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소장품
아침 일찍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서둘러 갔다. 대공원 역에서 미술관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대공원 숲 속 길을 달려갔다. 봄이나 가을엔 길이 더 예쁘겠다아~ 감탄하면서...
과천관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미술관 수업은 처음이라 무척 설렜다. 나 포함 10명도 채 안 되는 중년 여성들이 로비에 모여 학예사님의 안내에 따라 어느 작품 앞으로 이동해 접이식 간이의자에 둘러앉았다. 예전에 독일 미술관에서 부러워하며 엿보던 그 장면이 연출된 거다! 학예사님의 편안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진행되는 수업에 곧 빠져들어 갔다.
이 작품은 19세기 신고전주의 작가 '윌리엄 아돌프 부게너'의 <바쿠스의 젊음>을 3D로 모델링화하여 엑스레이처럼 해골만 남게 한 디지털 페인팅이다.
근육과 피부가 제거된 해골 이미지는 젊음 혹은 늙음, 성별과 인종, 문화에 대한 차별을 사라지게 했다. 죽음조차 축제로 받아들여지는 기이한 느낌도 받았다.
부게로는 작년 말 밀레의 <이삭 줍기 전>에서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작품 <포위>를 그린 화가였다!
간이의자에 가방을 올려놓고 몇 개의 작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전시실에 처음 들어섰을 땐 머리만 놓여 있는 이 작품을 보곤 흠칫했었는데, 막상 설명을 듣고 나니 자꾸만 들여다보게 됐다.
'80년 광주'라는 시대의 아픔을 같이 공유한 작가와 시인의 합작품이다. 이 작품의 모델은 '황지우' 시인으로, 1994년에 한신대 문창과를 처음 만드신 분이기도 하다.
어느 날
극락강 사구에서
목 없는 돌부처들,
홍수에 씻겨
올라왔지
국회 광주특위 위원들은 혹시나 하고 다녀가고
그렇지만 부처는 이렇게 없어진 채로,
늘
있네
부활도 하지 않고
죽지도 않고
— 황지우의 <화엄 광주(華嚴光州)> 중
시대의 아픔은 기나긴 시간도 그 깊은 상흔을 지우지 못한다...
1930년대 한국 표현주의 대표작가인 구본웅이 그린 친구 '이상'의 초상화다. 낯선 작품들 속에서 유일하게 알아봤던 작품이어서 반가웠었다. 원래 이상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친구 이상을 통해 구본웅 자신을 표현한 작품인 거다.
욕실 거울 앞에서 페인트칠한 자기 얼굴을 노려보거나 생선피로 피범벅이 된 식칼을 손에 든 채 골똘히 생각하다 입가로 가져간 중년의 여인... 속사정을 잘 알지 못하면 미친 거 아냐? 할 상황이다. 아직도 가부장적 문화를 가정이란 사적인 공동체 속에서 고스란히 겪고 있는 건 주부다...ㅠㅠ
일제강점기 말, 당대 최고의 조각가로 추앙받던 윤효중은 이 작품으로 인해 '친일작가'로 낙인찍힌다. 이렇게 친일작가의 작품은 모두 쓰레기로 취급해야 하는 걸까...
비디오 작가 백남준의 가족사진이다. 그런데 사진 속 가족들은 모두 여자다. 집안 남자들이 출타한 사이, 놀이 삼아 몇몇이 남장을 하고 찍은 사진을 사진관 아저씨가 가게 진열장에 내다 거는 바람에 동네방네 들키고 말았단다...ㅎㅎㅎ 백남준의 자필로 쓴 메모도 재미있다. 고모의 조카며느리를 레즈비언? 하고 의심하고 있다니...@.@
수업을 마친 후 각자 흩어져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
앞에 있는 키보드에 이름과 묻고 싶은 질문을 치면 나무인형이 대답한다. 사람이 되고픈 나무인형 피노키오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숙원이 투영된 거였을 테지...
꽃무늬 스카프를 한 아줌마, 두 아줌마, 진주 목걸이를 한 아줌마, 호랑이 무늬 옷을 입은 아줌마... 온갖 장신구와 옷, 머리 모양, 화장 등으로 드러나는 아줌마의 정체성... 나는 어떤 아줌마일까...>.<
뒤에 비친 앙상한 그림자가 인상 깊었다.
몇 개의 전시품 앞엔 이런 푯말이 붙어 있는데 과연 예술과 외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긴 했다.
<만다라 시리즈>란 영상은 밀교에서 발달한 불화인 만다라와 자극적인 포르노 영상을 현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다 리듬감이 심상치 않아 작은 영상들을 세밀히 보다가 에구머니 펄쩍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중학교 교사가 임신한 아내와 둘이 찍은 누드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청소년 유해성 논란을 일으켜 사회적 이슈가 됐던 작품을 대했을 땐 얼마 전에 안타깝게 작고하신 마광수 선생을 떠올리게 했다. 드러내 놓고 보면 별 것도 아닌데 왜 내 안에서도 뭐가 자꾸 걸리는지...>.<
암튼 내 머릿속도 '균열'로 자잘하게 금이 가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사은품으로 받은 미술관 드로잉북과 연필로 마음에 든 작품을 골라 그리기로 했다.
복도에도 나뒹굴고 있는 시인의 머리를 그리고 있자니 지나가던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었다...에걱~
서울관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그린 야외 조형물이다. 낮에 들어도 으스스한데, 밤새도록 부르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입을 딱 벌리곤 노래를 멈췄다. 부르는 시간대가 따로 있었던 거다.
2017년 블로그에 올렸던 전시회 감상글을 정리하려 브런치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