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성을 빠져나오는데 성 입구에서 한 화가 아저씨가 자신의 그림을 팔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옆으로 다가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와우! 쏘 뷰티풀~~ 기분이 좋아진 아저씨가 내게 어디서 왔느냐 물었다. 한국이라니까 "안뇽~~"하며 제법 능숙한 한국어 몇 마디를 구사했다. 그러면서 작은 그림이 원래 20유로인데 나한테는 특별히 싸게 해 준다고 했으나 나는 그저 난처한 미소로 응답해줬다. 그럼에도 유쾌하게 한국어로 작별 인사를 건네는 화가 아저씨... 유럽은 그냥 그림이 절로 그리고 싶어 지는 곳이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코른 마르크트 광장을 통과했다. 성에서 내려다보노라면 눈에 확 들어오는, 하이델베르크를 대표하는 거대한 성령 교회다. 이 교회 주변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수많은 기념품 상점들과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성령 교회가 있는 광장과 이어진 골목을 지나면 카를 테오도르 다리 입구인 브뤼케 문이 나온다. 입구 옆엔 요상하게 생긴 고양이(?) 청동상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머리를 쏙 집어넣으면 멋진 가면이 된다!!
네카어 강 위에 놓인 카를 테오도르 다리는 원래 나무로 만들었는데,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가 돌로 다시 지으라 명령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도 당당한 모습으로 다리를 지켜보고 있다. 이 다리는 건너편 '철학자의 길'과 이어진다.
점심때가 되어 케이블카 승강장 앞에서 본 한국 식당으로 갔다. 밥이랑 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 아직 여는 시간이 되지 않아 개점 시까지 기다리는데 어찌나 쌀밥 생각이 간절하던지 아주 혼났다.
12시가 되자 가게에서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SOBAN(소반)'이란 가게 이름답게 아늑하게 생긴 모던한 느낌의 식당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찌개와 밥 비주얼에 우리 모자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게다가 열심히 일한 농부에게나 준다는 흰쌀 고봉밥이 나왔다. 얼마나 정성껏 천천히 음미하며 싹싹 다 비워냈는지 모른다. 옆자리의 독일인 부부가 재미있다는 듯 우리를 흘긋흘긋 쳐다봤다.
한껏 나온 배를 뚜드리며 산책 삼아 네카어 강변을 따라 걸으려고 다시 성령 교회와 테오도르 다리 쪽으로 향했다. 마침 마르슈탈이란 건물을 지나게 되었는데, 원래 무기고였으나 현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학생회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어에 자신 있다면 여기서 비교적 싼 학식 먹을 수 있다.
시내를 도는 일반 버스가 다니고 있어 타보기로 했다. 대학가라 그런지 학생들이 한가득씩 타고 내렸다. 버스 코스가 생각보다 길었다. 구 시가지를 빠져나가 제법 거리가 있는 하이델베르크 캠퍼스 안까지 들어가 크게 한 바퀴를 돌고 오는데 거의 40분이 걸린 것 같다. 덕분에 아들과 나는 단잠을 자고 말았다.
버스에서 내려 걷다가 기사의 집이란 곳을 지났는데, 지금은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랜 전쟁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한때 임시 시청사로 사용됐다고 한다.
성령 교회에 들어섰다. 이번 여행에선 될수록 교회나 대성당에 꼭 들러 촛불을 켜고 방명록에 글도 남기려 노력했다. 역시 이곳에도 촛불(50센트)을 올리며 아들이 무사히 군생활을 마칠 수 있길 기도 드렸다. 다 큰 자식을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도밖에 없는 것 같다.
다음 여행지인 아우크스부르크로 출발하기 위해 중앙역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하이델베르크는 고인이 되신 시누이가 즐겨가던 곳이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한식당을 하고 계신 한국분과 친해져 '언니'라 부르며 향수를 달래려 종종 다니러 갔던 거다. 추모기간 동안 시누이 남편이 우리 가족을 데리고 갔었는데 그 '언니' 분이 아쉬운 마음을 담아 로열 코펜하겐 접시를 내게 한아름 안겨주시기도 했다. 그 근처에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촬영지로 유명한 바도 있었으나 관광으로 간 것이 아니었기에 맘 놓고 즐길 수도 없었다. 아들과 함께였어도 하이델베르크에서 받았던 쓸쓸한 그 첫 느낌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