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10, 21. 화
하이델베르크 호텔에서 조용한 아침식사를 했다. 모든 것들이 에센보다는 고급스럽고 최신이었지만 메뉴는 에센이 더 나았다. 독일에서 주식으로 먹는 빵(아래 깔린 빵 두 개)은 몹시 딱딱해서 잘못 먹으면 입천장이 다 까진다. 나도 며칠 고생했으나 먹어두면 속은 든든하다.
식사 후 바로 체크아웃을 한 후, 짐은 중앙역 코인 로커에 넣고 시내 투어에 나서려 가까운 안내소로 가 하이델베르크 웰컴 카드 1일권을 샀다(1인당 12.5유로). 이 카드도 하이델베르크 성과 케이블카를 무료로 이용 가능하고 모든 교통수단을 일정 구간 내에서 무한정 탈 수 있다. 안내하는 분이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 물어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안뇽하세요오~~"하며 한국어로 환영해 주어 우리의 기분을 돋아줬다.
중앙역에서 탄 버스 안에서 어떤 할아버지 옆에 앉게 되었는데, 그분이 영어로 말을 걸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탈리아 분으로 하이델베르크에서 무려 45년이나 사셨다고 한다. 그간 무수한 일들을 하셨다는데 그 연륜이 느껴졌다. 한국 친구들도 많다며 지나치는 곳들을 일일이 설명해 주셨다. 여행의 즐거움은 낯선 이들과의 스쳐가는 만남도 한몫한다.
버스는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승강장 바로 앞에 정차했다. 몇 달 전에 갔을 땐 버스를 본 적이 없었는데 라고 의아해하면서 아들과 케이블카를 기다렸다. 평일 오전이라 케이블카는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 둘이 전세를 낸 마냥 얼른 올라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간 후 다시 내려와 중간역인 성에서 내렸다.
괴테가 어느 유부녀에게 사랑을 고백한 장소로 유명한 엘리자베트 문이다. 그런지 이 문 아래서 키스를 나누는 젊은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13세기부터 짓기 시작해 증축을 거듭한 하이델베르크 성은 30년 전쟁을 거치며 크게 파손되고 황폐되었으나 지금은 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만 하고 있다. 낡고 허름해진 모습 그대로 보존한 것이 오히려 매력이 되어버린 거다.
신성 로마제국 선제후 16명의 조각이 화려하게 장식된 프리드리히 관 지하엔 어마어마한 크기의 술통이 보관되어 있는데, 전에 왔을 땐 미처 보질 못해서 이번에 아들과 꼭 보리라 했다. 건물로 들어서자 그 술통을 찾아보니 과연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용량이 무려 22만 리터란다.
술통 둘레로 계단을 만들어놓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벽에 사람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빼곡히 써놨는데 간간히 보이는 한글이 반갑기고 하면서 씁쓸했다. 줄을 잡아당기면 쨍그랑하고 유리잔 깨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나는 벽시계도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 시내가 훤히 내다보이는 테라스로 나갔다. 넉 달만에 다시 보는 풍광을 이번엔 아들과 조용히 바라봤다. 시어머니께서 독일에 사는 시누이 내외랑 다녀오셨다며 이 전경 사진을 보여주실 땐 나도 언제 가보나 했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시누이의 비보로 아들을 제외한 가족이 황망히 날아와 장례식을 치른 게 불과 넉 달 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