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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래사장에서는 모래찜질을...

- 지금의 내 생각과 내 감정, 내 행동에 충실한 사람

by 해야블라썸 Sep 28. 2022

✔2일차: 해수랜드 ~ 탑동 ~ 사라봉 ~ 삼양 해수욕장


제주 올레길의 코스 번호는 어떻게 붙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두 여자의 출발점과 올레코스 시작점이 다르다. 우리는 제주 공항에서 시작해서 가급적 해안산책로를 통과하여 해수욕장 단위로 걷는 것이 하루 목표였다. 해수욕장 근처에는 민박이든 펜션이든 쉴 만한 숙소와 편의시설이 있을 테니까...


오래전이긴 해도 관광 명소답게 제주도의 해안 산책로들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륜이든 사륜이든 바퀴가 달린 것으로는 갈 수 없는, 오롯이 도보로만 닿을 수 있던 장소의 풍경들. 육지에서는 잘 볼 수 없던 제주만의 나무들이 우거진 숲. 숲을 따라 바다 옆 잘 닦여진 산책길에서 바라볼 수 있던 섬과 바다 풍경. 때로는 길도 없이 바로 바다와 맞닿아 있던 해변가 풍경. 태평양과 맞닿아 있어 거세지만 속 시원하게 부서지던 바닷가 파도소리. 원하기만 하면 바지를 걷고 신발을 벗고 바로 바다로 들어갈 수 있었던 즐거움. 이 모든 것은 도보여행의 매력이었다. 사면이 산으로 뒤덮인 도시에 살던 나는 바다 보는 것이 마냥 좋기만 했기에 여러 이유로 해안 산책로를 선택해서 걷는 것은 고행이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지금에서야 올레코스 지도를 보자니, 우리가 걸었던 길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때론 해안가보다는 조금 더 육지 쪽으로 형성된 올레코스도 있어서, 우리는 올레코스가 될 수 없었던 고생길을 걷기도 했었구나 싶다. 무작정 바다로 난 길만 보고 걷다가 끊어진 길 앞에 길을 만들어가며 걷다가 때로는 길이 아닌 풀밭에서 현지인과 마주쳐서 여길 어찌 걸어 들어왔는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그래서 고생했구나 싶지만, 그래도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나만 본 듯,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나만 가본 듯, 남들이 담지 못한 풍경을 나만 담은 듯 왠지 뿌듯함이 맘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기도 한다.


공항에 도착한 후 용두암을 관광한 후 첫날밤은 인근 숙소에서 몸을 풀었다. 계속 머무르는 장소가 달라지고 두 여자가 하루에 얼만큼 걸어갈 수 있을지 단정 지을 수는 없어서 미리 예약해 둔 방은 없었기에 그날그날 방을 구해야 했다. 


앞으로 시작될 여행이 고단할 거라 예측되는 바, 방학하자마자 짐 싸서 달려온 고단한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앞으로의 여행 동안 서로를 위해서 필요한 이런저런 규칙을 정할 시간도 필요했다. 말 안 해도 통하는 친구와의 여행이었지만 도착 첫날은 무리해서 걷기보다는 우리만의 규칙을 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항상, 힘든 여행은 친한 누군가가 해주는 자동차 도로연수처럼 부부 사이라도 감정 상하여 싸움으로 치닫는 경우가 기 때문에 시작부터 감정 조절을 위해 규칙을 정해놓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규칙은

1. 둘 중 하나가 지쳐 보이면 무조건 쉬기

2. 일요일은 무리하지 않기 (나 크리스천이라 교회를 갈 시간도 필요했고, 여행 중 밀린 빨래할 시간도 필요했다.)

