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내가 하는 일은 공무원 시험 공부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누군가 나에게 도서관에서 무엇을 하냐고 묻는다면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한다고 대답한다는 뜻이다. 한동안은 그 말 그대로 시험 공부 만을 했다. 요즘은 아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공무원을 포기할 게 아니라면 일단 어떻게든 시험에 합격부터 하고 나서 다른 일을 해야 할 텐데 말이다.
세상 일이라는 게, 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계획한 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게 아닐까. 무언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소설 속 인물은 우리를 닮았고,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게 해준다. 재미, 위로, 감동, 용기, 삶의 통찰, 진실. 몇 개의 낱말로 쓰기에 모자란 감정을 느끼게 한다. 현실 때문에 미뤄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마음들이다.
공무원 공부 때문에 이 마음들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오래전 남들 다 겪는 국가고시를 한차례 겪는 동안 미루다 놓쳐버린 일들처럼,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읽지 못한 소설을, 이번에 새로 나온 영화와 음악을 뒤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그만큼 공부를 더 하게 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공시와 취미도 충분히 병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시간 배분만 잘 한다면 말이다.
그 때문인지 내 스스로를 공시생으로 분류하기가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진짜 공시생은 이렇지 않을 텐데. 타이머로 시간 재가며 문제 풀고 강의 듣기에 바빠 여가나 취미 같은 건 생각도 못할 텐데.
처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건 아니다. 대학 졸업 뒤 음악인을 목표로 실용음악 작편곡을 1년간 공부했지만 직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그 뒤 방황과 고민의 시간을 보낸 끝에 공무원 시험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뿐이다. 그 결정에는 공무원도 업무 시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겸직이 가능하다는 규정과 많은 예술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별도의 직업을 갖고 활동한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멋진 작품을 선보인 그 많은 예술가들의 현실이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전업을 목표로 했다니. 그 사실이 뒤늦게 우습게 느껴졌다.
다른 예술가들이 그렇듯 소설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작가들 또한 작품 만으로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매당 5,000~10,000원 하는 산문 분야 고료는 10여년 째 동결된 수준이라고 한다. 매번 청탁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매번 일정한 수준의 글을 써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그래서 강연이나 북토크 행사를 하는 거겠지. 음악인들이 음반과 음원 수익 만으로는 기본 생활이 어려운 탓에 공연과 행사를 하듯이 말이다. 그마저도 매번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 예술가의 삶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들에게 별도의 직업이 필요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나보다 아는 것도 많고 오랫동안 글을 써오신 작가님들의 현실이 이런데, 내가 소설가가 된다고 뭐가 달라질까. 다른 직업을 가질 능력도 안되니, 결국 현실적인 대안은 공무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