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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닮은꼴 사기(?) 사건

- 여자2의 첫경험

by 해야블라썸

1일차 : 제주국제공항 - 용두암 - 용두암 해수랜드 찜질방


이 도보여행은 올레코스가 생기기 훨씬 이전으로 제주공항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해안가를 따라 걷는 방식이었다.


제주 여행 1일차.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시계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발길 닿는 곳이 바로 용두암이다.

2005년 여름, 캐논 디카, 싸이월드에 간직된 사진들


옆에서 바라보는 바위 모습이 용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은 용두암은 용이 주는 상징성 때문인지 중국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제주 관광지이다. 17년 전이라 400백만(?) 화소 디카로 찍은 싸이월드 사진첩에 있던 사진을 꺼내놓으려니, 오래된 필름 사진처럼 바래 보인다.


여자2(나)는 인생 처음 연예인처럼 관심받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정말 평범하게 생긴 내가 용두암에서 이쁘게 사진 찍어 보겠다고 포즈를 취하고 있으니, 중국 단체 관광객 중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뭐라 뭐라 중국말로 떠들었는 데, 나는 당연히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다만, 카메라를 가리키고, 나를 가리키고, 그 사람을 가리키는 걸로 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외국 관광객한테는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모범적인 생각으로 나는 흔쾌히 승낙한다.


사진을 찍어 주기 위해 카메라를 건네받으려고 하니 의사소통이 잘못된 것인지 중국인이 다시 뭐라 뭐라 한다. 그러더니, 한 명이 내 옆에 바짝 붙어서고, 그였는 지 그녀였는 지 성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람의 동료가 사진을 찍어준다. 뭐지? 나는 분위기 파악은 안 되지만, 사진을 찍고 나니 나를 가리키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주는게 마냥 기분 좋아 빙그레 미소만 지으며 남일인듯 웃고만 서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진 찍어주었던 그 사람이 동료랑 자리 바꿔서 나는 또다시 한번 사진을 찍게 된다. 그러고 있자니, 이제는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 뒤에 중국인들이 한 명씩 줄을 서기 시작한다. 가끔 영어를 할 줄 아는 중국인은 나에게 "Beautiful~"이라면서,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한다. 그 칭찬이 싫지 않아서 의도치 않게 일면식도 없던 그 단체의 각 개인들과 사진을 다 찍고만 나란 사람이란.... 결국, 그 줄은 단체 관광객들이 나와 사진을 한 번씩 다 찍고 나서야 끝이 난다.


내가 연예인 누구라도 닮은 건가? 아니면, 내가 입은 옷이나 화장이 중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 아님, 진짜 이들 눈에 내가 이뻐 보이나? 것도 아니면, 한 명이 하면 다 따라 해 보는 게 중국 단체 관광객들의 특성?

그 이 후로 어떤 여행에서도 나이런 연예인 대접(?)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평소 한국의 일상에서 이뻐서 인기 많았던 내 친구 여자1을 두고 여자2인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한 중국인들이 나를 놀린 건지, 진심이었는지 그 마음을 알 길이 없어, 나는 혼란스럽다. 그저, 삼신할매는 주소를 잘못 찍어 나를 세상에 내보낸 게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아마, 나의 짝은 중국에 있을지도?(중국을 단 한번도 가 본적 없는 나의 미혼인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만... )


이 경험이 뭐라고, 나는 여행첫날부터 상상치 못한 경험으로 여행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비록, 당장 중국 갈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서른 둘의 나는 그 후 신혼 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자신의 얼굴은 동남아시아(?)에서 잘 통하는 얼굴이라는 것을...후훗~


나는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리즈시절을 바디 프로필이라는 외모 사진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싸이월드라는 작은 창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기록하는 마음 프로필(?)을 찍어 둔 것에 안도한다.



누구에게나 외모적으로 인생 절정에 달하는 시절도 있고, 자신의 인생에서 특별히 의미 있을 만한 중요한 경험을 겪는 시절도 있을 것이다. 인생의 특별히 의미 있을 만한 경험을 하는 시절. 그 시절이 마음의 리즈시절이 아닐까? 외모뿐만 아니라, 그 시절, 그때 했던 경험을 따라 자신의 마음마저도 소중하게 기록할 수 있다면 분명 어제의 나보다는 1mm라도 더 자란, 더 성숙한 나로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분명 브런치는 가치 있다.


제주 여행 2일 차 사라봉을 넘으며...

비단, 지나간 기억뿐만 아니라, 오늘이 바로 내 마음의 리즈시절임을 잊지 않고 기록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조금 더 성숙된 내가 만들어지는 노력을 하루하루 평생 게을리하지 않기를. 그런 경험들과 그런 경험을 통해 갖게 된 내 생각과 가치들이 모여서 내 얼굴이 되기를...


스무 살의 얼굴은 자연이 준 것이다.
서른 살의 얼굴은 당신의 생활로 새겨진다.
쉰 살의 얼굴에는 당신의 가치가 나타난다. -코코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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