3. 가보고 싶은 장소는 둘이 합의된 경우에만 가보기

4. 점심은 최고로 잘 챙겨 먹기(아침, 저녁은 장 봐서 가급적 직접 챙겨 먹기)


2일 차는 용두암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나오는 첫 번째 해수욕장, 삼양해수욕장까지였다. 두 여자가 걸을 수 있는 한계치가 어디까지인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2일 차는 일단 걸어보는 게 목표여서 무난한 일정을 소화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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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사라봉을 지나며,   (중) 제주시 탑동 광장,   (우) 삼양해수욕장 검은 모래

사실, 이 당시만 해도 산을 잘 타지도 못했는 데, 초록 숲 황톳빛 작은 흙길 따라 사라봉 봉우리 능선을 넘을 때 사진 속 표정이 밝은 것을 보면, 아직은 여행의 고단함보다는 여행 시작의 설렘이 더 컸던 때였다. 시계가 가리키듯, 삼양해수욕장에 좀 늦게 도착을 했고, 제주시에 위치해서인지 민박 가격이 비싸서 선뜻 숙소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바람에 제주도에서도 독특한 해수욕장인 검은 모래사장을 즐길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지나고 나서야 말이지만, 제주도는 관광도시답게 어떤 민박이라도 콘도나 펜션처럼 기본 밥 해 먹을 수 있는 주방 구조를 포함해서 샤워시설 등이 참 잘 구비되어 있었다. 요즘처럼, 아이들이 있는 경우라면 편의성뿐만 아니라  각종 편의시설과 분위기를 찾아 호텔이나 리조트, 펜션을 찾겠지만, 저 시절의 여행은 장기가 될 참이어서 숙박료는 최대한 줄이기로 친구와 합의가 되어 있었고, 사실 모든 민박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지친 두 여행자를 재우고 먹이기엔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지금도 멋진 숙소가 아닌 제주 곳곳의 다른 볼거리, 즐길 거리에 집중하는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민박을 추천하는 바이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여행할 곳이 제주도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저 당시에도 국내 여행지로는 제주도가 당연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여름이면, 제주도가 아주 붐벼서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숙소를 구하는 일이 매우 불안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마침 저 당시에는 항공사가 파업을 했다. 항공사와 제주시 입장에서는 손실이 엄청났겠지만 여행자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노선이 많이 줄어드는 바람에 성수기임에도 제주도 모든 숙소가 여유로왔던 기억이 있다. 성수기에 무계획으로 시작한 여행이 무난히 감사하게 끝낼 수 있었던 것도 항공사 파업이 한몫(?)을 했다.


삼양 해수욕장 [출처: 네이버 이미지]삼양 해수욕장 [출처: 네이버 이미지]

지나고 나서 늘 아쉬운 것들은 그때 했어야 되는 데 하지 못한 일들, 하지 못한 말들이다. 지나친 인연을 생각해 봐도, 지나친 상처를 생각해 봐도, 그때 그 장소에 충실하게 그 말을 했더라면 그 일을 했더라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지는 않았을까? 아니, 조금은 덜 상처받지 않았을까? 조금은 덜 후회되고 조금은 덜 미련남지 않았을까?


삼양해수욕장에서 모래찜질을 못한 일은 조금 미련이 남는 일이다. 삼양해수욕장의 검은 모래는 철분이 함유되어, 이곳에서 모래찜질을 하면 신경통, 관절염, 비만증, 피부염, 감기 예방, 무좀 등에 효과 있다고 하는 데,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하는 바람에 모래찜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다음 날도 다음 일정으로 출발을 서둘렀기에 찜질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제주도를 갔음에도 아직도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나이 먹으면 내 몸이 아파서라도 찾아가게 되는 날이 있지 않을까? 늘 미래를 염두해 두고 한 행동에는 내게 그 시간이 오지 않음을 모르는 어리석음이 함께 수반된다. 미래를 생각하기 전에 지금, 이 장소에 충실한 사람이 되기를, 지금 이 장소의 내 생각과 내 감정, 내 행동에 충실한 사람이 되기를 검은 모래사장 찜질을 놓치고서야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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