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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은 Oct 07. 2021

소설가라는 정체성

                소설을 쓰기로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쓰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쓴다. 그러니까, 나는—지금—소설을—쓴다.

                소설을 쓰고 나면 책을 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도 소설가라 불리게 되겠지.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쨌든 나는 소설을 한편 쓴 사람이 될 테니까.

                                                                                                           『소설가』 (미완성작)


소설을 쓰기로 했다. 몇 해 앞서 쓰다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나의 소설 속 처럼 별다른 까닭은 없었다. 굳이 찾자면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다는 정도? 지적이고 예술적인 분야를 향한 허영심도 있었을 테고. 뭐, 그래서 소설을 썼다.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리며 반죽도 빚고 물레도 돌려봤지만 도자기로 완성하기에는 체력부터가 모자랐다. 그 과정에서 얻은 거라곤 사금파리 몇 조각뿐이었다. 이 조각들을 어떻게 잘 이어 붙이면 나름 그럴 듯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뭐니 하는 것들처럼 말이야. 그런 생각으로 그 작은 조각들을 언젠가 써먹기를 바라며 한쪽 구석에 치우듯 쌓아두었다.


그 뒤로는 당장의 도자기를 빚기보다는 모자란 체력이 조금은 나아지기를 바라며 반죽을 다졌다. 숨쉬고 움직이는 동안에도 그 반죽이 사금파리만큼은 다져지리라는 믿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다. 열심보다는 성실에, 성실보다는 털실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 털실 덕에 네댓 벌의 작은 옷을 기워낼 수 있었다. 그 옷은 어떻게든 끝을 냈다는 점에서 앞서 쌓아둔 사금파리보다는 쓸만했다. 그 가운데 한 벌은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가 되기도 했다. 손바닥문학상에서였다. 내가 쓴 소설이 지면에 실렸다. 그 소설로 돈도 받았다. 이제 나도 소설가가 되는 걸까. 아직 도자기 하나 제대로 구워내지 못했는데. 털실로 작은 옷 몇 벌 겨우 기워냈을 뿐인데.


글을 쓰는 누구나 작가라고들 한다. 웹 플랫폼에 글을 발표하고 이를 책으로 묶는 일이 보편화되면서 출판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진 덕이다. 지면도 없고 책을 내줄 곳도 없으면 독립출판으로 자신이 쓴 글을 직접 발표하기도 한다. 등단을 하지 않아도 작품만으로 독자를 만날 수 있다. 글을 쓰면 작가가 되고, 소설을 쓰면 소설가가 된다.


소설을 쓰면 소설가가 된다. 바꿔 말하면, 소설을 써야 소설가가 된다. 다시 말하면, 소설가가 되려면 소설을 써야 한다. 소설을 쓰지 않으면 소설가가 되지 않는다. 소설을 썼는데. 지금도 쓰는데. 그런데 왜 나는 스스로를 소설가라 하기가 망설여질까. 이 소설가라는 정체성이 왜 어색하게만 느껴질까. 아직 충분히 소설을 쓰지 않은 탓일까.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의 작품을 써내지 못한 탓일까. 언젠가 소설을 조금 더 능숙하게 써내게 된다면 지금의 마음과는 달라질까. 그때가 되면 나는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될까.


잘 모르겠다. 그냥 오늘도 소설을 쓸 뿐이다. 낱말 하나, 문장 한 줄. 내가 쓸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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