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역사를 몸으로 쓰다 1(2017)

MMCA 과천관

by 돌레인



<역사를 몸으로 쓰다>는 1960년대 이후 최근까지 예술 매체로서의 신체와 몸짓이 우리를 둘러싼 사회 ・ 역사 ・ 문화적 맥락과 관심을 어떻게 드러내 왔는가에 초점을 둔 국제 기획전이다.



백남준 <머리를 위한 선> 1961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머리를 위한 선>이다.

붓 대신 머리와 넥타이 혹은 손을 잉크와 토마토 주스를 섞은 통에 담근 후 긴 족자 위를 기어 선을 긋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다.

동양의 '일필휘지(一筆揮之)'를 표현한 거라는데, 당시 관객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파안대소하는 얼굴은 동양인을 향한 비웃음이 아니라 통쾌함이었다.



박찬경 <소년병> 2017


제일 기대하며 봤던 박찬경의 최신작 <소년병>이다.
'북한'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뭘까... 김정은, 핵, 전쟁 등등...
북한의 소년병에도 덧씌워진 이념과 정치적 이미지를 걷어내면 그저 연약한 한 소년일 거다.

인민 군복을 입은 한 소년이 숲 속을 걷다 지친 다리를 쉬려 잠시 누워 햇살을 쬐고, 책을 읽거나 풀피리를 분다. 어느 순간 총을 맞고 쓰러져 피투성이가 된 소년... 간드러진 북한 노래 <휘파람>에 맞춰 피 묻은 군복이 하늘하늘 춤추는 영상이 인상 깊었다...ㅠㅠ



장 후안 <가계도> 2000


중국의 아방가르드 현대미술을 이끈 대표 작가인 '장 후안'의 이 작품은, 3명의 서예가가 작가의 얼굴에 중국의 옛 글을 쓰게 한 퍼포먼스의 기록 사진이다. 한 개인의 정체성은 나고 자라면서 여러 관계 속에서 파생된 문화들로 덧씌워져 사회화된다. 하지만 역으로 그 덧대들을 하나씩 벗겨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 또한 인생의 여정이기도 하다. 현재 나의 얼굴 지점은 과연 어디일까...



멜라티 수료다모 <빛의 뒤에서> 2016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작가 '멜라니 수료타모'의 <빛의 뒤에서>는, '취조실 거울' 방에 있는 작가가 붉은색 인주 판 위에 놓인 흰 종이에 자신의 얼굴을 문대어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장시간 퍼포먼스다. 독방에 갇혀 있는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을 지켜보는 타인이라는 관객... 그 상실과 고통이 소름 끼치게 느껴진다.



고이즈미 메이로 <이것이 희극이다> 2012


일본 패전 후 전범을 재판하기 위한 도쿄 군사재판 첫날, A급 전범으로 기소된 문학가 '오카와 슈메이'는 "이것이 희극이다"라고 외치는 정신 이상 행위로 사형을 면한다. 동시에 인도 출신의 판사 라드하비노드 팔은 아시아 판사 중 유일하게 모든 일본 전쟁 전범을 무죄라고 판결을 내린다. 영상 속 퍼포머는 이 판결서를 큰 소리로 읽고 있지만, 다른 손들이 온갖 수단으로 책 읽기를 방해한다.

일본의 반성 없는 역사관에 여전히 분노하고 허탈하지만, 우리의 비판적 책 읽기를 방해하는 건 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게 했다.



아이 웨이웨이 <한 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 1995


중국 현대미술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아이 웨이웨이'는 진짜 고대 유물을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마오쩌뚱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오래된 것을 파괴해야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 전통과 유산에 대한 무거운 질문이기도 하다.

이와는 좀 다른 맥락이겠으나, 새로운 스마트폰 특히 아이폰이나 갤럭시가 출시되면 몇몇의 소비자들이 성능 비교랍시고 갖가지 방법으로 스마트폰을 파괴하는 장면이 순간 떠올랐다. 그 행동은 과시며 허세일 거다. 시간의 차이가 낳은 고가의 물건이 파괴라는 하나의 행동으로도 다르게 해석이 되어 흥미롭다.



임민욱 <소나무야 소나무야> 2017


독일 민요이자 크리스마스 캐럴인 <탄넨바움>이 시대와 국가를 경유하며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추적한 사운드 설치작품이다. 영국으로 건너가 <레드 플래그(The Red Flag)>란 노동가로 불려지던 이 노래는 1920년대 일본의 민중가요 <아카하타노 우타(赤旗のうた 적기의 노래)>로 번안된다. 한편 1910년대에 <탄넨바움>이 국내로 유입되어 <애국(가)>으로 불려졌으나, <아카하타노 우타>를 들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를 직역하여 항일투쟁가인 <적기가>로 불려지고, 북한으로 유입되어 광복 이후 혁명가요로 불리게 된다.



실제로 관객이 이 노래를 불러 녹음도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설치되어 있으나 북한의 혁명가로 변화된 노래는 부를 수 없게 덮개로 씌워져 있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2017년 블로그에 올렸던 전시회 감상글을 정리하려 브런치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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