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은 올해, 즉 2018년 바로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누구이며, 좁게는 우리 미술계에서, 넓게는 ‘우리 사회에서 비평과 토론의 소재로 삼고 있는 작가들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전시이다.
예술가로서 작가들은 우리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 시선을 작품에 어떻게 투영시키고 있는가, 그것이 왜 ‘동시대적’인가, 관람자인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발견하고 느끼는가... 현대미술의 초보 딱지를 갓 뗀 50대 주부인 내게 무엇이 어떻게 다가올지 집중하며 관람을 시작했다.
무엇이, 어떻게
동시대의 예술이 되는가?
- 정은영
정은영 작가는 1950년대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나, 전통극으로도 현대극으로도 자리잡지 못한 채 잊혀간 ‘여성국극’에 천착한다.
모든 단원들이 여성으로 이루어졌기에 당시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아이돌’은 남장 여배우였다.
남성을 연기해야 했던 여배우들은 이중생활의 묘미를 느꼈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완벽한 남자가 되어야 했기에 매사 몸짓은 남성화되고, 상대 여배우에게 설레기까지 했으며, 무대 밖에선 수많은 여성팬들의 가슴을 애태웠다.
재미 삼아 사진관에서 함께 찍은 남장배우와 여배우의 사진은 진기한 ‘결혼식 사진’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레즈비언이었다거나 남장배우가 성 정체성에 혼란이 왔단 얘기는 아니다. 단지 남성이라는 ‘역할’을 했을 뿐인데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이 포인트다. 작가는 문화적 성 정체성인 ‘젠더’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당시의 논리로 극단은 쇠퇴기를 맞는다.
‘페미니즘’은 올해 들어 그 힘을 얻고 있다. 그래서 이 주제는 동시대성을 띤다. 그리고 그 불씨를 되살리려는 젊은 예술가들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 ‘다카라즈카’라는 여성 가극단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2014년에 창단 10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던 배경엔 <베르사유의 장미>가 있었다.
이케다 리요코의 장편만화가 원작인 <베르사유의 장미>가 1974년에 초연되어 공전의 히트를 치자 30년 동안 앙코르 공연이 이어지고, 다양한 장르로까지 넓혀져 온 거다. 일본은 되었고, 우리는 안 되었던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근대 풍이 물씬 나는 벽에 나란히 걸린 액자 속 손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씩 읽어보니 내 시어머니(34년생)와 친정엄마(41년생) 또래들이시다. 게다가 글씨체조차 닮아 있었다. 할머니가 되신 단원들이 이곳 전시회에 오셔서 둘러보시며 감회에 젖으셨다고 한다...
하루를 두 번 살 수 있는가?
문명이 자연에 개입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가?
- 구민자
피지 타베우니 섬 위엔 ‘날짜 변경선’이 걸쳐있다고 한다. 작가는 섬(자연)에 그어진 줄(문명) 하나가 인간에게 어떤 상황을 일으킬까 궁금했다.
한 장소에서 줄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하루를 살아보기로 한 거다.
자정이 되어 서로 자리를 바꿔보니 왼쪽(6월 29일)에서 넘어간 사람은 하루를 두 번 살고, 오른쪽(6월 28일)에서 넘어간 사람은 하루를 건너뛰는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우리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동안 미처 깨닫지 못한 세심한 발견이기도 하다.
작가의 깨알 같은 꼼꼼한 기록들에 또 한 번 놀랐다. 자연과 문명이란 키워드는 늘 동시대적인 것 같다.
블로그에 올렸던 예전 전시회 감상글을 정리하려 브런치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