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얀 성

이불 장수의 의붓아들

by 돌레인
우리는 성을 바라보았다.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깃발이 걸린 탑에 지는 해의 희미한 붉은빛이 반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성은 하얀색이었다. 새하얗고 아름다웠다. 어쩐지 이렇게 아름답고 도달하지 못할 존재는 꿈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p.180


16세기 술탄 '쉴레이만 1세​'의 엄청난 영토확장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던 오스만 제국은 17세기에 들어 비대해진 관료제와 부패한 예니체리(14세기부터 생긴 오스만 제국의 정예 보병 부대 겸 술탄의 근위대) 문제로 쇠퇴하기 시작한다.


쉴레이만 1세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이 25년간 치열한 해상전을 치르고 있던 시기(1645~1669),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가던 '나'는 터키 함선에 의해 포로로 잡혀 이스탄불로 끌려간다. 학자임을 주장한 덕에 일반 노예로 전락하지 않은 대신 자신과 외모가 꼭 닮은 '호자'(지식인)의 노예가 된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여제 '쾨셈 술탄​'이 섭정하던 때로, 쉴레이만 1세의 후궁인 '휘렘 술탄​'을 시작으로 130여 년 동안 계속되어갈 모후들과 애첩들의 시대인 '여자 술탄 시대'의 절정기였다.

친할머니 쾨셈 술탄의 계략으로 파디샤(군주, 메흐메트 4세​​)는 6살이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지만, 또다시 이복동생인 쉴레이만 왕자를 앉히려는 쾨셈 술탄과 예니체리의 음모가 발각되어 결국 쾨셈은 살해된다.

9살이 된 파디샤 대신 어머니 '투르한 하티제 술탄​'이 섭정을 이어가나 국정은 유능한 재상인 '쾨프륄뤼 메흐메트 파샤​'에게 맡기니, 쾨프륄뤼 가문의 '쾨프륄뤼 시대'가 시작되어 오스만 제국은 17세기 중후반에 중흥기를 맞아 영토를 최대로 늘린다.


메흐메트 4세


'호자'와 '나'는 학문보다 사냥을 더 좋아한 파디샤를 위해 천문학과 무기 개발에 힘을 쏟지만, '호자'는 늘 '나'가 속해 있던 서방세계를 동경한다.

드디어 성인이 된 파디샤가 폴란드와의 두 번째 전쟁(1672~1676)에 나설 때 '호자'와 '나'가 개발한 대포를 하얀 '돕피오' 성을 무너뜨리는데 이용하나 실패한다. 이탈리아어로 'double'을 뜻하는 돕피오(Dopio)는 '호자'와 '나'가 함께 도달하고픈 그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내가 떠나온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여전히 반라의 몸으로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내가 되고, 나는 그가 되기를 원했다.

p. 108


이스탄불의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된 이 이야기의 필사본 제목이 왜 <이불 장수의 의붓아들>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알려진 역사 대로 메흐메트 4세는 저 유명한 1683년 2차 빈 전투​의 참패를 시작으로 전세가 기울어지자 왕위를 이복동생(쉴레이만 2세)에게 양위한다.

서로의 운명을 뒤바꾼, 외모가 똑같은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의 정체성 이야기지만, 덕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역사를 알게 되어 몹시 흥미로웠다. 오르한 파묵의 책들은 적어도 한 번은 더 읽고 싶게 만든다.


그림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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