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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 미술관

브뤼셀 앤 파리

by 돌레인

2019. 6. 14



청소차량 소리에 잠에서 깨어 밖을 내다보니 날이 화창했다. 서둘러 씻고 아침 식사를 하러 지하 1층까지 내려갔다. 좁은 식당 안 테이블 3개에 간단한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내가 앉으니 나잇 타임의 나이 지긋한 남직원이 아메리카노를 마실 거냐 밀크커피를 마실 거냐 물어보시곤 오렌지 주스도 있다며 내오셨다. 유럽의 아메리카노는 대체로 내 입맛에 맞는다. 반면 일본 아메리카노는 엄청 진하고 써서 나는 주로 밀크티를 마신다.

체크아웃을 하는데 그새 바뀐 데이타임의 여직원이 내게 '청구서'를 받았느냐고 물어왔다. 그러며 컴퓨터의 번역기를 이용해 '청구서'를 한국어로 어떻게 읽냐고도 물어 시원스레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원래 그건 청구서가 아니라 '영수증'이었다.

암튼 좋은 하루 되란 기분 좋은 인사에 호기롭게 불어로 답해줬다. "어부바(Au revoir)~~" 영화 <비포 선셋>의 제시(에단 호크)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숙소를 나섰다.






이른 아침의 상쾌한 기운을 한껏 받으며 골목길을 걸어 루브르 궁전 앞으로 갔다. 개장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루브르 박물관으로 입장하려는 관람객들이 줄을 서려 뛰어가기도 했다.

카루젤 개선문을 지나니 너른 튈르리 정원이 나타났다. 메디치 가문의 후손으로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가 된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짓게 하고, 일련의 역사적 시련을 거친 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마무리된 튈르리 궁전과 루브르 궁전은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 있으나 역사적인 명소임엔 틀림없다.


멀찍이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와 에투알 개선문이 보였다. 분수대엔 빈 의자들이 아주 많이 놓여 있는데 오후나 휴일엔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아침이라 출근하는 사람들, 나 같은 관광객 혹은 조깅하는 사람들이 공원을 오갔다. 그 아침의 풍경과 공기 내음 그리고 새소리 등이 아직도 생생하다.






드디어 오랑주리 미술관에 당도했다...
입구에서 검색대를 통과해 짐을 맡기고 줄 설 필요 없이 입장권을 스캔한 후 바로 들어갔다.

아늑한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한국에서의 모네 전이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통해 얼마나 가보고 싶어 했던 곳인가!!


조용히 둘러보는데 도슨트가 그룹 투어객들을 데리고 우르르 들어오는 바람에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 와~ 이곳은 앞 방보다 약 1.5배 더 컸다!!


자연광으로 모네의 그림을 감상하라는 배려... 비 오는 날의 분위기는 어떨까...
'오렌지 온실'이라는 뜻의 오랑주리(orangerie) 미술관은 과거 겨울철엔 루브르 궁전의 오렌지 나무를 보호하는 온실로 사용되었었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 바라만 봐도 물 내음과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동안 그렇게 앉아있다가 지하로 내려갔다.
특별 전시실에서 독일 표현주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와 '아우구스트 마케'의 듀오전이 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청기사 그룹'의 유망주들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안타깝게 요절하고 말았다. 전사하기 전까지 둘은 수많은 편지와 서로의 집을 왕래하고 함께 여행하며 미술에 관해 논했다. 특히 프란츠 마르크는 '바실리 칸딘스키'와 청기사파를 창시했다.


상설전시실에는 유명 화가들의 초기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모사 중인 화가분이 계셨는데 자신의 사진을 찍지 말라는 배지를 달고 계셨다. 사진이 아닌 원본을 직접 보며 그림 연습을 하는 게 너무나 부러웠다.

피카소도 정통 그림을 그렸으나 왠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다. 멀리에서도 딱 알아볼 수 있는 르누아르의 인물화들도 보였다.


어느새 정오를 훨씬 넘겨 다리가 아파 미술관 내 카페에 갔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아 자리를 겨우 잡았다.

아트샵에서 산 스케치북에 뭐라도 끼적이고 싶어 도록을 들춰 아우구스트 마케의 그림 하나를 골라 커피를 홀짝이며 따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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