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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이 진심일 때 생기는 일

- 물고기 떼 헤엄쳐 노는 맑은 바닷물을 닮은 김녕해수욕장 사람들

by 해야블라썸 Oct 02. 2022

✔3일차 코스 : 삼양해수욕장(출발) ~ 함덕해수욕장 ~ 김녕해수욕장(도착)

✔4일차 코스 : 만장굴


당신은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친절을 베풀고 있나요?


여행 2일 차 때, 저녁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방 구하는 데 조금 고생을 한 지라, 3일 차에는 조금 일찍 출발해서 너무 늦지 않게 마을에 도착하기로 우리 약속을 했다.


(왼, 중) 싸이월드에 기록되어 있는 2005년의 함덕 해수욕장 모습, (오) 최근 모습(출처: 순수시대 블로그)

이 날은 제주시를 벗어난 동쪽 첫 해수욕장인 함덕 해수욕장을 지나 김녕 해수욕장까지 가게 되었다. 몇 년 전에 함덕 해수욕장을 들렀을 때만 해도 이제는 유명한 카페가 자리 잡고서 상당히 번화한 해수욕장의 모습이었지만, 2005년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과도 같았고 아직은 낮 시간이라 거기 해수욕장에 정착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다음 해수욕장(김녕 해수욕장)에서 숙소를 정하기로 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다음 길은 조금 고행이었다. 제주시를 벗어날수록 배추밭과 같은 밭두렁이 펼쳐지고 한적해져서 마을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걸으면 걸을수록 마을이 보일 것 같지가 않았다. 여행 3일 차로, 평소 체력이 단련이 안 됐던 우리는 이내 곧 지치기 시작했지만, 마을이 없으니 걸을 수밖에 없었다. 길을 따라 길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도를 닦는 기분으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부여잡고 혹여나 고된 몸 때문에 정신을 놓고서 상대에게 실수가 될 말을 내뱉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 말도 아껴가면서 길을 걸었다.


그렇게 땅바닥의 풀만 쳐다보며 걷고 있자니, 갑자기 봉고차 한대가 멈춰 섰다. 이럴 때마다 사실 우리 조금씩 놀라기는 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나쁜 사람도 많고, 특히, 여자 둘 뿐인 이 거리에서 누군가 우리를 잡아간다고 해서 소리쳐도 들어줄 이 하나 없는 곳이었기에 은근 긴장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봉고차에서 내린 사람은 건장한 남자가 아니고,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뒤따라 운전석에 있던 아버지쯤 될 듯해 보이는 아저씨가 차에서 따라 내렸다. 아이가 멀미를 하는 것인지, 소화불량으로 속이 안 좋은 것인 지 구토를 했다. 모른 척 그냥 지나쳐도 될 일이었지만, 내 어깨에 매여있는 조그만 가방 속에는 잘 체하던 자신을 위해 상비약으로 준비된 소화제가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 모른 척을 하지 못한다.


결국, 아이가 어디 아프냐고 아저씨에게 말을 건넨다. 먹은 게 체한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다. 여기서 병원으로 가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는 데, 아이가 자꾸 구토를 해서 걱정스러워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안쓰러워져서, 내가 가진 소화제를 조심스레 내민다. 도보 여행자에게 물은 금붙이 장신구처럼 소중한 소유물이었지만 아이가 진심 걱정된지라 조금밖에 남지 않은 물도 함께 내민다. 아이는 몹시 힘들었는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약을 삼켰다. 그렇게 우연찮은 만남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이 작은 친절 하나로 우리가 돌려받게 될 친절은 얼마나 큰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아이가 약 한 알을 꿀꺽 삼키자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아저씨와 아이는 다시 차를 타고 부웅 먼지만 남긴 채 멀어져 갔다. 그러다 100미터도 못 가서 이내 곧 멈추더니, 차를 조금 후진하여 우리에게 다시 다가온다. 아이가 약이라도 먹었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으니 외진 곳에서 걷고 있던 우리가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특히, 우리는 이곳 지리에 익숙지 않기에 얼마큼 더 가야 마을이 나올지 도저히 감잡지 못한 채 그냥 걷고만 있었으니 말이다.


아저씨는 여기서 우리의 목적지까지는 한참이라며, 도보여행 중이라도 괜찮다면 태워주시겠다고 호의를 비춘다. 마침, 우리가 갈려는 김녕해수욕장에는 지인도 있다고 하신다. 제주 도보여행 중에는 이렇게 우리를 태워주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제주시나 서귀포시를 벗어나면 여느 시골마을과 다름없기에 버스 정류장도 잘 없고, 버스 노선도 그리 많지 않고, 배차 시간도 길기 때문에 하염없이 걷고 있는 우리가 걱정되는 마음이셨으리라. 이렇게 차를 태워주겠다 하신 친절이 이 분이 처음은 아니고 그 전날에도 있었지만, 그 전날에는 거절한 것을 이 날은 흔쾌히 승낙한다. 이 분의 설명을 듣고 보니 또 늦은 시간에 마을에 도착하게 될 것 같아 두 여자는 불안했기 때문이다.  


