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와 소설
소설을 쓰기 위해 자소설을 쓰다
자기소개서를 쓴다. 내가 배운 내용과 해온 일들을 지원하는 직무에 맞춰 그럴듯하게 풀어낸다. 담백하게, 너무 간절해 보이지 않게, 그러면서도 적당히 적극적으로 내가 해당 직무를 잘 해낼 사람임을 보여준다. 이제 막 채용정보를 통해 알게 된 곳의 직무이면서도 전부터 알았던 듯 능청스럽게, 모르는 내용은 찾아보면서 소개서의 항목을 채워낸다. 거짓은 없다. 약간의 꾸밈이 있을 뿐이다.
자기소개서를 두고 흔히들 자소설이라고 한다. 자기소개서에 쓰이는 내용이 소설처럼 그럴듯한 허구에 가깝다고 하여 자기소개서의 줄임말인 자소서를 변형해 쓰는 말이다. 요즘은 효율적인 평가를 위해 직무와 관련된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자소서 항목이 짜여지다 보니 이런 허구가 들어설 틈이 조금은 줄어든듯하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창작(!)에 제한이 생긴 셈이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글을 쓰는 데 편리를 준다. 써야 될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만큼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이 있을까. 어느 글이든 그렇겠지만 자기소개서만큼 읽는 사람의 의중까지 파악하며 쓰는 글도 없을 듯하다. 연애편지를 쓰듯 스스로의 삶을 진실되어 보이게, 적당한 의미까지 부여해가며 자소서를 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자기객관화를 하게 된다. 채용담당자의 눈으로 내가 겪은 일들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닐 때, 글쓰기 수업 첫 시간에 쓰곤 했던 자기소개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의 자기소개서는 말 그대로 자기를 소개하기 위해 쓰는 글이었다. 그런데도 그 내용은 저마다 비슷했다.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어떻게 되며, 태어난 곳은 어디인지, 어떤 환경에서 나고 자랐는지, 평소엔 무엇을 하는지 등 인적 사항을 중심으로 그 내용이 채워지곤 했다. 나의 자기소개서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글쓰기 수업의 첫 시간 과제로 받은 자기소개서도 비슷했다. 으레 나오는 과제인 만큼 그 전에 자기소개서에 썼던 내용과 비슷하게 썼다. 음악, 소설, 영화 등 그 즈음 형성된 취향에 다소 몰입하던 시기라 그 취향을 드러내는 데 좀더 집중했단 점이 그 전의 자기소개서와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과제를 제출하고 한 주가 지난 수업 시간에 글쓰기 담당 교수는 지난 과제에 대한 피드백으로 자기소개서의 내용이 다들 비슷비슷하더라는 말을 했다. 자기소개서의 내용이 자기라는 존재를 드러내기 보다는 인적 사항을 정리하는 데에 그친 글이 많았다고 했다. 나이나 사는 곳이 자기를 소개하는 데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같은 학년 학생들이 대부분인 우리의 수업 시간에 그것이 중요한 정보인지는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인상적인 자기소개서가 하나 있었다면서, 그 소개서에는 나이나 사는 곳과 같은 인적 사항은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만을 나열했더라고 했다. 누구의 자기소개서인지 굳이 밝히지는 않겠지만 어느 쪽 자기소개서가 그 사람에 대해 좀더 매력적인 정보를 담았는지는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수업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만을 나열했다던 자기소개서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의 존재가 그의 배경으로만 결정되지는 않는데,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인데 그 동안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스스로를 배경으로만 결정된 삶을 살았던 양 다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기소개서를 문예창작 관련 전공 대학원에 지원하면서 오랜만에 썼다. 제대로 소설을 써보겠다고 쓴 자소서였다. 자소서를 쓰면서 그 동안 써온 두 종류의 자기소개서를 생각했다. 자소서든 자소설이든 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쪽에도 거짓은 없었다. 약간의 꾸밈이 있을 뿐이었다.