유는 살려고 만드는 것이다!’라고 늘 말씀하셔서요.

- ATP가 무슨 뜻인가요?

- 생명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인데, 어쩌고저쩌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ATP’ ‘ATP’를 외치며 깔깔거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나름 ‘심오한’ 이야기를 하려던 A에게, 생명과학 이론으로 ‘엉뚱하게’ 대답하며 웃음을 주었던 아이들. 아이들은 ‘살아가는 이유’와 ‘ATP’라는 단어만으로도 얼굴에 웃음이 퍼지고 있었다.

학년 부장을 하던 2021년부터 1학년 학생 360여 명을 대상으로 <학년 조회>와 <학년 종례>를 해 왔었다. 조회와 종례이지만, 실제 필요한 전달 사항이 아니라, 아침에는 하루를 시작하는 메시지와 성경 말씀, 그리고 추천 음악 링크를 보냈었고, 저녁에는 하루를 마감하는 메시지를 담아서 보냈다. 각각 오전 6시경과 오후 6시경에 보냈었는데, 매번 비슷한 내용이지만, 학생들도 좋아하고 학부모들까지도 좋아했고, 때때로 늦게 보내거나 하면 아이들은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고 연락을 해 오기도 했던, 내가 공들였던 프로그램이었다.

담임교사를 하면서, 4년 동안 하던 이 일을 어떻게 바꿔볼지 고민하다가 아침에는 <아침의 선물>이라는 타이틀로, 저녁에는 <종례>로 보내고 있다. <학년 조회>와 <학년 종례>를 할 때는 나 혼자 하던 일을, 올해에는 우리 반 아이들도 참여하게끔 하고 있다. 즉, 해당 날짜에 해당 번호 학생이 보내는 것인데, 아이들의 메시지, 성경 말씀이나 명언, 또 추천 음악이 무척 다채롭고 흥미롭다. 메시지도 아이들답게 재미있게 작성하고, ‘어디서 이런 말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경 말씀과 명언의 선택도 훌륭하고, 추천 음악도 다양해서, ‘학년 부장을 할 때 아이들도 참여시켜야 했는데’ 하며 내내 후회하는 중이다.

매일 아침 보내야 하는 것이기에 번거롭기는 하지만, 예약을 해 놓는 아이들도 있어서 별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아주 가끔 놓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놓치는 아이가 있으면 아이끼리 순서를 바꾸어서 누가 대신해 주기도 하는데, 그것까지도 없던 어느 날, 담당이었던 D가 <8시40분의 선물>이라는 타이틀로 저녁 8시 40분에 보내기도 했고, E는 <저녁의 선물>이라는 타이틀로 저녁 6시에, 어제 오후 12시에는 F가 <점심의 선물>이라는 타이틀로 보내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OO의 선물>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말하는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의 추억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내든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내가 보냈던 메시지처럼 마무리를 이렇게 장식했다.


- 파이팅팅팅~~~


2학년과 3학년 아이들도 <학년 조회 종례>를 통해서 ‘파이팅팅팅~’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함께 경험했기에 나를 보며 외친다.


- 파이팅팅팅~~


담임교사를 다시 맡게 되면서 하게 된 학급 자율활동을 위해서 새롭게 만든 것들이 많다. <아침의 선물> 이외에도 <오늘의 학생> <클린 클린> <클린 서포터즈> <클래스 빌더> <블레싱 타임> <하이라이트 스터디> <베스트 티처> <클래스 스터디> <멘토와의 만남> <컬처 페스타> <성장 기록 포트폴리오> <아침 출발> <아침에 책을> <틈내어 책을> <자기주도 학습 플랜> <클래스 스토리> <웁스! 랩> <오늘의 아침> <오늘의 수학> 그리고 <오늘의 영어>까지. 모두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고, <마이 스페셜티 페어> <클래스 주말 편지> <클래스 선배 이야기>는 이제부터 할 것들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런 이름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단어를 들으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함께 경험하는 중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 너와 나 사이에, 우리 사이에 서사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서사가 무슨 말일까.


- 서사(敍事, narrative) : 이야기, 사건의 흐름, 관계의 발전.

- 공감, 감정, 연결, 함께 만든 역사

- 시간의 흐름 속에서 쌓인 이야기

- 관계의 깊이나 시간성

- 우리가 어떤 과정을 함께 겪었고, 어떤 의미를 공유하고 있는가를 의미

- story, history, narrative, shared past


특히 이 단어가 마음에 든다.


- shared past : 시간 속에서 함께 겪어 온 의미 있는 흐름이나 연결고리


이렇게 풀어서 말할 수 있을까.


- 너와 내가 함께 겪은 과거

- 우리만의 기억과 이야기


책을 읽다가 이 문구에 동공이 흔들렸다.


- 사랑이란, 남들이 모르는 오솔길을 아는 것이다.


이런 말일까.


- 둘 사이의 특별한 경험이나 감정, 혹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둘만의 연결고리

- 세상에서 우리 둘만이 공유하는 무언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깊은 이해와 공감

- 사랑이란, 둘만이 공유하는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연결


‘ATP’와 ‘살아가는 이유’와 ‘파이팅팅팅’과 ‘아침의 선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귀가 쫑긋해지면서 고개를 들고 얼굴에 미소가 퍼지게 될 우리, 너와 나 사이에, 우리 사이에 있는 이 서사를 잊지 말자.

아, 오래전 나의 과거에 있었던 G! G에게도 말해본다.


- 너와 내가 함께 겪은, 우리만의 과거.

그 아프고, 슬프고, 아름다웠던 기억들과

너와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로 가득한,

함께 걸었던 그 비밀스러운 길.

남들이 모르는, 우리 둘만의 오솔길을 기억해 놓지 않을래?

우리의 ‘shared past’는,

언젠가 ‘shared present’, 그리고 ‘shared future’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에게는, ‘shared’, ‘함께’가 중요하니까.


****************


*** 지난 1차 지필고사 전에 칠판에 적혀 있던 단어들.

다른 사람들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우리들만의 서사.

우리 학급만의 오솔길 단어들….


17. 오솔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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