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돌이켜 보니 내 젊은 청춘을 다 보냈던 직장 시절도 한순간이었다. 사원으로 입사해서 임원이 되고, 그 임기를 마치고 퇴직한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넘었다. 입사해서 퇴직할 때까지의 일들이 영사기에 비치는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리에 그려진다.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 보람찼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남자들끼리 군대생활 얘기를 하다 보면 하루 밤도 모자란다. 퇴직한 직장동료와 산행이라도 할라치면 직장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마르지 않는 샘물같이 끝이 없다. 십 수년 지난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보고 듣지 못했던 부분도 이제 선명하게 보인다. 당시에는 산 밑에서 나무만 보았을 뿐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 멀리서 바라보니 그 일의 전후 사정이 다 보인다. 마치 산 정상에서 사방을 한눈에 조망하는 것 같다.
이 후배와 같이서 한 달에 한 번 주변 산행을 다닌 것도 이제 수 십 회다. 이 후배도 퇴직한 지 벌써 몇 연차다. 주변 검단산, 남한산성, 예봉산 등을 가거나 한강 주변을 걷는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새롭고 즐겁다.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저 부담 없이 듣는다.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데도 호응도가 시원찮으면 그저 적당히 중단하면 그만이다. 서로 이심전심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는 요즘이지만 헤어질 때는 다음 달 만날 날자를 미리 정한다. 날자를 약속하고 나면 그날이 기다려진다. 생활 일과에서 우선순위가 되었다. 부득이한 약속이 아니면 그날을 피하고 잡는다.
지난 11월 검단산을 오르면서 후배는 새로운 질문을 내게 했다. 지난 회사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일이냐고. 그렇지 않아도 나는 그런 일들을 늘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내 경험상 세 가지 일들이 가장 행복하고 보람찼다고 답했다.
첫 번 째는 내가 승진했을 때였다. 처음 입사하고 승진시험 합격 후 대리 승진할 때의 설렘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퇴근시간 무렵이었다. 인사부에서 연락이 와서 내일 10시에 사장님 방에서 사령장을 준다고 했다. 다음 날 옷매무새를 더 단정히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10시에 긴장된 마음으로 입사 후 처음으로 사장님 방에 들어갔다. 긴장하면서도 행복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그런 기회를 가질 때마다 새롭게 흥분되고 가슴 벅찼던 순간들은 회상할수록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두 번 째는 내가 제안한 의견이 채택되어 회사 전체로 시행될 때였다. 같은 일을 하면서 개선안을 내고 위·아래 분들을 설득해서 이를 기안으로 작성한다. 부장의 결재를 받고 이사, 부사장, 감사, 사장의 결재를 얻어야 한다. 이 안건이 이사회를 통과해서 규정화된 후 전 부점이 이를 시행하게 되었을 때의 그 보람이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으랴. 연말 종무식 때의 사장 표창은 따놓은 당상이었고 주변 분들의 축하는 그 덤이었다. 특히 이천 년대를 전후하여 IMF 시절에는 어려운 일들로 회사는 난재들이 산적해 있었다. 새로운 안을 제안하고 시행했던 일들을 회상해보면 그때의 보람찬 시절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그때 같은 부점에서 일했던 동료들이 연말마다 한자리에 모여 그 일들을 추억할 때면 이야기는 끝이 없고 즐겁다.
세 번 째는 나보다 더 월등히 우수한 후배를 발견했을 때였다. 같은 부서에서 위아래로 엮여서 일하다 보면 우수한 후배를 금방 알게 된다. 어떤 어려운 사안에 부딪쳤을 때 직원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목전이다. 그 일이 피할 수도 없고 해야만 하는 과제라면 더욱 그렇다. 토론하다 보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안을 제시하는 직원이 있다.
반면에 아무런 대안도 없이 ‘어찌하오리까’하며 바라만 보고 있거나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는 직원도 꼭 있다. 토론에서 적극적인 찬반의 의견은 반드시 필요하다. 치열하게 의견 제시하고 논쟁해야 한다. 반대의견에는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모두가 참여해서 실행할 수 있는 안을 도출해야 한다. 격론하고 고민하다 보면 선임자인 나보다 훨씬 더 월등한 대안을 제시하고 적극적인 직원도 있다. 직접 업무 담당자가 아니라면 업무분장을 다시 해서 그 일을 맡게 한다. 난재를 해결하고 났을 때의 기쁨과 새로운 인재를 발굴했다는 그 즐거움은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일이다.
적극적으로 난제를 해결한 직원은 상사로서 인사고과 평가 시 1등으로 보상해 준다. 그리고 인사철이 되었을 때에는 이사들을 찾아가 승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해준다. 십 수년을 지나고 보니 세상 사는 데는 적극적인 사람도 소극적인 사람도 고루고루 다 필요하다는 세상 이치를 알게 된다. 모두 다 소극적으로 똑같다면 난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인사철에 친소관계에 의해서 승진한다면 누가 승복할 것인가? 그런 일은 없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쉽게 승복하지 않는 게 세상사 아닌가? 결과로 말하는데 누가 토를 달 것인가?
이런 경험담은 오직 내 주관적인 관점에서 체험하고 느낀 일들일뿐이다. 같은 직장이지만 각자가 체험한 업무 성격이나 시기도 다를 수 있다. 동일한 사안이라도 어떻게 어느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한 사물을 관찰할 때 어느 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호랑이도 되고 늑대도 되고 고양이도 되기 때문이다.
질문한 이 후배의 입장에서도 다른 시각에서 얼마든지 얘길 할 수 있다. 동일 시절 같이 근무했던 훌륭한 선후배들은 수 없이 많다. 나보다 몇 십배는 더 우수하고 실적이 뚜렷한 그분들의 업적에 비하면 내 경험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이런 얘기 자체만으로도 그분들께 누가 될까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