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은 Oct 10. 2021

공시생

매일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내가 하는 일은 공무원 시험 공부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누군가 나에게 도서관에서 무엇을 하냐고 묻는다면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한다고 대답한다는 뜻이다. 한동안은 그 말 그대로 시험 공부 만을 했다. 요즘은 아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공무원을 포기할 게 아니라면 일단 어떻게든 시험에 합격부터 하고 나서 다른 일을 해야 할 텐데 말이다.


세상 일이라는 게, 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계획한 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게 아닐까. 무언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소설 속 인물은 우리를 닮았고,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게 해준다. 재미, 위로, 감동, 용기, 삶의 통찰, 진실. 몇 개의 낱말로 쓰기에 모자란 감정을 느끼게 한다. 현실 때문에 미뤄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마음들이다.


공무원 공부 때문에 이 마음들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오래전 남들 다 겪는 국가고시를 한차례 겪는 동안 미루다 놓쳐버린 일들처럼,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읽지 못한 소설을, 이번에 새로 나온 영화와 음악을 뒤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그만큼 공부를 더 하게 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공시와 취미도 충분히 병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시간 배분만 잘 한다면 말이다.


그 때문인지 내 스스로를 공시생으로 분류하기가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진짜 공시생은 이렇지 않을 텐데. 타이머로 시간 재가며 문제 풀고 강의 듣기에 바빠 여가나 취미 같은 건 생각도 못할 텐데.


처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건 아니다. 대학 졸업 뒤 음악인을 목표로 실용음악 작편곡을 1년간 공부했지만 직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그 뒤 방황과 고민의 시간을 보낸 끝에 공무원 시험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뿐이다. 그 결정에는 공무원도 업무 시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겸직이 가능하다는 규정과 많은 예술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별도의 직업을 갖고 활동한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멋진 작품을 선보인 그 많은 예술가들의 현실이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전업을 목표로 했다니. 그 사실이 뒤늦게 우습게 느껴졌다.


다른 예술가들이 그렇듯 소설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작가들 또한 작품 만으로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매당 5,000~10,000원 하는 산문 분야 고료는 10여년 째 동결된 수준이라고 한다. 매번 청탁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매번 일정한 수준의 글을 써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그래서 강연이나 북토크 행사를 하는 거겠지. 음악인들이 음반과 음원 수익 만으로는 기본 생활이 어려운 탓에 공연과 행사를 하듯이 말이다. 그마저도 매번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 예술가의 삶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들에게 별도의 직업이 필요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나보다 아는 것도 많고 오랫동안 글을 써오신 작가님들의 현실이 이런데, 내가 소설가가 된다고 뭐가 달라질까. 다른 직업을 가질 능력도 안되니, 결국 현실적인 대안은 공무원뿐이다.

이전 02화 도서관 생활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