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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의 끝을 잡고 ~

-제주 둘레 완주를 마치며

by 해야블라썸 Dec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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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차:협재 해수욕장 ~ 애월 한담공원 ~ 용두암 해수랜드


협재 해수욕장 바다와 한바탕 잘 놀았으니,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다시 걸을 준비를 한다. 우리가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를 가장 잘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가 도로변 버스 정류장에 붙여진 제주도 지도를 보는 거였다. 요즘에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당시에는 제주도 버스 정류소마다 꼭 제주도 지도가 붙어 있었다. 나처럼 도보 여행을 하거나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이들을 위함이 아니었을 까 싶을 정도로, 그 지도를 보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빨간 점으로 잘 안내해 주고 있었다.


그 빨간 점은 우리의 여행이 오늘로서 마지막이 될 것임을 예언해준다. 마지막 도보여행길. 이젠 정말 제주도에서 웬만한 해변은 다 봐서 별다른 감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길을 나섰는 데, 오모나 세상에~. 여전히 바다가 너무 이쁘다. 아~ 이 바다를 보니 다시 제주도에 처음 온 듯 마음이 설렌다. 이 모습의 바다는 제주 한 바퀴를 거의 다 돌고서 보는 바다임에도 또 처음 보는 듯한 새로운 모습니다. 대체 제주 바다는 몇 겹의 내숭을 가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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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애월 방향으로 걷다 마주한 바다 풍경, (중) 2005년 한담 해안산책로, (우) 2017년 한담 해안산책로


날마다 이렇게 다른 모습의 바다를 보여줘서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여행이 단 한순간도 지루한 적이 없었던 제주 여행. 협재에서 조금 더 걷다 보니 이제는 바닷가에 잘 차려진 소공원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애월 해변 소공원. 요즘에는 한담 해안 산책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애월이라는 지역은 가수 이효리 씨의 민박집으로 유명해졌고, 한담 산책로를 중심으로 유명 카페들이 띄엄띄엄 들어서기 시작해서 요즘에는 카페거리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17년 나의 보물들과 제주살이를 하였을 때만 해도, 그곳에는 G드래곤이 운영한다는 카페도 있었다.(지금은 타인에게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도보여행을 할 때의 한담해안 산책로는 카페는커녕 인적도 드문 한산한 곳이었다. 오로지 바다와 잘 정리된 산책로만 길게 뻗어 있어서 이렇게 이쁜 곳에 왜 다니는 사람이 없나 하고 아주 궁금한 곳이기도 했다.

우리 집 주변이면, 매일 다이어트 결심을 하게 해 줄 것만 같은 산책길. 그 이쁜 길은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10년이 넘게 지나서 재방문하게 되었다. 나 혼자가 아닌 가족이라는 이름의 동행자 셋과 함께. 그 바다 주변에는 큰 창 너머 바다를 담은 멋진 카페도 있고, 그 카페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해수욕장도 있어서, 한창 스카이 콩콩처럼 뛰어다닐 무렵의 내 보물들도 좋아라 했던 장소이다.


한담해안로를 마음에 담고 다시 걸으니, 점점 건물들이 다닥다닥 촘촘히 밀도 있게 붙어있는 마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마을 군락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제주시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해안가 언저리를 걷기에, 마을이 바다를 가리려고 아무리 애써도, 마을 어디든 그 뒤에는 바다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음이 멀든 가깝든 자연스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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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제주시로 들어가기 전의 마을 모습, 그 너머 흐릿하게 바다가 보인다. (우)도로 끝 바다


이런 지난한 마을들을 지나서 우리는 결국 용두암으로 다시 돌아왔다. 육식파인 친구는 고기를 잘 못 먹는 나 때문에 이 여행기간 동안 제주 특산물인 흑돼지를 맛보지 못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인데, 흑돼지 구경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친구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저녁에는 흑돼지 구이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흑돼지 구이 식당에서 친구가 선택한 메뉴는 결국 갈치조림이었다. 저녁으로 먹은 것은 갈치조림이었지만, 내 몸과 마음에 남은 것은 결국 친구의 배려심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우리 둘의 다른 점은 여실히 드러났다.  때론 앞서 걷기도, 때론 한 발짝 뒤쳐지기도 하면서 서로의 보폭과 속도는 완전히 달랐다. 앞서 가는 이는 흘끗흘끗 뒤돌아보며 조금씩 천천히 보폭을 줄이기도, 가끔은 쉬는 척하며 기다려주기도 하였다. 뒤처진 이는 앞서 가는 이를 따라 보폭을 늘려보기도 쉬는 시간을 줄여보기도 하면서 속도를 맞춰나갔다. 그렇게, 시작부터 둘은 달랐지만, 어느새 어깨를 나란히 하여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원점에 다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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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앞서 걷기도, 때론 뒤처지기도 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배려할 때 멀어졌던 그 간격들을 메우며, 결국엔 어깨 나란히 하며 목표지에 함께 설 수 있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목표지는 함께여서 더 힘을 내 볼 수 있었고, 함께여서 외롭지 않고 더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흘러간다. 때론, 주변인보다 내가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때론 주변인보다 내가 뒤처져 걷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보폭을 맞춰 걸어갈 때 조금은 덜 외롭고, 조금 더 행복하게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 밤의 끝자락을 잡고서 제주 둘레 완주가 주는 마음의 기쁨을 하나하나 새겨본다. 이 밤이 끝나면, 우리는 비행기에 올라 있을 것이다. 다시, 원래의 현실 속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다시, 여행 전의 삶과 이어진 길을 습관처럼 걷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은 여러 길을 걸어본 경험이 아롱져서 나와 나란히 함께 걸어가는 이들을 이해하고 더 배려하는 가운데 행복감이 더 짙어지는 발자욱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라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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