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 우울증은 병이다

by 박계령

아이가 왜 우는지 몰라 같이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나서야 나의 첫 끼니를 챙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는 회사에서 잘 나가는 것 같고, 나만 집에서 뒤처지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아이를 향해 대답 없는 얘기를 계속했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지 오래였다. 아이는 왜 새벽마다 깨는지 언제 제대로 된 잠을 잤는지 기억도 안 났다. 소리 없는 전쟁터에서 나는 패잔병이었다.


딱히 우울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파트 창 밖을 멍 하게 바라보는 일이 잦았고, 남편과 지극히 평범한 대화를 나누다 왈칵 눈물이 나서 당황한 적이 있을 뿐. 24시간 동안 나를 위한 일은 하나 없었고 아이를 중심으로 시간은 굴러갔다. 육아는 원래 이런 거라 했다. 엄마는 희생해야 당연했다. 아이를 얻은 행복과 소중함에 비하면 나의 외로움과 사회적 소속감 따위는 별 것 아니게 느껴졌다. 사람들도 다 나를 그렇게 대했다. 누구의 엄마로 불렸으며, 아이가 있어 얼마나 행복하냐 물었다. 그래. 나는 행복한 게 당연했다.


이상함을 느낀 건 아이 문화센터 수업에서였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초라했고 칙칙했다. 반면 다른 엄마들은 생동감이 넘치는 듯했고 아이를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체력과 마음의 여력이 있어 보였다.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다 비슷할 거라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달랐다. 확실히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다.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동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예약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딱히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내가 그곳에 가도 되는 걸까?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하나, 병원에 간다고 뭐가 달라질까 의구심만 앞섰다. 하지만 이제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이렇게 계속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때론 죄책감과 불안이 앞선 육아를 할 순 없었다. 나보다는 아이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초진을 예약했다.


병원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친절했으며, 전문적이었다. ‘뭐 때문에 힘드신가요?’ 같은 상투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결과는 산후 우울증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약까지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산후 우울증은 약을 먹어야 하는 병이다. 그저 노력으로 나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육아는 다 그런 거라며, 엄마는 그런 거라며 가스라이팅당하는 일이 부지기수기 때문에 산후 우울증을 병으로 인지하기까지 꽤 오래 걸린다. 하지만 호르몬 조절에 문제가 있는 명백한 질환이며 치료가 필요하다.


산후 우울증에 걸렸다고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숨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육아가 힘들어서 혹은 사회적으로 도태되었다고 생각해서 걸리는 병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원망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을 쏟았다. 내가 나약하기 때문에 산후 우울증을 겪는 것이라 생각했고, 나의 우울로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컸다. 하지만 그런다고 죄책감이 덜어지는 것도, 병세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만 괴로울 뿐, 아무도 내 아픔을 나눠주지 않았다. 결국 우울과 불안, 그리고 죄책감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약은 조금의 도움이 될 뿐이었다.


내 노력의 시작은 운동이었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첫 번째 일이었다. 운동은 체력을 기를 수 있을 뿐 아니라 내게 자신감도 함께 주었다. 그리고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리프레시되었다. 단 한 시간이었지만 나를 위한 일을 하고 나니 나머지 하루가 활기찼다.


엄마도 사람이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엄마도 존재만으로 빛이 나며, 그의 삶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니 부디 당신이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치료받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당신은 귀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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