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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은 Oct 09. 2021

도서관 생활자

도서관에 매일 간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 아홉 시나 열 시쯤 도서관에 도착해 하루를 보내고는 저녁 일곱 시나 여덟 시쯤 도서관을 나서 집으로 향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내는 셈이다. 


이런 생활 패턴은 대학 졸업 후 오랜만이다. 대학에 다닐 때는 강의 시간만 아니면 하루의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도서관에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과제도 하고 낮잠도 자며 혼자 그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은 혼자가 자연스러운 공간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와도 도서관에서 혼자가 되어야 다. 마치 삶에 대한 은유 같았다. 누군가 도서관에 삶의 진리가 깃들었다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리란 생각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더 이상 대학 도서관을 쓰지 못하게 된 뒤로는 공공도서관을 썼다. 공공도서관에서는 대학도서관만큼의 자유를 누리기 어려웠다. 대학도서관보다 시설에 비해 이용객의 비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의 질도 대학도서관의 그것보다 좋지 못했다. 그 때문에 공공도서관에서는 책만 빌려 읽었다. 부러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다시 도서관에서 보내기 시작한 건 올해 거주지를 옮기고 난 뒤의 일이다.  도서관에서 내가 하는 일은 다른 이용객들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연한 얘기다.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비슷비슷하니까. 공모전 당선 경력으로 글쓰기 수업이라도 하나 맡았다면 다른 도서관 이용객들과는 조금 다른 일을 하며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겠지만 소설가로서의 정체성도 갖추지 못한 내가 글쓰기 수업은 무슨. 그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그 일은 다름 아닌 공무원 시험공부다. 그렇다. 공식적인 내 직함은 공시생이다.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추구한다지만 그 정체성과 직업은 별개의 문제니까. 소설가라는 직업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데다 많은 소설가들이 다른 직업을 겸하는 것이 현실이니까.


공시생이라는 나의 현실에 맞게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와 휴식ㅡ이라는 핑계의 딴짓으로 보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그 딴짓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주로 소설을 읽는  추가되더니 올해 9월 하반기 들어서는 오전에 컴퓨터실에서 글을 쓰고 오후에 열람실에서 공부와 독서를 하게 되었다. 10월에 마감 예정인 공모전도 있는 데다 오전에는 공부에 집중도 안되고 딴짓으로만 시간을 보내게 되어 좀더 규모 있게 시간을 쓰려는 나름의 조치에 따른 변화였다.


오전 동안 내가 글을 쓰는 컴퓨터실은 도서관 3층에 있다. 이곳 컴퓨터실의 모니터는 내가 집에서 쓰는 랩탑보다 크기가 크다. 그 덕에 워드프로세서와 인터넷 검색 창을 세로로 분할해 띄워놓고 작업할 수도 있고, 워드프로세서의 글씨를 크게 확대해 쓸 수도 있다. 큰 화면 덕에 작업하기 편하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쓰는 글이 보일까 신경도 쓰인다. 그래서 나는 구석진 자리의 컴퓨터를 주로 다. 이 자리는 다른 자리의 컴퓨터와 사양이나 모니터 크기는 똑같으면서 오가는 사람은 적고 책상은 두 배 가까이 크다. 책상 한쪽에는 멀티탭 콘센트가 갖춰진 덕에 휴대전화와 같은 개인 전자장비 충전도 할 수 있다. 여러모로 작업하기 편한 환경이다.


이 컴퓨터실에는 나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한다. 나이도 제각각인 이 이용객들은 무엇을 할까. 동영상 강의나 영화를 보는 경우는 눈에 잘 띄는데 무언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길래 저렇게 열심인지 알 길이 없다. 나처럼 소설을 까. 아니면 취업을 위한 자소서를 까. 아무래도 알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에 나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소리가 더해진다. 그동안은 혼자가 자연스러운 공간이라 도서관을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도서관은 혼자이면서 함께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부러 도서관에 오는 데에는 그런 까닭도 있지 않을까. 혼자이면서 외롭지 않기 위해. 함께이면서 다른 이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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