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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해안도로는 처음이라..

- 풍력 발전기와 바다의 만남이 아름다운 신창풍차해안도로

by 해야블라썸

✔21일차: 용수항 ~용수리 해안도로 ~ 신창풍차해안도로 ~ 협재해수욕장(feat.금능해수욕장, 한림공원)


요 며칠 흐린 탓이었을까? 맑은 하늘만 보아도 기분이 환해졌는데, 걷는 길마저 너무 예뻐서 칭찬과 감탄 세레모니가 쏟아지던 길이다. 모래 해변가 없이 바로 바다 옆 도로라 바다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햇볕이 내리쬐는 길에는 지나가는 개미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로는 한산했다. 수채색 파아란 하늘 아래, 짙푸른 파란 바다. 그리고 그 파란색을 돋보이게 하는 하얀 구름과 하얀 풍차. 멀리서 보니 바람개비만한 하얀 풍차가 듬성듬성 도로를 따라 여유 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개비처럼 생긴 커다란 풍차(풍력 발전기)를 본 것은 대관령 방면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였다. 대관령이니 제법 고도가 있는 높이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높은 지대에 빼곡히 박혀서 일제히 한 방향으로 돌아가던 하얀 풍차. 경계가 없는 하늘 공간에서 여유롭게 돌아가던 풍차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뭔가에서 해방된 듯 가슴 뻥 뚫리는 상쾌한 기분이었다.


산과 하늘, 그리고 풍차가 있던 풍경이 이번에는 바다와 하늘, 풍차로 바뀌었다. 바다와 하늘의 공간을 가르는 바람 따라 일정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풍차는 자칫 걷기 지루할 뻔한 해안도로를 단숨에 멋진 산책로로 바꾸어버렸다. 분명, 바다와 바로 이어지던 도로라서 산책을 위한 길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이 길은 무조건 다시 한번 더 걸어보고 싶은 길로 마음에 새겼던 곳이다.


바닷가 바로 인접해서인지, 풍력발전기 때문인지 길 반대편에는 마을이 인접해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낮은 지평선으로 더 큰 하늘, 더 넓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서 가슴이 탁 트일 수밖에 없었다.


드넓은 하늘 아래 하얀 풍차가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별다른 장난감이 없던 그 시절의 아이가 생각나기도 했다. 색종이 한가운데 점을 그리고, 그 점을 중심으로 색종이 모서리에 가윗집을 낸 뒤 점 중심으로 접어서 핀이나 압정으로 수수깡에 고정시키면 완성되던 바람개비. 색색깔의 바람개비를 만들어 볼을 최대한 불룩하게 만들어 후~욱 바람을 불어 돌리려고 볼 빨개지던 어릴 적 아이가 생각나기도, 더 힘차게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고 싶어서 바람개비를 들고 힘껏 달려보던 순전한 어릴 적 아이가 생각나기도 했다.


걷다가 이르게 된 풍차 앞. 키를 재어 본다. 멀리서 봤던 것과는 달리 풍차가 너무 커서 내 입김 하나로 돌릴 수 있는 바람개비가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 바람에 의해서 돌아가는 게 마냥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라는 것은 단순히 공기의 흐름일 뿐인 데, 색종이로 만들던 바람개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무겁디 무거운 저 풍차를 돌리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저 풍차는 돌아가는 데, 저 풍차보다 한없이 가벼운 나는 바람 따라 날리지 않는 게 또한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금에서야 검색해보니 신창풍차해안도로는 일몰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한창 낮시간대를 걸었던 탓에 일몰은 보지 못했지만, 바다보다 더 넓게 펼쳐진 하늘이 보이는 곳인 만큼 일몰을 보는 것 또한 대단히 흥분되는 일이리라 짐작이 된다.


이렇게 제주도 바다는 우릴 실망시키지 않는다. 어딜 걷든 어디 하나 같은 모습의 바다는 없다. 늘 새로운 길을 걷는 느낌을 준다. 이 바다 또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습이다. 해상풍력단지가 조성된 해안도로의 모습에 반해서 얼마큼 걸었는지 느낌이 없었던 우리는 어느새 다시 한번 더없이 아름다운 해수욕장에 도착해 있었다.


협.재.해.수.욕.장.



해녀 동상이 웃고 있다니? 여태껏 만난 동상과 다르다. 뭔가 이 바다도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팍 온다. 여태껏 걸어왔던 바다도 이뻤겠지만, 여기도 기대해봐!라는 느낌이다. 지금껏 봐왔던 바다는 짙푸른 청록색에 가까웠다면 이 바다는 조금 옅은 옥빛이다. 여태 많은 해수욕장을 지나쳐와도 발만 살짝 담그거나 눈으로 구경만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얕은 수심의 바다를 보니 용기백배해져서 인근에 얼른 숙소를 정하고. 여행 시작한 20여일간 베낭 속에서 나와보지 못했던 수영복을 꺼내 입고 해수욕장으로 나섰다.



해안도로를 따라 보이던 검은 바위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모래사장이 한없이 펼쳐져 있는 게 마냥 신기했다. 어디가 육지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경계를 허물어 자연스레 바다로 이어지던 해수욕장 옥빛 바다. 튜브를 끼고 노는 아이들 사이를 지나 바닷속으로 제법 걸어 들어가도 내 몸의 절반도 차지 않던 바다. 파도의 일렁거림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파도따라 중심을 잃고 휘청거림이 즐거움이 되던 바다. 그래서일까?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을 많이 품은 바다. 나에게도 가족이 생긴다면 여기 꼭 다시 오리라 다짐을 하게 했던 바다. 물놀이하는 아이의 물길질과 그를 붙들어주는 부모를 바라보거나, 가끔 하늘로 시선을 옮겨 시간따라 모양을 바꾸던 뭉게구름을 바라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없이 평화로웠던 바다.


햇살 아래 빛나는 윤슬이 수영복이 어색한 내 모습을 민망하지 않도록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었다. 바다도 넓지만, 하늘은 더 넓다. 수채빛 하늘색을 담은 바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우러져 더없이 평화롭다. 한참을 외롭게 걸었던 풍차 해안도로와는 결이 다르게 가족 단위의 화목과 다정함이 가득한 바다라 이 바다는 외로운 사람을 더 외롭게 하는 바다다. 하지만, 햇살 가득 품은 옥빛의 바다가 은빛으로 샤랄랄라 빛나던 바다 풍경은 과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바다다. 가족이 생기면 꼭 여름 휴양지로 놀러 오고픈 바다. 그렇게 내 마음 1순위가 된 해수욕장이었다.


젖은 수영복이 마르도록 주변 여러곳(금능해수욕장, 한림공원)을 돌아다니며,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이제 며칠 후면 원점에 도착할 것 같다. 제주의 바다를 즐길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밤은 관광객 모드로 해변을 바라보며, 여유를 부려야겠다. 수영복을 입으니 자기 전 빨래가 줄어들어 맘껏 여유 부려도 되겠다. 오늘 밤은 도보 여행자가 아닌 제주 관광객이다.




사진 보며 글을 쓰다 보니, 과거의 이야기인데, 나도 모르게 현재시제로 끝나네요. 혼자서 너무 과몰입한 듯합니다. 실제로, 저 날 밤은 어디서 저녁을 먹을지 민박집 인근 식당들을 어슬렁 거리며, 한량처럼 많이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대단한 것을 먹은 것 같지는 않은데, 사람이 많은 해변가라 그런지 저녁에도 돌아다닐만했던 것으로 몹쓸 기억력에도 그렇게 기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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