가는 방향이 달랐지만,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것이 임무이신 듯 열심히 목적지까지 달리셨다. 다행히도, 우리의 방향으로 가는 동안 아이는 점점 회복했다. 그러니, 아저씨는 더욱 고마워하시며,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가 마치 조카라도 되는 양 지인에게 그들을 맡기시며 짧은 사연과 함께 우리간곡부탁한다.


지인 되는 분은 김녕해수욕장에서 횟집을 하고 계셨고, 단순히 횟집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어부들과 고기도 잡으시고, 마을 이장이라도 되시는 듯 마을 사람들 모두와 연결되어 있었다. 작은 친절 하나로 마음이 닿으니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길이 열렸다. 우리가 베푼 친절보다 더 커진 아저씨의 친절 덕에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도착한 목적지에서, 소개해 준 지인을 통해 방도 쉽게 구했고, 맘에 쏙 드는 식당도 찾게 되었다.


맘에 쏙 드는 식당은, 바로 이 지인분이 직접 운영하시는 횟집이었다. 친구분의 부탁으로 우리에게 상당히 서비스가 좋으셨다. 요즘 세상에 무전여행(도보 여행하는 두 여자를 그렇게 칭하셨다.)하는 젊은이들은 드물다며, 베풀어 주시는 친절이 점점 커졌다. 식사 끼니때마다 한치회며 이름 모를 물고기의 여타 회도 서비스로 썰뚝썰뚝 썰어주셨다.


마침,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어서 일요일은 고단한 몸을 쉬게 하기로 우리가 규칙을 정했던 터라 이틀 밤을 이 동네에서 머물렀다. 여기 올 적에 장을 보지 못했던 우리는 이 횟집에서 매 끼니를 해결했었다. 여행이 끝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은 내 친구도 나도 이 횟집의 물회가 제주도에서 가장 맛있었다는 것이었다. (주인장님의 특제 소스에 직접 잡은 한치로 즉석에서 회 떠서 만들어 주시니 이렇게 신선한 바닷 맛을 누가 알쏘냐?) 얼마나 맛있었으면 "대성 (세기 알) 횟집"이라고 싸이월드에 떡하니 기록도 해놓았다.


내가 베푼 것은 고작 눈송이만한 작은 소화제 한 알이었는 데, 우리가 돌려받은 친절은 우리의 키보다 더 큰 눈사람이 되어서 여기서 그들이 가고 싶은 곳, 그들이 하고 싶은 모든 길과 온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일요일(4일차)이 되어서 내가 교회를 갈려고 하니 교회도 소개해주셨고, 인근의 만장굴을 구경 가겠다고 하니 택시도 불러주셨고, 미터기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권역별로 요금을 매기던 택시에 가격 흥정도 해 주셨다.


이른 새벽, 물고기 화롯불 구이

월요일 아침(5일차)이 되어서는 아침에 동네(?) 어부들과 잡아온 물고기들을 즉석에서 구워 주시기도 하셨다. 아침에 갓 잡아온 신선한 물고기를 화롯불에 구워 먹은 이 음식은 제주도든 다른 해안가 지역이든 어디에도 팔지 않는 유일무이한 메뉴. 신선한 물고기여서인지 비린내도 나지 않던 담백한 흰 살 생선의 맛. 우리가 직접 물고기를 잡지 않는 한 흉내 낼 수 없는, 인생 단 한 번밖에 맛볼 수 없는 귀한 바다 맛이었다.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화롯불에 굽히는 동안, 육지로 시집보낸 딸 이야기며, 친척들 이야기로 연기 속 화로 앞으로 자연스레 우리를 끌어당겨주시던 어부 아저씨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내 구운 물고기를 자꾸만 우리 그릇에 담아주셨다. 우리에게 물고기를 많이 먹여 주시고 싶으신 듯 그들의 이야기는 쉬이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먹어본 화롯불 물고기 구이와 한치 물회는 여태껏 내가 제주도 여행하면서 먹어본 음식 중에 단연 으뜸임은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맛보고 싶지만, 이제는 맛볼 수 없는 것이기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된 걸까? (이후 1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그 횟집을 찾았을 때는 가게 위치도 가게 규모도 너무 다르게 변해있어서 용감하게 들어가 사장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그때 싸이월드 이 사진만 보여드릴 수 있었어도, 다시 한번 인사해볼 용기가 생겼을까?)


왼:김녕 해수욕장의 바닷물,                  오: 김녕해수욕장의 해질녁 노을

바다임에도 민물인 듯 수많은 물고기 떼가 헤엄쳐 노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는 바다. 이 바다를 매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니 투명하게 이쁜 이 바다를 닮아 있었을까? 처음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 마을을 떠나갈 때까지 여행자에게 자비를 베풀던 곳. 친절에 진심을 담을 때, 무엇을 하든 다 품어주는 한없는 자비로 이어졌다. 그것으로 여행이 더 맛깔스러워졌다.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이들에게서 이렇게 큰 친절을 받았었는 데... 오늘 아침, 나에게 종종 캡슐 커피를 쏙쏙 얻어가면서 커피 한잔 사주는 일 없는 동료를 보며 얄밉게 생각했던 불편한 마음이 떠올라 반성이 된다. 2년 정도 같은 곳에서 일한 동료이면, 그 정도 친절은 베풀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 캡슐 하나의 친절에도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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