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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당호수 나동선 Sep 30. 2021

동구 밖 손짓이 사무칩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는다. 옛 고향 마을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돌아간다. 어린 시절의 고향은 나의 안식처다.  나를 아늑히 안아주는 포근한 요람이다.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은 벌써 동구 밖 마을 어귀에 서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코 흘리게 적이다.  마을 어귀에 서서 가오리연 날리던 추억이 너무 생생하다. 손발은 꽁꽁 얼어 얼음장인데 추운 줄도 모르고 더 높이 오르라고 실 타리 잡아 첸다. 기세 좋게 하늘 높이 올라갔던 연은 실 끊어지자 힘없이 허공을 가르며 저만치 달아난다. 나는 순간 허리춤을 질끈 동여 멘다. 서릿발 녹은 오후 보리논은 한 발 떼기도 쉽지 않게 질펀거린다.  


        그래도 한 달음으로 가로질러  멀리 떨어진 연 잡아오기를  얼마나 많이 하였던가. 발은 얼음이 들어 퉁퉁 부어 올랐고,  어무니가 그만하고 빨리 들어오라고  고함치시는데도 막무가내다.  연이 더 높이 오를수록 신나고 재미있는데 어쩌랴.  추위에 벌벌 떨었던 헐렁한 옷에도, 푸르슴히 냄새나는 무 섞인 밥에도, 우리 집이 가난해서 그렇다는 사실조차도 나는 몰랐다. 그런 것은 좀 더 성장해서야 알았다. 꿈속처럼 나에겐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마을 앞에  수 없이 펼쳐지는 논두렁, 드 넓은 평야, 야트막한 앞산, 마을 뒤로 내달리는 철로길 그리고 갈대가 무성했던 시냇가. 나는 그렇게 내 눈에 들어오는 산과 논밭까지가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가장 천진무구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이 순간이 지금 또다시 천국이다.


        "형님! 다음 주 수요일 뭔 일 있으세요?  그날 서울  형님 집에 쌀 가지고 가려고 하는데 다른 약속은 없으세요?"  고향에 살고 있는 동생이 전화를 했다. 항상 들어도 전화 넘어 목소리는 정갑고 구수하다. 말 마디마다 형에 대한 정이 가득하다. 동생은 고향에서 도시생활도 하지만 시골에 가서 농사도 짓는다. 얼마나 부지런한지 반농 반도시 생활이 그렇게 즐겁단다. 힘이 장사여서 이십 대 후반에는 동네 추석행사 때 벼 500근을 지게로 지고 가장 멀리 걸어가서 1등을 했단다. 나하고 나이 차이는 열 살이다. 동생과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향수에 빠져든다. 나이 차가 많기도 했지만 언제나 집안일에는 동의하고 잘 호응해줘서 고맙고 감사하다. 


        동생이 우리 집에 도착한 날 풀어놓은 짐은 그 가짓수를 다 세기도 어럽다. 쌀, 고추, 생강, 파, 대추, 도라지...... 미나리 등 다 세보니 열 가지도 넘는다.  거기다가 토끼도 한 마리 요리할 수 있게 손질해서 가져왔다. 나는 시골 어무니께서 요리해주시던 토끼탕이나 퀑탕을  즐겨 먹었다. 어무니는 특색 있는 요리를 정말 맛있게 잘하셨다. 동생은 이를 기억하고 요리에 필요한 양념까지 마음먹고 챙겨 왔다. 그러면서 아침에 시골집에 들러 말린 토란대를 가져와야 하는데 못 가져왔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토끼탕에는 말린 토란대가 제격이라면서. 마치 어무니가 살아생전에 집에 오셨던 것 같다. 어무니도 서울 우리 집에 오실 때면 항상 바라바리 싸오셨다. 거실은  온통 농산물로 가득하고 풍요롭다. 오메 ! 동생, 우리 집 풍년 들었네. 집안이 꽉 차 버렸네! 


