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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은 Oct 23. 2021

부재에서 존재로

시골집에 가려면 차로 고속도로를 대여섯 시간은 달려야 했습니다.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어린 몸으로 그 반나절이 넘는 동안을 어른들 몸집에 맞춰진 자리에 앉아 가다 보면 좀이 쑤시곤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여정이 즐거웠습니다. 터미널이나 휴게소에서는 다른 데서 보지 못한 장난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사촌들을 만나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 여정이 저에게는 소풍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조금 멀지만 익숙한 곳으로 떠나는 소풍이었습니다.


시골집에는 사촌 형과 누나들이 있었습니다. 사촌들은 저보다 나이가 여섯 살은 많았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 차에도 사촌들은 저와 잘 놀아주었습니다. 누나들이 특히 저를 잘 챙겨주었습니다. 우리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부루마블을 하거나 과일을 깎아 먹으며 명절특선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는 등 집에서는 잘 하지 못하던 일을 시골집에서는 마음 편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할머니께서는 저희들 옆에 앉아 조용히 과일이나 떡 등을 내주시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저희가 노는 양을 보시곤 했습니다.


교과서나 어린이 책에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옛이야기를 들려달라 조르는 손주들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손주들을 볼 때마다 저도 어쩐지 할머니에게 그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착한 어린이라면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야 할머니께서도 심심하지 않으시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나들과 재미있게 놀다가도 옆에 앉아계신 할머니를 보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끼리만 즐겁게 노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의 겨울방학으로 기억합니다. 그 방학에도 저는 가족들과 시골집에 내려와 며칠을 지냈습니다. 밤이 깊어가던 무렵, 뭐 볼만한 게 없을까 누나들 방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문득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이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 위로 어느 무덤 앞에 앉은 이정현 배우의 앳된 얼굴이 보였습니다. 당시 테크노 여전사로 활동하던 가수 이정현의 예전 연기경력을 소개하던 어느 TV프로그램에서 그 장면을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정현이다.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 말했습니다. 이정현이 연기 잘하네. 이정현이 무덤 앞에서 눈이 뒤집어져 까무러치는 장면을 보며 다른 누군가 말했습니다. 저 영화가 그 영화지? 광주. 사촌 가운데 누군가 말했습니다. 광주? 내가 물었습니다. 5.18 말이야. 광주 민주화 운동. 어쩐지 진지한 말투였습니다. 5.18? 그때 저는 5.18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전두환이 군인들 데려다 광주 시민들 총 쏘고 죽였잖아. 전두환이라면 코미디 프로그램의 성대모사로만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작은 아빠도 그때 저기 계셨어. 사촌의 작은 아빠라면 나의 아버지였습니다. 에이, 뻥. 나는 사촌이 나를 놀린다 생각했습니다. 저런 거대한 역사적 현장에 나의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진짜야. 그 대답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한 번 가서 여쭤 봐. 어딘가 무게가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 잠에 들기 전, 저는 아버지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셨고, 계엄령이 떨어져 교통과 통신이 차단된 시기에 걸어서 광주를 빠져 나왔다 하셨습니다. 하숙집에서 광주교도소 뒷길을 지나 며칠을 걸었다 하셨습니다. 먼 친척집을 들러가며 겨우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인 나의 할머니께서 당신을 찾으러 광주에 들어갔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광주에 다시 들어갔어? 나의 물음에 아버지는 크게 숨을 한번 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다시 들어가냐. 길이 다 막혔는데…. 그 옆에 누워계신 할머니께서는 잠이 드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현실이 책과 같을 순 없었습니다. 교과서나 어린이 책에 나오는 손주들처럼 저는 할머니께 살갑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땐 할머니를 곧잘 따랐다고 하는데, 할머니께서 마을회관에 갈 때 졸졸 따라가기도 했다는데 저로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옛일일 뿐이었습니다. 할머니와는 그저 그때의 순간을 함께했을 따름이었습니다. 옛이야기나 아직 오지 않은 날에 대한 이야기가 그 순간에 끼어들 자리는 없었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할머니께서는 어떤 풍경을 보며 살아오셨을까요. 일제강점과 해방과 전쟁과 독재 등을 겪으며 땅을 일구는 동안 어떤 이야기를 쌓아오셨을까요. 그날 광주에서는 무엇을 보셨을까요. 그 가운데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졌을까요. 제가 자리할 수 없었던 그때 그곳의 이야기는 지금 어디를 떠다니고 있을까요. 그 이야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마음에 제가 소설을 쓰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그 부재를 존재로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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