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크스부르크
아들은 숙소로 들어가고, 나만 거리 투어에 나섰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했다.
오른쪽 건물 1층에 호텔 로비와 식당이 있고, 왼쪽 건물에 우리 숙소가 있다. 도착하던 날 밤, 이곳이 우리가 찾던 그 호텔인가 싶어 빗속을 헤매고 있는데, 마침 밖으로 나온 몸집이 작은 어떤 동양인 아줌마가 맞다며 어서 들어오라고 우리를 안으로 이끌었다. 워낙 호텔 로비가 작아 긴가민가했는데 그 아줌마가 나잇 타임 담당 직원인 거였다. 게다가 일본인이어서 어쩌다 마주치면 일본어라도 건네볼까 했는데, 그때 이후론 마주친 일이 없어 아쉬웠다.
숙소 건물 왼편 골목으로 트램이 다니지만 그리 시끄럽진 않았다. 비가 와선지 라디에이터에 열이 올라와 빨래가 밤새 뽀송뽀송 잘 마르기도 했다. 호텔 맞은편 큰 길가로 트램이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어 중심가로 나갈 때 자주 타고 다녔다. 이날은 여기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찾아간 성모 대성당이다. 8세기경 처음 건축되었다고 하니 이 성당도 유서가 깊다. 그런지 성당 앞 조각품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으나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져 제대로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었다.
뒤로 돌아 직진해 나가는데 앞에 페를라하 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도시의 시계탑과 망루 역할을 했던 곳으로, 매시 정각에 특수장치 인형이 움직인다고 하는데 볼 생각도 못했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 바로 눈에 띈 서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역시 서점은 언제나 좋다. 게다가 생각보다 크고 넓어서 놀랐다. 한참 책장들을 둘러보다가 아늑한 소파에 앉아 쉬는데 괜히 황송했다. 2층에 올라갔더니 세상에 화장실이 공짜였다. 우리나라에선 당연한 것들이 여기선 아니어서 작은 것에도 감동이다. 서점 카페에 앉아 커피와 프리쩰로 여유도 부렸다.
비가 좀 그치는 것 같아 서점에서 나와 거리 투어를 다시 시작했다. 넓은 시청 광장이 나왔는데, 이 도시의 시조 격인 고대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동상의 발아래엔 신화 속 여러 신들이 멋지게 황제를 보좌하고 있다고하나 아쉽게도 보수 중이었다.
길게 뻗은 큰길을 걸었다. 바로 명품 거리인 막시밀리안 거리다. 푸거 가문의 집들이 이 거리에 있는데, 지금은 고급 레스토랑이나 상점 혹은 은행으로 이용되고 있다.
막시밀리안 거리 끝에 성 울리히와 아프라 교회가 나란히 있었다. 개신교 교회인 성 울리히 교회와 가톨릭 교회인 성 아프라 교회가 합쳐진 교회로, 구교와 신교가 화합을 이룬 아우크스부르크의 상징 건물이다.
독일의 대표 음료인 슈빼찌가 새겨진 귀여운 스마트 카다. 슈빼찌는 콜라와 사이다를 섞은 듯한 맛이다.
교회 왼쪽으로 방향을 트니 작은 골목이 나왔다. 내가 가려는 곳의 이정표가 마침 이 골목을 가리키고 있었다. 잘 정돈된 집들이 다닥다닥 정답게 붙어 있어 보기 좋았다.
드디어 붉은 벽돌 문이 나타났다. 아우크스부르크 구 시가지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성벽 출입문 중 하나다.
방향을 틀어 걸어온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데 개울이 보였다. 다른 한쪽엔 아예 산책길과 나란히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작은 집들 베란다에 햇살을 조금이라도 쬐기 위해 내놓은 의자들이 보였다. 이런 아기자기함은 일본을 닮았다. 아니 탈아입구를 지향한 일본이 독일을 따라한 건가?
산책길을 따라 걸으니 비가 오는데도 큰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종종 지나갔다. 과연 어떤 날씨에도 즐기는 유럽인들이다.
목적지인 포겔 문이 나타났다. 이 또한 중세 성벽의 출입문 중 하나다.
포겔 문을 뒤로하고 또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가이드북에 소개된 레흐 지구였다. 이제껏 본 작은 개천이 바로 레흐 강이었다. 이 주변엔 예로부터 수공업자들이 모여 살았는데, 그 전통이 아직도 남아 곳곳에서 수공예품 공방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공사 중인 좁은 골목을 지나니 막시밀리안 거리와 모리츠 광장이 다시 나왔다! 재미있는 골목 투어였다.
왼쪽 건물은 성자로 추앙받은 기사 성 모리츠의 무덤을 위해 11세기 때 만든 교회인데, 지금은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고 트램과 버스를 위한 정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