        동생은 금년에 농사지어 바로 도정한 20Kg들이 쌀을 10포대나 가져왔다. 동생은 이렇게 농사지은 쌀을 매년 보내주었다. 이 쌀은 우리 두 식구 말고도 다섯 가족에게 자랑하며 나눠 먹는다. 처갓집, 두 아들, 두 사돈 댁 등. 나는 해마다 쌀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두루 받는다.  동생한테도 또 그 인사를 전하면서...... 동생! 쌀 보내준 것 우리 사돈댁에도  나눠 주었네. 해년마다 동생한테 감사다고 인사 전하데!  동생 고마워!  동생 즐거움 두배에 내 기쁨은 다섯 배가 넘는다. 쌀 풍년 인사 풍년에 마음은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풍요롭고 넉넉하다.


        집에서 준비한 요리 등과 토끼탕을 곁들여 막걸리를 마셨다.  가슴은 더 넓어지고 몸과 마음은 시골 마당 평상에 앉은 듯 즐겁고 행복하다. 시골농사며 옛날 얘기로 이 밤이 너무 짧다. 어무니는 어려운 집안 살림에 언제나 몸이 둘이라도 부족하게 죽도록 일만 하시었다. 고생만 하신 일이 너무 가슴 아프다. 일찍 철든 동생은 어무니 도와 집안일 하느라 수많은 고생을 했었다. 그런데도 동생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어릴 적 일들을 즐거운 추억으로 얘기한다. 어찌나 구수하고 진한 사투리를 이어가는지 며칠 저녁 얘기로도 짧을 듯하다. 가끔 내가 시골 내려갔을 때 어무니나 할무니는 서로 내  손 붙잡고 놓으실 줄을 모른다.  얼굴 비비며 얼마나 반겨주셨던지 동생과 얘기하던 중 나도 모르게 가슴은 찡하고 눈물이 핑 돈다.


        시골집에서 많아야 이틀 정도 머물고 서울로 출발하는 날이면 어무니는 이것저것 챙기주실려고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할무니는 내가 또 떠날 듯하니 불안하고 섭섭한 마음에 내 곁에 꼭 붙어 다니신다. 우리 동네 앞은 아주 멀리 까지 논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논들을 다 지나 앞 마을 뒷동산 같은 조그만 산너머에 학교가 있고 버스가 선다. 집을 나서 한참을 걷고 난 후  뒤 돌아보면 아직도 어무니와 할무니는 동구  밖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손을 흔들며 이제 그만 들어가시라고 손짓을 해도 두 분 다 손을 들어 어서 가라 손짓하신다. 산 너머로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두 분은 그렇게 동네 어귀에 서 계셨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믿어 주시고 마음으로 의지하셨을까. 생각할수록 그분에 넘치는 사랑과 희생에 가슴 벅차고  눈물이 난다.  동생과 함께하고 있는 밤 깊은 이 저녁. 앞산 넘어가며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 앞 동구 밖에서 손을 흔들어 주셨던 어무니와 할무니의 모습이 동생 위에 크게 오보 랩 된다. 사랑하는 어무니 할무니 너무 보고 싶습니다. 뵐 수만 있다면 동생과 함께 한 걸음에 달려가 힘껏 안아드리고 얼굴을 비비고 싶습니다. 이 밤 동생과 함께 목놓아 불러봅니다. 어무니, 할무니 !!! 


        동생 다녀가고 며칠이 지나도 그 여운은 귓전에서 맴돈다. 동생! 고맙고 감사하네.  마음 한 구석이 계속해서 허전하다. 꿈을 꾼 이 밤은 동터오는 새벽이 멈췄으면 좋겠다. 어릴 적 내 고향. 내 영원한 안식처. 나를 아늑히 안아주는 포근한 요람! 가슴 져 민 동구 밖 손짓이 너무나 사무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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